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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무예단     한국의 마상무예     마상무예 훈련     조선의 무과시험

우리나라에서 무인(武人)들을 선발하는 제도로 대표적인 것이 무과시험이다. 고려시대의 경우 특별히 무과를 설행하지 않았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2년(1402)에 이르러 처음으로 실시 본격적으로 무과시험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문무의 균형적 발전을 위하여 ‘경국대전’을 정비하며 제도적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무과(武科)는 문과(文科)와 같이 3년마다 1번씩 실시하는 식년시(式年試)가 보편적인 개념이며,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 절차를 거쳐 사람들을 선별하였다. 초시의 경우 서울에서는 훈련원에서 열렸으며, 지방에서는 향시(鄕試)라 하여 지방관을 중심으로 시험이 이뤄졌다. 복시의 경우 2차시험의 개념으로 초시를 통과한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모여 무예실기와 병서 및 유교경전을 시험보는 강서를 거쳐 총 28명을 뽑았다. 마지막 전시의 경우 국왕이 직접 시험장에 배석하여 권위를 높였으며, 여기서 합격하면 말 그대로 장원급제자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식년무과 이외에도 다양한 특별무과시험이 있었는데, 국가적인 대소 경사를 축원하기 위하여 열린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관무재(觀武才) 등 다양한 이름으로 무관들 선발하였다. 특히, 국가적 큰 변란이 있을 때는 별시를 열어 복시, 전시만으로 무관들을 선발하여 전장에 바로 투입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식년무과의 경우 그 인원이 한정이 되었으나, 별시무과의 경우 시기와 인원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져 무과급제자의 희소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17세기 함경도 지역에서 열린 문무과 시험의 광경을 담은 북색선은도(北塞宣恩圖) 그림의 일부. 무과응시자가 말을 타고 달리며 짚 인형에 활을 쏘는 장면이다. 이처럼 달리는 말에서 활을 쏘는 것을 기사(騎射)하며, 특히 좀 더 효과적인 훈련을 위하여 짚 인형을 쏠 때는 기추(騎芻)라 한다. 한국의 미 19편, 중앙일보, 1985, 북색선은도 가운데 일부

조선 초기에 정착된 법전인『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무과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예(武藝)와 강서(講書) 두 가지를 시험 봤는데 이는 무관이라 할지라도 병법서와 유교경전을 함께 읽어 문무를 고루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서였다.

구체적인 무예시험 종목으로는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 등 총 6가지로 활쏘기와 마상무예가 그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서의 경우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1권,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1권, 병요, 통감, 무경, 소학 중 택 1권, 마지막으로 경국대전 등을 시험 보았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무예의 시험에 있어서 그 주요한 핵심은 활쏘기(弓)와 마상무예(馬)인데, 이는 조선초기 전법(戰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활로 무장한 보병과 창을 비롯한 다양한 마상용 무기로 무장한 기병을 통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초기의 경우 검이나 맨손무예 등 개인의 단병접전(短兵接戰) 기예들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임진년에 왜군들에게 조선반도가 철저하게 유린당하게 된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검과 창등 보병용 단병접전 전투기예와 조총과 총통등의 화약무기 사용기술이 시험과목으로 추가되기에 이른다. 이때 시험과목으로 추가된 단병접전 기예를 살펴보면 장창, 당파(삼지창), 용검(쌍수도) 등이 있으며 정조시대 때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의 내용이 상당부분 추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과의 순서는 녹명, 시지구입, 시험장 입장과 자리배치, 시험문제 풀기 및 실기(무예 및 강서), 답안제출과 채점, 급제자 발표(방방), 축하연, 금의환향, 무과방목 반포의 순서로 시행되었다. 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응시서류제출(녹명 錄名)

문과시험의 주관은 예조와 성균관에서 하고, 무과시험은 병조에서 주관하게 된다. 응시자는 시험 전에 녹명을 하여야 한다. 녹명은 곧 응시서류제출로, 시험 10일 전에 錄名所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뒤에는 入門할 때 녹명하는 일이 많았다. 모든 응시생들은 녹명소에 성명, 본관, 거주지와 부·조·증조·외조의 관직과 이름, 본관을 기록한 四祖單子를 제출하여야 한다.

16세기 후반 이후에는 사조단자 이외에 保單子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보단자란 6품 이상의 朝官이 署押한 신원보증서이다. 四祖 안에 顯官(종9품 이상의 관원)이 없는 경우에 지방 응시자는 경재소 관원 3인, 서울의 응시자는 해당 부의 관원 3명의 추천을 받아 제출하도록 하였다.

만약 허위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당 관원은 파직하고 응시자는 水軍의 격군으로 죄를 물었다. 녹명관은 사조단자와 보단자를 통해서 결격사유가 있는지 신분상의 응시 자격을 확인하고 해당 사항이 없으면 녹명책에 기입한다.

2. 시지의 구입

응시자들은 각자 試紙를 구입하여 시험지 끝에 본인의 관직, 이름, 본관, 거주지와 부·조·증조의 관직과 이름, 외조의 관직과 이름, 본관 등을 다섯 줄로 쓰고 관원들이 누구의 시험지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그 위를 종이로 붙여 봉하였다.

3. 시험장 입장과 자리배치

입문관은 시험보는 날 새벽에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가 녹명책을 보고 호명하여 들여보낸다. 수협관은 문밖에서 응시자들의 옷과 소지품을 검색한다. 만약 책을 가지고 들어가다가 발각되면 금란관에게 넘겨진다. 입장이 끝나면 입문관은 수험생들을 6자 간격으로 떼어 앉히고 금란관은 문을 잠그어 잡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4. 시험문제 풀기

문과는 삼장연권법 또는 동당삼장이라 하여 初場이 끝난 하루 뒤에 中場, 중장이 끝난 하루 뒤에 終場을 보았다. 시험과목은 초장에는 經學, 중장에는 詩·賦·表, 종장에는 時務策을 보았다. 무과시험은 강서시험과 무예실기 시험을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초장의 경학시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講經과 製述이다. 강경은 경서를 대상으로 하는 구술시험이고, 제술은 논문식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필답시험이다. 제술은 疑義라고도 한다.

강경에는 책을 보지 않고 물음에 답하는 背講과 책을 보고 답하는 臨文考講이 있다. 식년시와 증광시, 별시의 시험과목이 조금씩 다르다.

5. 답안제출과 채점

답안 작성이 끝나면 수권소에 낸다. 시험지를 다 거두고 나면 낸 순서대로 100장씩 묶어 봉미관에게 넘긴다. 封彌官, 謄錄官 査同官, 校同官의 손을 거쳐 試官에 넘겨지면 시관은 채점을 하여 科次를 정한다. 채점은 通·略·粗·不의 4등급으로 나누어 통은 2분, 약은 1분, 조는 0.5분으로 계산하여 초·복시를 막론하고 3장의 성적을 통산하여 합격여부를 결정하였다.

과차는 上·中·下, 二上·二中·二下, 三上·三中·三下의 9등으로 나누고 3下를 一分으로 정한다. 복시에 합격한 33인(문과), 28인(무과)은 다시 전시를 보았다. 전시에서는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왕이 甲科 3인, 乙科 7인, 丙科 23인을 성적에 따라 정하였다.

처음에는 乙科·丙科·同進士로 구분하였다가, 태종 14년에 乙科 1·2·3등으로 바꾸었고, 세종 때에 同進士를 丁科로 바꾸었다. 세조 12년에 甲·乙·丙科로 바뀐 뒤에 내내 그대로 실시하였다.

6. 급제자 발표(출방 出榜 혹은 房房)

등수를 매겨 발표하는 것을 出榜 혹은 房房이라 한다. 출방 때에는 唱榜儀가 거행되는데 국왕과 종친, 문무백관이 참석하였다. 奏樂이 울리고 呼名에 따라 문과급제자는 오른편에, 무과급제자는 왼편에 늘어서서 국왕에게 四拜禮를 한다. 문과급제자에게는 이조정랑이, 무과급제자에게는 병조정랑이 紅牌를 준다. 그리고 국왕이 御賜花와 蓋와 酒果를 내린다.


교지 중 홍패.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는 붉은 색의 홍패(紅牌),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교지는 흰색의 백패(白牌)를 내려 준다.

7. 급제자 축하연(은영연 恩榮宴)

급제자들에게 정부가 축하연을 베풀어 주는데 이를 恩榮宴이라 한다. 은영연이 끝난 다음 날 급제자들은 모두 문과 장원의 집에 모여 詣闕하여 국왕에게 謝恩禮를 드린다. 그 다음날에는 무과 장원의 집에 모여 문묘에 가서 謁聖禮를 올린다.

그리고 나서 친척 친지를 불러 잔치를 하거나 선배의 집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거나 시관을 초대하여 恩門宴을 열기도 한다.

8. 금의 환향 (유가 遊街)

급제자에게는 3~5일간의 遊街가 허락되었다. 天童이 앞에서 인도하고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며 광대가 춤을 추고 재인이 雜戱를 부린다. 시골 출신이 고향에 내려가면 그곳 수령과 향리들의 환영을 받고 유가한다. 향교에서 알성례를 마치면 수령이 급제자와 그 부모를 불러 주연을 베푼다.

9. 방목의 작성과 반포

藝文館에서는 급제자의 성명, 자, 생년간지, 본관, 거주지, 부모의 관직과 성명, 양친 생존여부, 형제의 이름 등을 기록한 방목을 작성하여 中外에 반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