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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心

이것이 바로 劍客의 마음이고 武人의 자세이다.

검을 쓰는 마음의 첫째는 바로‘劍을 劍답게’인식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병조에서 진법과 군졸의 기예에 대해 임금께 아뢰면서 검법과 검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검법(劍法)》에 이르기를, 칼을 사용할 때에는 그 육체를 한덩어리로 결속시키고 담력과 용기를 단련시키기 때문에, 칼을 쓰는 자는 항상 살벌한 마음을 축적하게 되니 그 사람의 용기는 필시 보통 군사보다 배는 될 것이다."
(劍法 曰'用劍之時, 固其筋骸之束, 而且鍊其膽勇, 故用劍者, 常蓄殺伐之心, 其人勇氣, 必倍於凡卒' 云)
<조선왕조실록, 인조 6년(1628) 09/29(병술)>

이런 劍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하기 전, 조선 군사들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래서 사자(射者)·창자(槍者)·총자(銃者)·기자(騎者)가 모두 칼을 차고 있는데, 칼을 차고서도 그 기술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절강(浙江)의 왜병과 호병을 보면 모두 검법을 알고 있는데, 육박전을 벌일 즈음에 네 가지 기예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면 반드시 차고 있는 칼을 가지고 사생을 결단하려 덤빕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군령이 엄하지 못하여 접전해 볼 겨를도 없이 먼저 저절로 무너져버리고 말았으니, 검술이 전진(戰陣)에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여기게 된 것도 진정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선조(宣祖)께서는 그런 점을 아셨기 때문에 시위(侍衛)하는 장사(將士) 및 선전관들 모두에게 검술을 익히게 하고 그 성적을 고과하여 상과 벌을 내렸으므로 그 당시의 연소한 무인들은 모두 용병(用兵)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군(諸軍)이 검법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칼을 차고 다니는 자도 적고, 각 고을에서 군기(軍器)를 월과(月課)할 때에도 조총만 비치해 놓았을 뿐 창이나 칼은 폐지하고 만들지 않으니, 지극히 애석한 일입니다."

다시말해 비록 몸에 검을 차고 있지만, 정작 적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칼도 뽑지 못하고 저절로 무너져 버리는 조선군의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 병조판서는 劍을 사용할 때의 마음을 ‘살벌한 마음(常蓄殺伐之心)’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바로 그것이 칼을 쓰는 武人이 가져야할 기본 덕목인 것이다.
겉치레로 폼 잡으려 검을 쓴다면, 더 이상 武人이라는 말 劍客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
제대로 된 한칼을 얻기 위해 武人은 손바닥이 갈라지고, 발바닥이 터지도록 수련을 한다. 活人劍이니 養生이니 하는 것은 그 다음에 논하라. 그것이 劍客의 마음이고 武人의 하루여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 칼을 제대로 만든다면 그는 검객으로서 아쉬움 없는 삶을 만든 것이다.
내 안의 멋진 한 칼을 만들기 위하여...


2007년 조선검 전수관에서 환도를 잡다. ⓒ2007 최형국, http://muye24ki.com

<나의 무예수련의 철학>

시대가 아파하고 있다.
누 천년 고귀할 것만 같았던 정신마저도
물질만능의 시대에 한낱 상품으로 전락한 시대
무엇으로 진정한‘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할 지도 모른다.
그 동안 소외되고 천시 받았던‘몸’에 대한 지위회복이다.
내 정신이 움트며 살고 있는 ‘몸’에 대한 공부
나의 무예의 철학은 바로 ‘몸’에 대한 관심과 문제제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전통시대의 ‘몸’ 수련법을 통해 현대의 ‘몸’에 대한 반성과 회귀...

동물적 전투성이 살아져 버린 시대,
진정한 땀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시대...
‘무예’는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무예’로 아름다운 세상, 무예로운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꾼다.

-무예24기 조선검- 한국전통무예연구소 淸刀 최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