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깨비?

|

무예24기

|

마상무예

|

무예 수련

|

동영상

|

자료실

|

게시판

무예 자료     사학 자료     이미지 자료     기사모음     박사논문

 [실록] 각지

 이름 : 

(2006-07-04 17:49:55, 4998회 읽음)

정조 3권 1년 5월 16일 (경진) 003 / 병판으로부터 문무 장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항상 각지를 끼는 등 옛 복제를 준수하라고 하교하다



하교하기를,

“옛날 우리 효묘(孝廟)께서 여러 장신(將臣)들을 경계시키기를 ‘내가 조대수(祖大壽)를 보니 항상 엄지 손가락에 고리[環]를 끼고 있었으므로 고리와 살이 서로 합쳐져 흔적이 없었다.’ 하고, 이어서 ‘주야로 항상 끼고 있을 것이니 감히 빼놓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숙묘조(肅廟朝)께서도 이 하교를 송독(誦讀)하시면서 거듭 여러 장신들을 경계시켰는데, 이는 《보감(寶鑑)》과 《비고(備考)》 등 여러 책에 밝게 기재되어 있다. 열조(列祖) 때부터 무사(武士)들을 시열(試閱)할 때 차고 있던 패결(貝決)739) 을 신명(申明)하여 병판(兵判)에서부터 문무(文武) 장신(將臣)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모두 항상 각지(角指)를 낌으로써 솔선 수범하는 방도로 삼으라. 이렇게 한다면 품계가 낮은 무변(武弁)들이 어떻게 감히 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복(軍服)을 순색(純色)으로 하고 소매 끝을 청색(靑色)으로 하는 것은 길복(吉服)할 때를 기다려 신금(申禁)하도록 하겠으며, 제도와 모양에 이르러서는 또한 수교(受敎)가 있다. 효묘 때에는 군복이 너무 헐렁하여 돌진하는데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이를 고쳐 소매를 좁게 하는 제도로 만들었으며 선조(先朝) 때에도 군복의 길이는 땅에서 1척쯤 떨어지게 하였고 단추(團樞)의 제도 또한 임금의 옷부터 그렇게 하였으니, 하물며 군하(郡下)들의 옷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렇게 복구(復舊)하는 때를 당하여 더욱 성헌(成憲)을 준수해야 한다. 병판과 여러 신하들은 각기 모쪼록 척념(惕念)하라.”

하였다.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읽음

80

  [논문] 광개토대왕의 군사작전에 대하여 (수군을 중심으로)

2006/07/05

5723

79

  [논문]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기사(騎射)에 관해

2006/07/05

5394

78

  [논문] 고구려 축성법(築城法) 연구 - 성문을 중심으로

2006/07/05

6218

77

  [논문]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기사(騎射)에 관해

2006/07/05

5404

  [실록] 각지

2006/07/04

4998

75

  [택견] 택견의 미학적 논의

2006/07/01

6941

74

  [마술] 日本の馬術流派

2006/06/27

5352

73

  [기병대] The US Cavalry

2006/06/26

10378

72

  [실록] 강릉·태릉 능행 후 사하리에서 모의 전투를 시행하여 포상하다

2006/06/25

5407

71

  [실록] 이어할 때 마병은 갑주 차림, 금군은 흰 군복을 입도록 명하다

2006/06/25

5191

70

  [실록] 적병이 충주에 침입하여 신입이 전사하다

2006/06/25

5051

69

  [실록] 환도를 만드는 체제를 정하다 [1]

2006/06/25

5520

68

  [실록] 병조에서 각도의 정군을 마병과 보병으로 나누어 그 수를 아뢰다

2006/06/25

4912

67

  [실록] 문무 전경의 중요성에 대해 하교하다

2006/06/25

4993

66

  [실록] 꿩을 구워먹다.

2006/06/25

5045

65

  [실록] 기예 명칭 통일

2006/06/25

5037

64

  [연려실기술] 과거제도(科擧制度)

2006/06/24

5511

63

  [실록]《신진법》을 완성하다. 《신진법》의 내용①

2006/06/17

5398

 

 

[1][2][3] 4 [5][6][7][8]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랄라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