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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인용] 항왜병에 관한 난중일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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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14:12:24, 6111회 읽음)

1. 항왜에 관한 기술

*1594(선조27) 甲午年 10月 6日

初六日, 庚戌, 晴 (中略) 倭奴一名, 来到漆川山麓, 欲為投降, 故昆陽郡守招降載船, 問之則永登倭也

*1594(선조27) 甲午年10月 21日

卄一日乙丑, 晴而小陰 (中略) 晩항왜三名, 自元水使来, 捧招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3日

初三日, 丁丑, 晴, 朝金天碩, 指備邊司関, 率항왜也汝文(弥右衛門)等三名到陣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4日

初四日戊寅, 晴, 出大庁, 問항왜等事情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5日

初五日己卯, 陰而細雨 (中略) 巡邊使(李鎰), 使其軍官押送항왜十三名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7日

初七日辛巳, 晩晴, 朝出大庁, 항왜十七名, 送于南海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13日

十三日丁亥, 晴, 風日残温 (中略) 元帥使防禦使軍官, 領항왜十四名而来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14日

十四戊子, 晴, 朝, 右兵使(金応瑞)항왜七名, 使其軍官領来, 故即送南海県

*1594(선조27) 甲午年 11月 27日

二十七日辛丑, 晴, 食後, 出坐大庁, 則左右道送항왜挙数来聚, 故使之習放

*1595(선조28) 乙未年 1月 7日

初七日庚辰, 晴 (中略) 南海항왜也汝文等来現

*1595(선조28) 乙未年 1月 9日

初九日壬午, 晴, 食後也汝文等, 還送南海

*1595(선조28) 乙未年 1月 17日

十七日庚寅, 雨勢似斂 (中略) 晩右水使(李億祺)馳報, 見乃梁伏兵処所来항왜沈安隠已招問, 則渠是永登屯倭, 而其将沈安頓(島津義弘)代其子(島津忠恒), 近将入帰云云

*1595(선조28) 乙未年 4月 24日

二十四日丙寅, 晴 (中略) 午時姜千石走来告, 逃倭望己時老(孫四郎?)伏於茂草中, 捕得一倭, 投水死云, 即押来, 三道分属항왜, 尽為招集, 即令斬首, 望己時老, 少無難色就死, 可謂悍矣

*1595(선조28) 乙未年 5月 21日

二十一日癸巳, 陰 (中略) 朝出坐, 則항왜等来告, 其同類倭山素, 多有兇悖之事斬殺云, 故令倭斬之

*1595(선조28) 乙未年 10月 5日

初五日甲辰, 早朝上楼看役, 而楼上外楹仰土, 使항왜運役

*1595(선조28) 乙未年 10月 13日

十三日壬子, 晴, 早上新楼, 大庁仰土, 令항왜畢役

*1595(선조28) 乙未年 11月 1日

十一月初一日己巳, 暁行望闕礼 (中略) 항왜等饋酒

*1595(선조28) 乙未年 11月 16日

十六日甲申, 晴, 항왜汝文恋己․也時老(弥次郎)等, 来告倭等欲逃, 故令右虞候捉来, 摘其首謀俊時等二倭斬之

*1595(선조28) 乙未年 11月 25日

二十五日癸巳, 晴 (中略) 晩慶尚虞候来伝, 항왜八名, 自加徳出来云, 熊川(李雲龍)及右虞

*1595(선조28) 乙未年 11月 26日

二十六日甲午, 朝陰晩晴 (中略) 午時慶尚水使来, 항왜八名及引来金卓等二名並来, 故饋酒, 金卓等則各給木棉一疋而送

*1595(선조28) 乙未年 11月 30日

三十日戊戌, 晴, 南海항왜也汝文(弥右衛門)․信是老(信次郎)等来

*1596(선조29) 丙申年 1月 7日

七日甲戌, 晴 (中略) 未時見乃梁伏兵将三千権官馳報, 則항왜五名, 自厓山出来云, 故使安骨浦万戸禹寿․孔太元起送

*1596(선조29) 丙申年 1月 8日

八日乙亥, 晴 (中略) 早항왜五名入来, 故問其来由, 則以其将性悪, 役且煩重, 逃来投降云, 収其大小刀, 蔵之楼上, 実非釜山倭也, 乃加徳沈安(島津殿)屯所率云

*1596(선조29) 丙申年 1月 15日

十五日壬午, 晴且温 (中略) 因饋항왜酒食

*1596(선조29) 丙申年 2月 15日

二十五日壬子 (中略) 昏問右道항왜, 与慶倭同約, 欲為逃去之計云, 故即伝令通之

*1596(선조29) 丙申年 2月 19日

十九日丙辰, 晴 (中略) 時暁慶尚陣留在항왜, 使此処倭乱南汝文等縛来断頭

*1596(선조29) 丙申年 4月 16日

十六日壬子, 晴, 朝食後出坐, 招乱汝文(南右衛門)等, 問衝火倭三名招致戮滅

*1596(선조29) 丙申年 4月 19日

十九日乙卯, 晴 (中略) 是日, 朝因南汝文, 聞秀吉之死, 忭躍不已, 但未可信也, 此言曾播, 而尚未的奇之来

*1596(선조29) 丙申年 4月 29日

二十九日乙丑, 晴 (中略) 항왜沙古汝音, 令南汝文斬之

*1596(선조29) 丙申年 6月 24日

二十四日, 初伏, 庚申, 晴 (中略) 항왜也汝文等請殺其類信是老云, 故命殺之

*1596(선조29) 丙申年 7月 13日

十三日戊寅, 晴 (中略) 昏항왜等多張優戯, 為将者不可坐視, 而帰附之倭懇欲庭戯, 故不禁也

*1596(선조29) 丙申年 7月 18日

十八日癸未, 晴 (中略) 夕聞항왜恋隠己․沙耳汝文等凶謀欲害南汝文

*1596(선조29) 丙申年 7月 19日

十九日甲申, 晴而大風終日, 南汝文斬恋己(恋隠己?)․沙耳汝文等

*1597(선조30) 丁酉年 7月 3日

三日壬午, 晴 (中略) 此時左兵使, 使其軍官押항왜二名而来, 乃清正所率云

*1597(선조30) 丙申年 9月 17日

十六日甲辰, 晴 (中略) 항왜俊沙者, 乃安骨浦賊陣投降者也, 在我船上俯視曰, 着画文紅錦衣者, 乃安骨陣賊将馬多時(来島通総?)也, 吾使無上金乭孫要鉋釣上船頭, 則俊沙踴躍曰, 是馬多時云, 故即令寸斬




2. ‘난중일기’의 항왜 기술에서 말할 수 있는 것




1) 항왜 발생의 절정시기

이상, ‘난중일기’에서 보인 항왜의 사례를 소개 했는데, 이를 통해 항왜가 결정적으로 많이 발생한 시기는 1595년(선조28)부터 1596년(선조29)이었다. 이시기는 일본과 명이 강화교섭을 했던 시기이며, 일본군은 조선의 남쪽연안에 왜성을 쌓고서 장기적으로 주둔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2) 항왜는 어디서부터 도망 쳐 왔는가?

그러면 ‘난중일기’에서 보이는 항왜는 어디서부터 도망쳐 왔는가. 영등포(甲午 10月 6日, 乙未 3月 17日), 가덕도(乙未 11月 25日, 丙申 1月 8日), 부산(丙申 1月 7日)등에서 도망쳐온 사례도 있으나, 주목할 것은 경상도황석산성 가등청정(加藤清正)의 진영으로부터 항왜가 있었다는 것이다(丁酉 7月 3日). 당시 가등청정은 경상도 황석산성을 공략하려 했던 때이고(朝鮮王朝 선조実録 선조 30年 9月 戊子), 황석성은 경상도 거창에서 전라도 전주로 통하는 요충지였다. 여기서 도망친 항왜가 경상좌병사 성윤문에게 왔으며 그들이 이순신 밑으로 보내진 것이다.




3) 항왜가 되는 계기

왜병이 항왜가 되는 계기는 성을 쌓는 공사 등 힘든 노역을 들 수 있다. 앞에서 본 도진씨 가신의 경우가 그렇다(丙申 1月 8日). 이때 도진씨의 병력은 가덕도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도진의홍은 도진령국의 태합검지(토지조사) 후의 지행(영지)분할 문제로 귀국했었고, 도진 병력의 총대장은 도진우팔랑충항(후에 家久로 고침)였다. 이곳에서 도진씨는 축국(옛 귀족들의 공차기 놀이)장소나 다실을 제대명들과 교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풍신수길로부터 호수의 令이 내려지자, 가신들은 범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高麗入日記, 薩藩旧記雑録 33,35. 北島万次 ‘朝鮮日々記․高麗日記-풍신수길의 조선침략과 그 역사적 고발’そしえて 265頁이하).




4) 어떠한 항왜가 있었는지 - 항왜의 류형

그런데, 일괄적으로 항왜라 해도, 여러 종류의 항왜가 있었는데, 조선 수군에 협력자가 된 자, 항왜라 해도 의연하게 도망치거나 반항한자, 이렇게 둘로 대별할 수가 있다.

① 조선 수군 협력자

조선 수군에 협력한 자로서는, 항왜 내부의 움직임을 이순신에게 고하는 등의 행위를 한 점을 들 수 있다. 난중일기 乙未 11月 16日의 기사에 있는 것처럼, 항왜인 여문련과 야시로(미차랑)가 항왜 중에서 도망 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고해, 이순신은 그 주모자 두 사람을 처형하고 있다. 또한 난중일기 丙申 4月 16日기사에 의하면 항왜 중에는 방화한 자도 있고, 이순신은 이에 대해 항왜 란여문(남우위문)으로부터 그 범인을 알아내서 처형하고 있다. 그런데 항왜의 처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난중일기 乙未 5月 21日기사에 의하면, ‘산소’ 라는 항왜가 교활하기 때문에 그를 참살하고 싶다는 다른 항왜들이 이순신에게 청원을 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항왜들에게 ‘산소’를 처형시키라고 했다. 이 경우 그 교활하다고 하는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항왜에게 동료 항왜를 처형시키는 사례는 난중일기의 丙申 2月 19日․4月 29日․6月 24日의 기사에도 보인다.

② 도망, 반항 또는 협력자에게 린치를 기도한자

이처럼 항왜에 의한 항왜의 처형 배경에는 항왜의 도망과 반항이 있다. 난중일기 乙未 4月 24日에 도망간 항왜를 수군의 협력자가 된 항왜 손사랑이 체포했다는 기사가 있다. 난중일기 乙未 11月 16日의 사례에 대해서는 이미 서술했다. 다음으로 난중일기 丙申 2月 15日의 기사에는, 경상우도의 항왜가 경상도의 왜적과 연락해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는 것이 보인다. 여기서 상기되는 것은, 1593년(선조26) 7月, 항왜라고 속이고서 투항한 왜병이 대구에서 명의 부총병 이녕에게 달려들었으나 오히려 살해되었다고 하는 사건이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6年 7月 丁巳). 여기에서도 분명한 것처럼 항왜가 되어 투항했어도 이런 경우는 무엇인가 특정한 의도를 갖고서 의식적으로 투항한 자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항왜 사이에서 사형이 있었다는 것이 난중일기 丙時 7月 18日과 19日의 기사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련은기’ 및 ‘사이여문’이라는 이름의 항왜가 수군의 협력자가 된 남우문(남우위문)을 살해하려고 계획했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이순신은 남우문(남우위문)에게 명하여 이 두 사람을 참하게 하였다. 이처럼 항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삶을 보는 것이다.




5) 항왜의 이용

난중일기는 항왜의 이용에 대해서도 적혀있다. 항왜에게 포술을 배우게 한 기사가 있으며(난중일기 甲午 11月 27日),이들은 수군의 포수로서 이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난중일기 乙未 10月 5日․13日에 보이는 것처럼, 항왜는 벽토를 바르는 노역이 부과되었고, 이런 점에서 항왜에게 토목공사의 노역도 부과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난중일기 甲午 11月 7日․14日의 “항왜를 남해로 보냈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것은 아마 격군(수부)으로서 부리려고 했던 것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재기가 있어서 공순한 태도를 취하고 국용에 도움이 되는 항왜는 진중에 두고, 그 외의 항왜는 한산도의 수군으로 보내 격군으로서 이용하려고 했던 점도 분명하다(조선왕조실록 선조 27年 9月 己丑). 그리고 ‘국용에 도움이 되는 항왜’라는 것은 전투할 때의 이용을 들 수가 있다. 丁酉 9月 17日의 명량해전 때 왜장래도통총을 지명한 항왜 준사의 경우가 그렇다.

3. ‘항왜’라 불려진 왜인

처음에도 말한 것처럼 조선을 복속시키고,명을 정복해서 동아시아 세계에 군림할 야망을 품었던 풍신수길, 그가 일으킨 왜란은 많은 사람을 전쟁 속으로 몰고 갔다. ‘항왜’라 불려진 왜인도 그 하나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오랜 전쟁에 의한 병량불족과 염전분위기로 항왜가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풍신수길의 해외파병에 의문을 품고서 적극적으로 조선 측에 투항한 자도 있다.

난중일기에는 그 항왜의 실태를 낱낱이 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수군의 진영에서 도망치려 했던 항왜의 경우, 처음에는 고된 축성 공사 등 왜장의 대우에 불만을 품고 대개 조선 측에 투항했던 것이나, 항왜에 익숙하지 않자 다시 도망쳤던 것이다. 여기서 왜란에 동원된 하급왜병의 동요를 보는 것이다.

* <‘난중일기’로 본 임진왜란 >

저자 : 키타지마 만지(北島万次), 일본공립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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