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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擊球)


격구(擊毬)

옛날 무희의 하나. 공치기·장(丈)치기·봉구(棒球)·봉희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전래된 놀이로서 당(唐)과 송(宋)에서는 타구(打球)라는 명칭을 썼다. 한국에서 격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구정(毬庭)이라는 이름이 918년(고려 태조 1)의 사실 기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격구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의종(毅宗) 때부터이며, 그 후 차차 국가적 오락이 되어 특히 단오절에는 궁정행사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활발한 풍조가 조선 전기까지 계승되다가 잠시 중단 상태에 있었으나, 1425년(세종 7) 3월 구장(毬場)을 훈련원(訓練院)에 두어 병마조교(兵馬調敎)에 명하여 다시 일으켰다. 효종 때에 이르러 소멸 단계로 들어갔으나, 조선 중엽까지 무과 시험과목의 하나였고, 정조 때에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의 하나로 정하였다. 경기방법은 기마(騎馬) 혹은 보행(步行)의 2가지가 있는데, 먼저 선수들이 각기 공채를 가지고 구정(毬庭)의 중앙에 세운 구문(毬門)의 양쪽에 대기하고 섰다가 기녀(妓女)가 가무를 하며 구(毬)를 들고 나와 중간 지점에 던지면 동서 양편의 선수들이 규칙대로 공채로 공을 쳐서 구문(毬門)을 통과시키는 것인데 많이 통과시키는 쪽이 이기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조선시대의 구장은 전전(殿前)에 설치되었으며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어전에 나가 재배(再拜)하고 상을 받았다고 한다.

보격구(步擊毬)

도보로 걸어다니면서 행하는 격구. 말을 타고 행하는 격구방식을 간편화하여 도보로 걸어가며 공을 쳐서 정해진 구멍에 들어가게 하는 공치기 경기이다. 고려시대에 말을 타고 행한 격구의 방식이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행하는 놀이로 변형되었는데, 이 보격구를 《조선왕조실록》에 타구(打毬) 또는 봉희(捧戱)라고 기록하였으며, 후세에 와서는 장구(杖球)·장치기 혹은 얼레공이라고 하였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태종 때에는 어린이들의 놀이로 행할 만큼 보격구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과 《세조실록》 기록에 보격구를 행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공을 치는 방법은 여러 명 혹은 십여 명이나 수십 명이 편을 나누어 승부를 겨룬다. 공을 치는 막대기의 모양은 숟가락과 같고 크기는 손바닥만한데, 물소가죽을 사용하며 두꺼운 대나무를 합하여서 자루를 만든다. 공의 크기는 달걀만하며 마노(碼노) 또는 나무로 만든다. 땅을 주발모양과 같이 파서 공을 들여보내는 구멍을 만드는데 이를 와아(窩兒)라고 한다. 공을 치는 사람은 서서 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치기도 하는데 공이 와아에 들어가면 점수를 얻게 된다. 1번 쳐서 구멍에 들어가면 산가지 2개를 얻고 1번 쳐서 들어가지 못하고 공이 멈추어 있는 곳에서 2~3번 쳐서 들어가면 산가지 1개를 얻는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조목으로 된 경기규칙이 정해져 있어서 이에 따라 보격구를 행하였다. 상류층에서는 점차 이 경기를 행하지 않게 되어 임진왜란 이후 없어지게 되었으나 항간의 서민들이 놀이로서 행하여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근래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한 얼레공치기 민속경기도 이 보격구를 재생시킨 것이다.

구(毬)

옛 민속놀이인 격구(擊毬)나 타구(打毬)에 쓰인 공. 채구(彩毬)라고도 한다. 격구에 쓰이는 것은 바가지처럼 된 두 쪽의 나무를 맞붙인 것이며, 둘레는 약 26㎝이고, 겉에 붉은 칠을 하였다. 타구에 쓰이는 것은 나무나 마노(瑪瑙)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달걀 만하다.

구문(毬門)

격구(擊毬)를 할 때에 공이 나가는 문. 문의 형태와 같은 것을 만들어 세우고 문의 위쪽에 둥근 창을 만들어 그 속으로 공을 나가게 한다. 격구는 옛날 젊은 무관들과 상류층 청년들이 연마하던 무예의 일종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장(杖)으로 공을 치는 것으로, 공치기 장(杖)치기 방구(棒球)라고 칭한다. 후에는 말을 타지 않고 하는 것도 있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격구의 기술이 부족하여 구문을 세우지 않고 구문의 표시만 해 놓고 그 속으로 공을 쳐서 내보내면 되도록 하였다.

구장(毬杖)

격구(擊毬)에 쓰는 공채. 월장(月杖)·장(杖)이라고도 한다. 자루 길이 70.5㎝에 나비 6.6㎝되는 장시(杖匙)를 가로 붙였고, 전체 길이 76.5㎝이다. 전체에 오색칠을 했고 끝부분이 손바닥처럼 퍼진 장대이다. 이것으로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설치한 구멍에 집어 넣는다.

구장(毬場)

옛날 격구놀이를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던 넓고 큰 마당. 직사각형의 마당에서 행한다. 고려시대에는 격구 또는 타구가 성해서 궁정의 광장을 대개 구장이라고 하였다. 크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조(正祖) 때 만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의하면 출마표(出馬標)에서 공 있는 치구표(置毬標)까지 50보(步), 치구표 즉 치구장에서 구문(毬門)까지 200보로서, 전체 길이는 250보로 되어 있고 구문의 길이는 5보로 되어 있다.

도돌방울

고려·조선시대의 놀이인 격구(擊毬) 동작의 하나. 도령(桃鈴)·지피(持彼)라고도 한다. 경기자들이 말을 타고 나아가 장(杖)을 말의 귀와 가지런히 하는 귀견줌, 장을 말의 가슴에 곧게 맞대는 할흉(割胸)과, 몸을 기울여 장으로 말의 꼬리에 겨누는 치니매기를 한다. 그 다음 말을 달려 치구표(置毬標)에 이르러 장의 안쪽으로 공을 빗당겨서 높이 일으키는 배지(排至)를 한 뒤에 장의 바깥쪽으로 공을 돌려 밀어 당기는 동작이다.

격구(擊毬)


1. 처음에 말을 기(旗)아래 내몰아 지팡이로 비스듬히 발목에 두어 발귀가까이 두는 것을 비이라고 하고


2. 지팡이로써 말의 가슴에다 댐을 활흉이라 하고


3. 몸울 기울여 우러러 보고 누워 지팡이로써 말꼬리에 비김을 방미라하고


4. 달려서 구가 흩어진 곳에 이르러 지팡이 안편으로 비스듬히 구를 당기여 높이 일어나게 함을 이르기를 배지라 하고


5. 지팡이 바깥 편으로써 구를 밀어 당기어 던짐을 지피라 하고 또 도돌방울이라고도 하니 그대로 비이로써 왼편으로 돌아 또 활흉하고 두번째 방미하고 다시 구를 던진곳에서 이르러 다시 구를 당김을 이르러 구울방울이라 하고 이같이 하기를 세번하고 이에 달리고 쳐서 격구를 행하라.


6. 세번돌기를 비록 마치나 지세가 오목하게 빠져 구를 행할 곳이 못되면 혹 네번 혹 다섯번 돌아도 또한 해롭지 않다. 구를 행하는 처음에 방종하지 아니하고 비이(比耳)로써 혹 두번 혹 세번하라.


7. 비이한 후에 손을 들었다가 놓고 치며 손을 높이 흘리고 아래로 드리워 양양함을 수양수라 하는데 수양수는 정한 수가 없으니 구문에 나가는 것을 한도로 삼어라. 공을 던진 후에 헛 수양수를 하고 또 방미를 하고 또 비스듬히 구를 끌어 들여서 수양수로써 홍문을 향하여 전져 바로 들어 오거던 그대로 구를 쫓아 문으로 나가 헛 수양수로 구를 둘러 세번돌아 한번 구를 끌어내어 도로 홍문으로 들어와 도청막을 지나면 북이 울린다. 그대로 비이로써 달려 말이 나오던 곳으로 돌아 와서 마친다.


8. 혹 비이할때 수양수를 미처 구하지 못하여 구가 이미 문에 나갔거던 구문안에서 헛 수양수를 하고 또 구문밖에서 역시 헛 수양수를 하고 혹 구가 구문 앞에 이르러 그치고자 하거던 다시 치고 구문으로 나감이 또한 해롭지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