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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는 조선 정조(正祖 1777-1800)때에 완간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1790)에 실린 스물 네 가지 기예를 말하며, 조선조 무과시취(武科試取)의 과목으로 구한말 구식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조선의 관군들이 익혔던 군사무예이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뜻을 살펴보면, [武藝]는 도(刀)·검(劍), 창(槍)·곤(棍), 권법(拳法)등 병장기와 맨손 무예를 통칭한다. [圖譜]는 어떠한 사물을 그림과 해설을 통하여 설명하므로써 계통을 세워 분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通志]란 모든 것을 총망라한 종합서임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책명만 보아도 무예 기예를 그림을 통하여 설명한 종합서임을 알 수 있다.

각 무예의 그림과 이름을 클릭하면 세부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 제1권 (武藝圖譜通志 第一卷)


장창(長槍)

긴 창을 말하며, 전보와 후보로 이루어져 있는 장창의 자세는 대적, 기만, 방어, 공격세로 구성되어 있다. 날카롭고 빠른 왜구를 제압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 장창이다. 임진왜란 중 남병(절강병) 참장 낙상지가 왜군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을 공격할 때에 주로 주로 사용된 무기이며, 이후 총·포가 개발된 시기에도 여전히 실전성을 갖고 있어 그 유용함이 계속되었다.


죽장창(竹長槍)

자루가 길므로 자세는 아주 단순하며, 대나무를 여러 겹 붙여 만든 긴 창으로 주 용도는 적의 기병을 막는데 쓰였다. 그리하여 상당수의 자세는 적과 적의 말을 위협하는 자세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처럼 상대의 기병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곧장 창을 세워 적의 예봉을 꺽는다. 특히 찌른 후에 창을 뽑으며 급히 물러나는 [백원타도세]가 중요한 특징이다.


기창(旗槍)

단창이라고도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는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이다. 진법(陣法) 운용시 각 대오의 위치와 정렬 그리고 이동시에 기창수가 진의 이동을 담당하였다. 특히, 창에 달린 깃발을 이용하여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 야간 기습공격시 효용성이 높았던 기예이며, 자세중-퇴산색해-는 적의 기병을 공격하는 자세로 창의 특징을 포함한 기예이다.


당파

삼지창으로 더 많이 알려진 당파는 창을 막기에 좋은 무기이며, 명의 척계광이 왜구의 장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고안한 대표적인 무기이다. 가운데 창에 작은 포를 달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기룡, 나창, 가창과 같은 자세는 평지에서 창을 든 상대와 대적하는 자세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병을 제압하는 기법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들어 기병 말의 눈을 찌르고, 말의 발굽을 찌르는 기법이 수록되어 있다.


기창(騎槍)

말을 타고 창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며, 조선 초기부터 무과 시험의 주요한 과목이었다. 주요한 기법으로는 말위에서 전후좌우로 창을 휘둘러 적을 찌르는 기법이다. 전체적으로 기병(騎兵)무예 즉, 마상무예는 조선건국 초기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의 오랑캐들을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연마 되었던 기예이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갑을창(甲乙槍)이라하여, 두사람이 짝이되어 교전하는 방식이, 그리고 삼갑창(三甲槍)이라하여, 세사람 혹은 세 대오가 둥근 원을 그리며 서로 겨루는 방식의 실제 전투방식과 흡사한 무예를 연습하였다.


낭선

긴 대나무에 가지를 세우고 사이에 철심을 붙여 적의 접근을 막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한 무기이다. 그리고 철심 부분에 독을 묻혀 직접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의 공격법 또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낭선은 척계광이 개발한 원앙진이라는 진법에서 그 위용을 드높였는데, 등패와 한짝을 이뤄 상대를 근접하지 못하게 하여 등패의 공격을 도왔다.


무예도보통지 제2권 (武藝圖譜通志 第二卷)


쌍수도(雙手刀)

중국에서는 장도(長刀)라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무예제보까지는 장도라 불렸다. 그 이름처럼 길고 큰 칼을 쓰는 법으로 왜구의 검에 대적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특히, 칼이 길어 칼의 중심을 잡아주는 동호인이 상당히 크게 발달하였다. 독특한 자세로는 향좌방적, 향우방적, 향상방적으로 이어지는 방어를 바탕으로한 공격일 것이다. 이 검보는 특히 왜검을 대적하기 위해 고안된것이어서 그 기법에 왜검의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내포되어 있다.


예도(銳刀)

중국에서 조선세법이라고 불리울 만큼 조선의 독특한 칼쓰는 법이 수록된 검법이다. 전체 28개의 자세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선참사세와 양각적천세와 같은 담력을 키우는 자세도 함께 수록되어있다. 조선 검법의 핵심이며 가장 기본적인 칼쓰는 법이라고 할수있다. 무예도보통지에 격법(擊法), 자법(刺法), 세법(洗法), 격법(格法)등 자세한 법이 나온다.


왜검-토유류(倭劍 土由流)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아주 빠르고 강렬한 검법으로 앞을 향하여 쭉쭉 질러 가는 것이 특징이다. 山時雨-산속의 소나기, 柳紗-버드나무 가지, 流星出-떨어지는 별동별등 시적인 표현이 독특한 검법이다.


왜검-천유류(倭劍 千柳流)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아주 빠르고 강렬한 검법으로 앞을 향하여 쭉쭉 질러 가는 것이 특징이다. 山時雨-산속의 소나기, 柳紗-버드나무 가지, 流星出-떨어지는 별동별등 시적인 표현이 독특한 검법이다.


왜검-운광류(倭劍 運光流)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아주 빠르고 강렬한 검법으로 앞을 향하여 쭉쭉 질러 가는 것이 특징이다. 山時雨-산속의 소나기, 柳紗-버드나무 가지, 流星出-떨어지는 별동별등 시적인 표현이 독특한 검법이다.


왜검-류피류(倭劍 柳彼流)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류피류 4개의 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수력 때문에 打法이 독특하게 발달한 검법이다. 아주 빠르고 강렬한 검법으로 앞을 향하여 쭉쭉 질러 가는 것이 특징이다. 山時雨-산속의 소나기, 柳紗-버드나무 가지, 流星出-떨어지는 별동별등 시적인 표현이 독특한 검법이다.


교전(交戰)

조선의 검선 김체건이 왜검을 응용하여 격검하도록 만든 것이며, 무예24기 중 가장 늦게 완성된 검법이다. 압(壓)과 접(接)을 적절히 응용하여 상대의 검을 제압하고, 연속적인 공격과 방어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당시의 교전 무기는 목검에 가죽을 입힌 피검(皮劍)을 사용하여 교전을 하였다.


무예도보통지 제3권 (武藝圖譜通志 第三卷)


제독검(提督劍)

이여송의 '제독'이라는 계급이 검보의 명칭에 붙은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 완성된 검법이다. 총 14세로 되어 있으며 향좌격적과 향우격적이 좌우로 빠르게 회전하며 검선을 살려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적진에 고립되었을때 퇴로를 회전하며 뚫는 것이 핵심요소이다.


본국검(本國劍)

이덕무는 본국검을 신라의 화랑 황창이 창안한 검보라고 소개하였다. 정확한 자료로 살펴보면 조선의 금군 기록인'금위영등록-1696'에 본국검을 수련하였다고 나오므로 아마도 조선 전기에도 수련되었다고 추측할수 있다. 총 24세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후좌우 자유롭게 공격과 방어가 이뤄져 정갈한 맛이 나는 검법보이기도 하다.


쌍검(雙劍)

두 개의 검을 들고 구사하는 검법으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져 좁은 공간에서 그 위력이 배가된다. 오화전신세와 장검수광처럼 두개의 검이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매력적인 검법이다. 조선시대에는 신윤복의 풍속화처럼 기생들 또한 긴 쌍검을 사용하여 검무를 추는 것 또한 살펴 볼만한 일이다.(현재 복원된 검무는 너무 짧으며, 칼날이 접어진다)


마상쌍검(馬上雙劍)

말위에서 검 두 개를 사용하는 기법을 말하며, 특히 항우도강세, 손책정강동세, 환고환패상세, 운장도패수세처럼 중국 무장들(항우,손책,유방,관우)의 이름이 자세에 사용되었다. 특히, 마상쌍검은 정면에 말 머리가 있으므로, 몸을 좌우로 많이 비틀어 양 옆의 적을 신속히 베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월도(月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 사용한 청룡언월도와 유사하며, 동선이 크고 위력이 있어 참마도(斬馬刀)라 불리울 정도로 파괴적인 검법보이다. 특히 왜검을 제압하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맹호장조세와 용광사우두세 같은 회전법과 연결된 자세의 특징이 있다. 오관참장세의 경우 삼국지의 관우가 조조의 군영을 빠져나오며 다섯 관문의 장수를 베는 기법의 고사가 전해진다.


마상월도(馬上月刀)

말 위에서 월도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조선의 기병들이 필수로 익혔던 기예이다. 특히 월도의 무게와 길이 문제로 월도, 중월도, 청룡도 등으로 다양하게 무기를 변형하여 익혔다. 무예도보통지의 그림중 유일하게 수염을 기른 장수의 모습이 남겨진것으로 보아, 실제 작업에 참여 했던, 백동수(장용영 초관)의 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협도(挾刀)

눈썹 모양이어서 미첨도라 불리우고, 영조 시대까지 협도곤으로 불리다가 정조시대에 협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적의 진을 부수는데 효과적이어서 파도(破刀)라 불렸다. 무예24기 가운데 가장 무거운 병기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월도보다 더 그 세세한 쓰임새가 효과적으로 잘 들어나 있다.


등패(藤牌)

등나무로 만든 방패와 요도, 표창을 사용하는 무예이다. 남만(베트남)의 등나무을 이용하여 방패를 만들었다가 조선초기에는 나무판에 쇠가죽을 붙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기병은 둥근 방패, 보병은 긴 사각 방패를 사용하였고 조총과 화살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원패와 연미패(긴마름모꼴-제비꼬리)-재질은 청동-가 함께 사용되었다.


무예도보통지 제4권 (武藝圖譜通志 第四卷)


권법(拳法)

권법은 맨손으로 익히는 무예로 검을 배우기 전에 익혔다. 백병전시에 무기없이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현각허이세와 요란주, 순란주, 복호세 등 중국 권법의 영향을 받은듯 하다. 권법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주요한 특징이 발보다는 손을 주로 사용하는 수박의 형태가 남아 있는듯 하다. 문헌을 찾아 보면 태조장권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고도 한다.


곤방(棍棒)

한자로는 곤봉이나 읽기로는 곤방으로 읽는다. 무기술의 기초로 익혀야 했으며, 특히 음양수(陰陽手)를 익히는 기본이 되는 무기술이다. 대적세, 대전세, 대조세 그리고 하천세, 도두세, 제미살세 등 서로 상대의 곤을 부딪치며 익히는 것이 주요하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봉은 연봉, 그리고 일본은 강봉을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연봉과 강봉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는 강봉을 사용하였다.


편곤(鞭棍)

쇠도리깨를 연상시키는 무기술로 연속 공격이 쉽고 강한 타격력을 바탕으로 기병들의 주요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특히 상대의 병기를 감아서 공격하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난감한 무기이다. 성을 공격할때 굽어지는 속성으로 인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마상편곤(馬上鞭棍)

말위에서 편곤을 사용하는 법으로 자루를 약간 짧게하여 기병들이 항시 착용하였던 기본 무기였다. 보통때의 연습은 편추(鞭芻)라 하여 짚으로 만든 인형을 세워두고 말을 타고 달리다가 편곤으로 내려치는 연습을 하였다.


격구(擊球)

서양의 폴로(polo)와 비슷하며, 고려의 귀족들이 즐겨하였고, 여인들 또한 그 기술을 익혀 널리 말을 활용한 기마민족의 전통을 경기로써 이어지게 하는 기예이다. 그리고 1725년 이후 부터는 무과의 실기시험에서 제외되어 이후 점점 사라진 기예이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격구(擊球)라는 이름으로 격방(擊棒)이라는 놀이가 모든 계층에서 행해졌는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평민들까지 즐겨 행하여졌다. 여기서 격구는 말위가 아닌, 평지에서 걸으며 하는 일종의 골프 형태의 놀이였다.


마상재(馬上才)

말 위에서 일종의 재주를 부리는 기예이며, 정조 시대에는 조선의 모든 기병들이 필히 익혀야만 했던 기예이다. 특히 일본의 통신사로 가서 시연을 보였던 기병들은 칭송이 일본열도를 뒤흔들 정도였다. 마상무예를 연마하는 말들은 전체적으로 다리가 짧으며 몸이 튼튼한 호마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