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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성록] 정조 01년 정유(1777, 건륭 42) 9월 10일 (임신) 기사

 이름 : 

(2005-11-19 23:34:52, 6213회 읽음)

[일성록]

  정조 01년 정유(1777, 건륭 42) 9월 10일 (임신)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별시사(別試射)를 행하였다. 어영대장 구선복(具善復), 훈련대장 장지항(張志恒), 병조 판서 김종수(金鍾秀), 금위대장 홍국영(洪國榮), 도감 낭청 정지검(鄭志儉), 금위영 낭청 심유진(沈有鎭), 어영청 낭청 이재학(李在學)이 입시하였다.
○ 포과익선관(布裹翼善冠)에 포원령포(布圓領袍)와 포과대(布裹帶)를 갖추고 여(輿)를 타고 춘당대에 나아가 어좌(御座)에 올랐다. 내가 이르기를,
“어제 시기(試記)를 수정하여 각각 장신(將臣)에게 보이라고 명하였는데, 아직도 수정하지 않았는가? 재촉하여 수정하여 바치게 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오늘 시사의 거행은 어찌 그리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선전관 3인을 세 관혁(貫革)에 나누어 보내고 각별히 신칙하였는데, 쟁고(錚鼓)가 전혀 분명하지 않고 감적(監的)도 착실하지 않으니, 그 가운데에 반드시 농간하는 계책이 있을 것이다. 이제 낱낱이 살펴서 적발되는 자가 있으면 과장용정률(科場用情律)을 쓸 것이다. 이런 뜻으로 엄숙하고 명백하게 분부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포관혁(砲貫革) 8개를 대령하고 쟁고도 관혁의 수대로 대령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훈련도감의 초관(哨官) 우서주(禹敍疇)가 가벼운 화살로 쏘다가 화살의 무게를 달아볼 때에 드러났으니, 훈련대장이 조사하고 곤(棍)을 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방포시기(放砲試記)를 재촉하여 수정해 바치라고 병조 판서가 결속색(結束色)에게 신칙하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변(邊) 4중(中)인 자는 상격(賞格)을 어찌하는가?”
하니, 구선복과 장지항이 아뢰기를,
“전례(前例)에는, 한량(閑良)에게는 급제를 내리고 출신(出身)에게는 가자(加資)하였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이번에는 급제를 내리거나 가자하지 않고 상격만을 주니, 공평하지 못하다는 한탄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니, 장지항이 아뢰기를,
“과거를 설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급제를 내리거나 가자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포교(捕校)가 시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변함없는 일이다.”
하였다. 내가 정지검에게 명하여 시수기(矢數記)를 읽게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관무재(觀武才), 외시사(外試射), 내시사(內試射), 상시사(賞試射)의 3중(中) 이상에 대해 급제를 내리는지를 병조 판서는 오래된 등록(謄錄)을 상고하여 들이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분소(分所)에서 시포(試砲)해야 할 것이니, 승지 1원(員)과 선전관 1인이 나아가라.”
하였다. 김종수가 아뢰기를,
“등록을 가져다 상고해 보니, 갑신년 친경(親耕) 후 상시사 때에 5중인 사람은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이고 4중 이하는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습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우부승지와 병조 판서 및 군문(軍門)의 낭청 1인이 분소에 가서 시방(試放)하되, 내취수(內吹手)ㆍ금위군(禁衛軍)ㆍ근장군(近仗軍)은 분소에서 시방하고, 어전 전배(御前前排)ㆍ무예별감(武藝別監)ㆍ어영군(御營軍)은 장전(帳殿)에서 시방하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감찰의 성명을 알아보라.”
하니, 가주서 이긍연(李兢淵)이 아뢰기를,
“장현오(張鉉五)라고 합니다.”
하여, 내가 불러들이라고 명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압반(押班)하는 절차와 제물(祭物)을 점시(點視)하는 규식을 네가 욀 수 있겠는가?”
하니, 장현오가 못 한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전에 여러 번 신칙하였는데 아직도 강습하지 않은 것이 매우 놀랍거니와, 주대(奏對)하는 말도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을 마친 뒤에 처분하겠으니, 우선 착실히 감적(監的)하라.”
하였다. 승지 정민시(鄭民始)가 아뢰기를,
“별시사는 외시사와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이미 시관(試官)과 사원(射員)의 출입이 있으니 금훤 낭청(禁喧郎廳)이 대령하지 않은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여, 하교하기를,
“금추(禁推)하라.”
하였다.
○ 하교하기를,
“선전관 1인이 시포(試砲)하는 분소에 가서 농간이 없는지를 염탐하여 오라.”
하였다. 이재학에게 명하여 방포시수기(放砲試數記)를 읽게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4중(中)하고 분(分)이 남는 자는 어떻게 시상(施賞)하는가?”
하니, 장지항이 아뢰기를,
“급제를 내리거나 가자하는 것 외에도 어찌 달리 넉넉히 시상할 방도가 없겠습니까. 단지 4중인 자는 말을 하사하여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내 생각으로는, 4중 5분인 2인 중에 무신(武臣)은 복직(復職)하고 군교(軍校)는 변장(邊將)을 제수하라는 전지(傳旨)를 받들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홍국영이 아뢰기를,
“그렇게 하면 그에게는 한 자급(資級)을 주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숙마(熟馬), 목포(木布), 현궁(弦弓) 등속으로 등급을 나누어 시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그렇게 마련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지금 분소에서 적간(摘奸)한 선전관이 아뢴 것을 들으니, 내취(內吹) 김덕택(金德澤)이라는 자가 감히 맞추지 못한 자를 시수(試數)에 모록(冒錄)하려 하였다 한다. 병조 판서를 시켜 엄히 살펴서 그 실상을 알아내게 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오늘 내취가 농간한 일 때문에 하교한 것이 있다. 내가 세자였을 때에 수가(隨駕)하여 의열궁(毅烈宮)에 갔는데 동궁 별감(東宮別監) 1인이 내취와 서로 힐책한 일이 있었다. 내취가 선전관을 충동하고 선전관이 내관(內官)에게 부탁하여 ‘동궁 별감이 대가 차비(大駕差備)에게 행패를 부렸다’고까지 말하고 그 당시 병조 판서 이경우(李景祐)에게 호소하여 위에 아뢰도록 하기에 이르렀는데, 병조 판서가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일이 마침내 그쳤으나, 그때의 놀랍고 통탄한 정상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때에 곧 별감을 엄히 다스렸으니, 내가 별감 때문에 놀랍고 통탄한 바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찌 선전관의 신분으로서 내취의 말만을 듣고 감히 내관에게 통하여 동궁 별감을 추치(推治)하려고까지 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 그 당시 선전관의 무리는 실로 책망할 것도 못 되지만 내취의 버릇은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조(先朝) 말년에는 선전관의 무리가 다 내관과 친밀하여, 심지어 서로 마주하여 우스갯소리를 하고 함께 담배를 피우며 내간(內間)의 일을 가리켜 의논하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까지 입에 올리곤 하였으니, 신하의 분의가 어찌 감히 이럴 수 있겠는가. 선전관 신한룡(申漢龍)이 내관과 서로 마주하여 방자하게 부도(不道)한 말을 하였으므로 그 당시 이계(李溎)가 안율(按律)하기를 계청하려 하였고, 사악한 정후겸(鄭厚謙)으로서도 ‘이가 갈리도록 분통하다’고 하였다 한다. 또 수가 때에 한 짓으로 말하면 그들이 반드시 동궁에 일을 내려고 한 뜻이 분명하여 엄폐할 수 없는데, 내취의 죄는 더더욱 논할 것도 없다. 행수선전관(行首宣傳官) 이응혁(李應爀)은 구순(具純), 신응주(申應周)와 함께 그 당시의 내취 중에서 아직도 입역(立役)하고 있는 자를 낱낱이 살펴내어 모두 태거(汰去)하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수가 때의 일은 경인년(1770, 영조46)과 신묘년 두 해 중의 7월 16일 동가(動駕) 때에 있었던 듯하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안팎의 한계를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선전관 중에도 반드시 내관과 사사로이 수작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너희 선전관 중에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낱낱이 자수하라.”
하니, 이응혁이 아뢰기를,
“선전관 홍용수(洪龍壽)가 중관 양대의(梁大宜)와 한 번 수작한 일이 있다 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홍용수가 어디에서 양대수를 만나 무슨 말을 수작하였다 하던가?”
하니, 이응혁이 아뢰기를,
“홍용수가 말하기를, ‘하궐(下闕)에서 적간할 때에 양대의와 서로 대면하였는데, 그 용모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기에 함께 말하기 시작하여 수작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홍용수는 곤(棍)을 7도(度) 친 뒤에, 훈련대장이 와서 아뢰라.”
하니, 장지항이 아뢰기를,
“홍용수를 엄히 곤을 치니, 마침내 말하기를, ‘중관의 용모가 아름답기에 한 마디 하고 서로 만난 뒤에, 뒷날에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만나거든 이야기하자는 뜻으로 서로 약속하였을 뿐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김덕택에게서는 간사한 정상을 조사하여 알아내었는가?”
하니, 김종수가 아뢰기를,
“엄히 곤을 치고 조사하니, 과연 맞추지 못한 자를 시수에 기재하려 하였다 합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매우 흉악하다.”
하였다. 이응혁 등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오게 하고 하교하기를,
“내입직(內入直)한 무신이 중관과 서로 통하는 것은 본디 금하는 법이다. 내가 너희 모두가 반드시 중관과 서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 이후로는 더욱더 조심하도록 하라. 선조(先朝)에서는 청휘문(淸暉門)을 폐쇄한 죄만 가지고도 반역으로 여겼으니, 오늘날 흉악한 역적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중관에게는 어떠한 형률을 써야 마땅하겠는가. 양대의는 나이가 젊으므로 내가 과연 친히 대하고 믿거니와, 홍용수가 과연 서로 친하다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번 중관의 이름이 역적의 공초에 나오고부터는 참으로 어떠한 급변(急變)이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몰라 늘 계엄하는 것이 철저하니, 이것이 무슨 꼴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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