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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정의     검 수련안     검심     조선 칼 그림

조선이라는 국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왕조 500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일진데, 세계적으로도 500년의 단일왕조를 지켜낸 나라는 극히 드문데 어찌하여 그렇게 멀게만 느껴질까요? 일제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서구 강대국에 의해 반 토막으로 들어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은 조선의 역사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은 조선의 그림 속에 나타난 칼을 보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더듬어 볼까 합니다.


▲ 창의토왜도(倡義討倭圖, 고려대 박물관 소장)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함경도에 들어왔을 때 의병을 일으켜 대항했던 북평사 정문부의 활약상을 그린 그림입니다. 왜군을 격퇴하는 모습과 왜군과 내통한 자의 목을 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중앙 상단). 적군과 내통한 자는 관이에 귀를 꿰어 군중을 한 바퀴 돈 다음 효수하지요. 특히 활을 쏘며 왜군을 추격하는 장면에서 기마병들의 등자(발걸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말 타는 실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말 타는 실력이 서투르면 발 앞부리가 아래로 처지고, 말을 잘 타면 발뒤꿈치가 아래로 처진답니다. 종종 다른 사료에서는 발 앞부리가 처진 고관대작이 말 타고 가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마상무예를 익히지 않는다면 이런 부분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요.


▲ 뇌공도(雷公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궁중화원었던 김덕성이 그린 것으로 지본에 채색한 형태로 두루마리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김덕성을 평하기를 자못 그림의 이치를 알고 동료들 사이에서 칭찬을 듣는다 하였으며, 이후 김덕성의 아들 김종회 또한 가업을 이어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칭찬 받습니다. 외수검을 굳게 움켜쥐고 등에는 망치 하나를 메고 벼락을 치는 기세가 그림에 가득합니다. 허리춤에 찬 호리병에는 청주가 가득하겠지요.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마치 서양의 조각상을 보는 듯합니다.


▲ 포의풍류(布衣風流, 단원 김홍도 '한국의 미 21'중앙일보 1985년)

조선 후기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작품명이 예술입니다. 비파를 켜고 있는 조선 한량의 모습을 저리도 잘 표현하였습니다. 바닥에는 생황 하나 그리고 검집을 잃은 검 한 자루가 외로이 누워 있습니다. 물론 풍류의 기본인 술은 호리병에 늘 그와 함께 합니다. 이미 뽑아 버린 검은 저리도 애처로이 검집을 부르건만, 쓸쓸한 비파 소리만 외로운 칼 한 자루를 달래는 듯합니다.


▲ 유불선도(儒佛仙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이인문(李寅文)이 그린 그림으로 지본에 담채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명의 풍류객들이 그림을 그려 놓고 그림에 시하나 붙일 모양인가 봅니다. 술병과 붓 그리고 검 한 자루가 함께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스님이라도 좋고, 유학에 이름 있는 학자도 좋고, 도교에 심취한 도인도 좋고, 그렇게 따스한 오후 한 자락이 흘러갑니다. 만약 이렇듯 정파와 종교에 상관없이 정치가 이뤄졌더라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검선(劍仙,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세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멋스런 소나무 아래 칼 한 자루와 함께 그의 얼굴이 가득합니다. 검선이라 칼을 가지고 이미 신선의 반열에 오른 노 검객의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이젠 칼을 떠나 선계로 접어 들어가면 칼이 있어도 좋고, 칼이 없어도 좋을 듯합니다. 외수 검의 형태로 무척이나 화려한 검막이 인상적입니다.(그림 왼편 하단에 검 손잡이가 보입니다)


▲ 쌍검대무(雙劍對舞, 간송미술관) 일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이름난 혜원 신윤복의 작품입니다. 국보 1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검무를 추는 두 무녀의 고운 자태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쌍검법 중 초퇴방적세로 고요히 뒤를 돌아 회전하며 칼이 춤추는 듯합니다. 세필로 꼼꼼하게 그려진 필선과 진한 채색을 살펴볼 때 아마도 고가집 작품 감상용 그림이지 않을까 합니다. 어여쁜 여인의 쌍검 휘두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픈 생각이 간절합니다. "나도 본시 팔도의 한량으로 칼에 묻힌 지 십여년이오." "어디 한번 나와 대무(對舞:둘이 짝을 지어 추는 춤)나 한판 멋들어지게 춰 보오이다."


▲ 비선검무(飛仙劍舞, 단원 김홍도 '한국의 미 21'중앙일보 1985년)

앞에 설명한 포의풍류를 그린 조선 풍속화의 거장 단원 김홍도의 비선검무입니다. 하늘 훨훨 나는 고운 선녀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리도 고운 자태로 하늘을 나니 뭇 사내들 가슴이 아마도 많이 콩닥 거렸을 듯…. 김홍도는 앞에서도 설명하였지만 궁중 화원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정통무예인 무예24기를 집대성한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또한 김홍도의 화풍이 강하게 나타나죠. 물론 일성록을 살펴보면 정조 대왕께서 무예도보통지의 완판을 보시고 흡족하셔서 그림 작업에 함께 한 허감 이하 네 명의 화원들에게 푸짐한 상을 내리십니다. 아마도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또한 김홍도의 제자들이 그렸을 듯합니다.


▲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부

1786년에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의 기록화 중 반차도의 형태로 그려졌습니다. 요산현의 부친이 1785년 황해도 안릉의 신임현감으로 부임하는 광경을 잘 묘사하였으며 특히 말위의 군관은 조선의 전통적인 검 패용방식인 띠돈을 이용한 허리고정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등 뒤 기마병이 착용하는 궁시일체인 동개의 화살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좋은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동래부사접왜도(東萊副使接倭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부

이 작품은 동래부사가 초량 왜관에 온 일본 사신을 맞이하여 의례를 지내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칼 두 개를 허리춤에 찬 일본 관리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본관리들과 가장 근접해 있는 조선 관리의 환도 패용 방식은 일본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환도 패용 방식 또한 띠돈을 이용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도 허리띠에 칼을 뒤집어 패용하고 일본식 치마바지를 입으며 전통을 말하는 것은 조금 앞뒤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 책가도(冊架圖, 한국 국학진흥원 소장)

이 작품은 조선시대 어느 무인의 서가를 작은 병풍에 그린 작품입니다. 서가에 들어서면 책장에 쌓인 책과 무인임을 알리는 목화(무인들이 신던 신발)와 환도(환도: 조선시대 주로 사용되었던 외날 검)가 반깁니다. 조선후기의 검패용 방식인 분합띠(광다회)와 회전형 띠돈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검집을 둘러싼 은은한 어피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피의 빛깔로 보아 아마 가오리 가죽인 듯합니다. 외수와 쌍수를 겸용으로 사용하였기에 환도의 손잡이는 짧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