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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촌선생집 - 諸將士難初陷敗志

 이름 : 

(2006-10-27 22:33:43, 5867회 읽음)

상촌선생집 제56권

   지(志)

여러 장사들이 왜란 초에 무너져 패한 기록[諸將士難初陷敗志]

적병이 처음 부산에 이르렀을 때 망을 보던 관리가 대략 4백여 척쯤 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다가 적이 부산을 함락하고 잇따라 그 지역 일대의 진보(鎭堡)를 함락하자 여러 고을에서 멀리 바라만 보고 저절로 무너져 그 뒤로는 망을 보며 정탐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적의 대군이 후속 부대를 계속 보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바다를 덮으며 왔는데도 변장(邊將)이 이를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처음 보고해 온 것에 의거하여 늘 적의 병력은 단지 4백 척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우순찰사(右巡察使) 김성일(金誠一)은 말하기를 “적의 배가 4백 척이 채 되지 않는데 한 척에 수십 명밖에 싣지 못하는 실정이고 보면 다 합해도 1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하였는데, 성일의 이러한 주장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도 그렇게만 여겼다.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출정할 때 단지 군관(軍官) 및 사수(射手) 60여 인을 이끌고 가면서 내려가는 도중에 군사 4천여 명을 거두워 모았다. 4월 24일 상주(尙州)에 도착했는데, 이일의 생각에 우리 군사가 오합지졸인 만큼 마땅히 습진(習陣)시켜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진을 미처 반도 펼치기 전에 적이 갑자기 이르렀으므로 별수없이 대진(對陣)하였으나, 교전하기도 전에 적이 먼저 포를 쏘아대 철환(鐵丸)이 비오듯 쏟아졌으므로 아군이 대적하지 못하였는데, 이에 적이 함성을 지르며 진을 무너뜨리자 우리 군사가 궤멸되면서 사상자가 무더기로 발생하였다. 이 와중에서 이일만 단기(單騎)로 몸을 빼어 달아나고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ㆍ박지(朴篪) 등은 모두 죽었다.
조정이 이일을 보낸 뒤 얼마 되지 않아 날로 급하게 변보(邊報)가 들어오기를 “적이 이미 내지(內地)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장차 조령(鳥嶺)을 넘으려 한다.” 하자, 도성 인심이 어수선해지면서 피난갈 준비들을 하느라 부산하였다. 이에 또 신립(申砬)을 도순변사(都巡邊使)로 삼은 뒤, 더욱 도성 내의 무사와 재관(材官)을 동원하고 삼의사(三醫司 내의원(內醫院)ㆍ전의감(典醫監)ㆍ혜민서(惠民署)) 한량인(閑良人) 중에서 활을 쏠 줄 아는 자까지 뽑아 모두 그에게 소속시키는 한편, 조관(朝官)으로 하여금 각각 전마(戰馬) 1필씩을 내어 조력하게 하고, 무고(武庫)의 군기(軍器)를 꺼내 주어 그가 쓰게끔 하였다. 이때 징집된 제도(諸道)의 군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신립이 급히 내려가면서 단지 인근 고을의 군사만 이끌고 갔다.
4월 26일 충주(忠州)에 도착했을 때 병력이 겨우 수천 명밖에 안 되었는데 이 군사로 단월역(丹月驛) 근방의 언덕에 진을 쳤다. 이때 이일을 만났는데 이일로 선봉을 삼아 그로 하여금 공적을 세워 보답하게 하였다. 혹 말하기를 “적의 세력이 지극히 성대하니 그 예봉에 직접 맞서기는 어렵다. 조령에 나아가 협곡 안에 군사를 매복하고 적이 골짜기 입구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우리가 양 쪽 언덕에 의거하여 높은 곳에서 활을 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하였으나, 신립은 말하기를 “그들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니 넓은 들판으로 끌어들여 철기(鐵騎)로 짓밟아버리면 성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였다.
그러나 적은 이미 조령의 길을 거쳐 몰래 군사를 잠입시켜 충주 성중에 이르렀는데도 신립은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8일에 적이 민가를 불태운 뒤에야 적이 이미 조령을 넘어왔다는 것을 우리 군사가 알고는 간담이 떨어지도록 모두 경악하며 두려워하였다. 이윽고 바라보니 왜적들이 조령의 큰 길을 통해 산을 뒤덮으며 내려오는데 칼빛이 번쩍번쩍하였다. 신립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차례로 진격시켰으나 마을 길이 비좁은데다 논밭이 많아 말을 치달리기에 불편하여 머뭇거릴 즈음에 적이 우리 군사의 좌측으로 돌아 나와 동쪽과 서쪽에서 끼고 공격해 오는 바람에 우리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적에게 난도질을 당한 결과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군자(軍資)와 군기(軍器)가 일시에 모두 결딴나고 말았다. 신립이 단신으로 말을 타고 강 언덕에 이르렀는데 적이 군대를 풀어 추격하자 신립이 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며 김여물(金汝岉)도 물 속으로 투신하였다.
신립의 군대가 패하자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파천(播遷)하였는데, 우상 이양원(李陽元)을 남겨두어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 삼아 경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과 부원수(副元帥) 신각(申恪)으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한강에 나아가 진을 치게 하였다. 5월 2일 적의 선발 부대가 이르자 대군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대가가 성을 빠져 나간 뒤 도성 백성들이 서로들 도적떼로 변해 궁실을 불태우고 재물을 노략질하는 등 도성 안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이양원이 지키지 못할 줄을 알고 양주(楊州)로 달아났는데 성문도 폐쇄하지 않은 상태였다. 적이 처음 이르렀을 때 성문이 열려져 있고 사마(士馬)의 흔적이 전연 없이 조용한 것을 보고는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감히 들어오지 못하다가 3일이 되어서야 성이 실제로 텅 빈 것을 알고는 마침내 도성에 들어왔다.
남도 절도사(南道節度使) 신할(申硈)이 변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대가가 머문 곳을 뒤따라 오다가 송경(松京)에서 배알하자, 상이 이를 인하여 신할을 방어사로 삼아 임진(臨津)에 머물러 진을 치게 하였다. 또 한응인(韓應寅)을 제도 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로 삼아 김명원을 대신해서 임진에 나아가 주둔하게 하고, 평안도 강변의 토병(土兵) 8백 명을 동원하여 성세(聲勢)를 돕게 하였다. 당시 이양원(李陽元)ㆍ이일(李鎰)ㆍ신각(申恪)ㆍ김우고(金友皐) 등은 대탄(大灘)에 있고, 한응인ㆍ권징(權徵)ㆍ신할ㆍ이천(李薦)ㆍ이빈(李薲)ㆍ유극량(劉克良)ㆍ변기(邊磯) 등은 임진에 있었는데, 5월 18일에 회전(會戰)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때 의논하는 이가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많다고는 하나 거의 대부분이 약졸(弱卒)이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강변의 토병뿐인데 토병이 멀리서 오느라고 지쳐 있으니, 며칠쯤 늦추어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사한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나, 여러 장수들이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17일 야음을 틈타 군사를 도하(渡河)시켰는데, 좌위장(左衛將) 이천이 상류 강 언덕에서 적군을 만나 급히 치다 패배를 당하였으며, 유극량도 죽고 신할도 패몰(敗沒)한 가운데 적이 마침내 임진을 건너오게 되었다.
조정이 제도(諸道)의 군사를 동원하여 들어와 응원토록 하니, 전라 순찰사(全羅巡察使) 이광(李洸)이 그 도의 방어사(防禦使) 곽영(郭嶸) 및 조방장(助防將) 이지시(李之詩)ㆍ백광언(白光彦) 등과 함께 전라도 군사를 이끌고 오고, 충청 순찰사 윤국형(尹國馨)이 그 도의 방어사 이옥(李沃) 및 절도사(節度使) 신익(申翌) 등과 함께 충청도 군사를 이끌고 왔는데 무리가 수만이었으며, 경상 순찰사 김수(金睟)는 사졸을 잃고 단지 군관 30여 인만 이끌고 왔다. 이에 약속한 대로 6월 4일에 각자 길을 나누어 진격해 양천(陽川) 후포(後浦)에서 집결하였는데, 백광언이 선봉장으로 용인(龍仁)에서 적을 만나 창졸간에 교전하다가 패하여 전사하면서 대군이 한꺼번에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빠지듯 저절로 궤멸되어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으며, 그 결과 군기(軍器)와 치중(輜重)을 몽땅 적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런데 뒤에 듣건대 처음에 왔던 적은 3명뿐이었고 그 뒤에 온 적도 겨우 1백 명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양도(兩道)의 수만 군사가 백 명의 적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마치 폭풍에 나뭇잎 떨어지듯 하였으니, 이는 옛날에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3도 군사가 모이게 된 것부터가 그러하였다. 김수는 이미 패망한 뒤끝이라서 겨우 자기 몸만 왔고, 윤국형은 원래 장재(將才)가 못 되었다. 그리고 이광은 변란 소식을 듣고서도 난을 구하러 달려갈 뜻이 없었는데, 본도에 있을 때 광주 목사(光州牧使) 정윤우(丁允祐)가 이광을 찾아가서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는 의리를 극력 말했어도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군대를 동원하는 명이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급히 서둘러 군사를 모은 뒤 공주(公州)까지 갔다가 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군대를 해산시켰는데, 이때에 이르러 재차 기병(起兵)했다가 재차 무너졌으므로 조야(朝野)가 모두 이광을 죄인으로 여겼다.
하여튼 이로부터는 나라에 방어하는 자가 없게 되어 적이 위세를 한껏 떨치면서 마치 무인지경을 달리듯 팔로(八路)를 석권하였다. 그리고 각 두목들을 제도(諸道)에 나누어 보내고 수가(秀家) 자신은 경성에 주둔하였는데, 부산에서 평양에 이르기까지 각 사(舍)마다 보루를 쌓아 방벽을 삼았다. 이때 거느린 적의 무리가 대략 25~26만쯤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정탐을 잘하지 못해 실제로 몇만이 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편 청정(淸正)은 함경도에 들어가 왕자 임해군(臨海君)ㆍ순화군(順和君) 및 수행한 재신(宰臣) 김귀영(金貴榮)ㆍ황정욱(黃廷彧)ㆍ황혁(黃赫) 등을 사로잡아 구류시켰고, 기보(畿輔)의 적은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파헤치는 등 국세가 미약한 탓으로 신인(神人)에게 비통함을 안겨 주었는데, 다행히도 평양으로 진출한 적의 경우만은 순안(順安) 일보 직전에서 멈추고 진격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서 이광(李洸)의 직책이 깎이고 권율(權慄)이 그를 대신한 뒤로 정기(旌旗)가 성벽 위에 힘차게 나부끼고 옛 모습이 일신되었는데, 권율이 군사를 이끌고 북상(北上)하다가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초토사(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은 연안성(延安城)을 지키면서 성을 포위한 적을 격퇴하였다. 전라 수사(全羅水使) 이순신(李舜臣)ㆍ이억기(李億棋) 등은 여러 차례에 걸쳐 수군으로 적을 꺾으며 전승을 거두었다. 의병 역시 각처에서 다투어 일어나 관군에 호응하였다. 그 중에서도 경상도의 김면(金㴐)ㆍ곽재우(郭再佑)와 전라도의 고경명(高敬命)ㆍ김천일(金千鎰)과 충청도의 조헌(趙憲)ㆍ영규(靈圭)가 더욱 유명하였으며, 기타 각 고을에서 일어난 소규모의 의병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는데, 나라의 명맥이 이들 덕분에 보존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중국 조정에서 원군을 내보냄으로써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는 공적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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