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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정조대왕의 활쏘기 실력

 이름 : 

(2010-03-30 13:53:16, 6385회 읽음)

정조 36권, 16년(1792 임자 / 청 건륭(乾隆) 57년) 10월 30일(을미) 6번째기사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10순에 49발을 맞혔다. 또 작은 과녁은 1순 전부를 모두 맞히고 각신들에게 고풍(古風)을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여러 신료들과 연구시(聯句詩)를 지었다. 전교하기를,

“우리 성조(聖祖)께서는 하늘이 내신 뛰어난 무예로 활 쏘시는 솜씨가 신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난을 일으키는 무리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백 번 싸워 대업을 이룩하셨다. 그 활과 화살이 지금도 풍패(豊沛)의 옛 궁에 간직되어 있다. 우리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그것을 마치 한(漢)나라 고조가 뱀을 베어버린 검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 얼마나 훌륭한가. 그로부터 성스럽고 거룩한 임금이 대를 이어 오면서 선업을 더욱 빛내고 백성들에게 흡족한 덕을 베풀었기에 문치(文治)의 아름다움이 삼대(三代)에 비길 만하였다. 그러나 사예(射藝)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때는 없었던 것이다. 역사와 야승(野乘)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것들은 그만두고라도 궁중에 전해 내려 오는 얘기들과 또는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것만 하더라도 활 쏘는 기법의 신묘함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 쏘는 것이 사실 우리 왕조의 가법(家法)인 것이다.

나도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고 또 그것이 선업을 이어가는 한 가지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젊은 시절에는 활쏘기를 자주 했고 쏘았다 하면 40여 발을 맞힌 적이 자주 있었으나, 중간에 10여 년은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10여 년 동안에도 때로 혹 활쏘기를 하긴 했어도 매번 몇 순(巡)에서 그쳤고 10순을 다 쏘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달 12일 을해에 처음으로 10순을 쏘아 그날은 41발을 맞혀 50점을 얻었고, 5일을 지나 16일에는 39점을 얻었고, 다음날 17일에는 32발을 맞혀 38점을 얻고, 18일에는 41발을 맞혀 52점을 얻고, 20일에는 41발을 맞혀 51점을 얻었는데 그 날이 바로 전(箋)을 지어 올린 제신들이 함께 모시고 쏘았던 날이다. 22일에는 46발을 맞혀 58점을 얻었고, 26일에는 47발을 맞혀 51점을 얻었는데 그 날은 내각에 고풍으로 붓 한자루를 내리고 이르기를 ‘이 뒤로는 49발 안쪽으로는 모두 이 격례(格例)를 쓰리라.’ 하였던 날이다. 28일에는 또 41발을 맞혀 52점을 얻었고, 29일에는 45발을 맞혀 57점을 얻었으며 또 작은 가죽 과녁을 쏘아 한 순에 모두를 명중시켰고 또 작은 베과녁도 쏘아 한 순에 4발를 맞히고는 전일과 같이 고풍을 내렸다. 처음 10순을 다 쏘기 시작한 지 모두 9일 동안에 많이 맞힌 때도 있었고 혹 적게 맞히기도 하였으나 요컨대 옛날의 성적과 비교하여 솜씨가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 날은 또 유엽전(柳葉箭)으로 작은 과녁을 쏘아 10순에서 앞 4순은 연이어 전 수를 명중시켰고 제5순에서 또 연거푸 네 발까지 명중시켰다.

보통 활쏘기를 하는 자들이 49발을 맞힐 것을 목표로 할 경우 제4순부터 이후에는 네 발을 명중시키면 중지하고 매번 남은 그 한 발을 두었다가 제9순을 지나 따로 모아 둔 것으로 1순을 쏘아 모아 둔 바의 숫자를 가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 관례에 따라 남은 화살을 모아 두고 쏘지 않았으며 순기(巡旗)도 눕혀두고 세우지 않았었다. 제6순도 그리 하였고 제7순도 그리 했으며 제8순과 9순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9순을 다 쏘고서 따로 1순을 쏘아 모든 화살을 명중시켜 채우고 난 뒤에야 순기 다섯 개를 함께 세웠던 것이다. 제10순에 와서 연거푸 맞히다가 네 번째 화살을 쏘려면서 좌우에 이르기를 ‘다 쏘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서 왼쪽 제5시(矢)를 쏘아서 명중시켰다. 통틀어 10순(巡)을 쏘아 49발을 맞히고 72점을 얻었는데 제1순에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2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3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4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5순은 다섯 발 명중에 6점, 제6순은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7순은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8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9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10순은 네 발 명중에 7점이었고 또 작은 가죽 과녁을 쏘아 한 순에 다섯 발을 맞혀 7점을 얻고, 또 유엽전 한 순을 쏘아 다섯 발을 맞히고 6점을 얻었다. 이쯤 되고 보니 더 이상은 얻을 수 없는 많은 점수를 획득하여 마치 무엇인가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이에 각신들에게【오재순·서유방·이병모·박우원·서용보·정동준(鄭東浚)·윤행임·서영보·남공철·김조순.】 고풍으로 각기 길이 덜 들여진 말 1필씩 내리고 검서관(檢書官) 이하는 선물을 차등있게 내렸으며, 고풍 지면에다 글을 써서 내리기를,

“활 쏘는 기예는 바로 우리 가법이어서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10여 년 이래로 10순을 다 쏘는 일은 계속하지 않다가 근일에 와서 팔의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몇 차례 10순을 다 쏘아보았는데 10순에 40여 발이 명중되어 고풍을 내렸더니 경들이 전을 올려 축하하기에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49발까지 맞히면 그 때 가서 고풍을 청하라.’ 했었는데 오늘 명중한 화살 수가 약속했던 그 수와 맞아떨어졌기에 문방(文房) 용구와 마첩(馬帖) 등을 제신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전에 했던 말을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들이 이미 축하 전을 올렸으니 또 고풍으로 답을 해야겠다. 그리고 겸하여 바른 마음으로 조정에 서줄 것을 권하고 싶은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덕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에 다툼이 있지 않으니 왕의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 뜻인 것이다.”

하고, 또 끝에다 낙관하기를,

“이날 등불 아래서 생각나는 대로 쓴다.”

하였다. 그리고 이어 제신들과 연구(聯句)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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