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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청장관전서 제24권-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범례(凡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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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7:15:21, 5415회 읽음)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범례(凡例)


기유년(정조 13, 1789) 5월 공(公)과 박제가(朴齊家)에게 함께 편찬하라고 명하였다. 자세한 것은 부진설(附進設) 가운데에 보인다.
한교(韓嶠)의 《무예제보육기(武藝諸譜六技)》 1권에 전후하여 증보(增補)한 것을 합하면 총 24기(技)가 되는데 이것의 이름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고 내렸다. 이제 여러 기술(技術)을 수집하고 널리 많은 책들을 인용하여 문득 일통(一統)을 이루었으니, 그 명칭과 범례를 만약 개정(改正)하지 않으면 본말이 혼동되기 쉽고 주객을 분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대전통편(大典通編)》의 예(例)를 모방하여 그 옛것과 새것에 따라 '원(原)'과 '증(增)'으로 표를 하고, 목(目)은 작은 글자로 아래에 쓰고, 글은 큰 글자로 위에다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이미 위에 표시한 것은 비록 문단을 바꾸더라도 거듭 표를 하지 않고 상문(上文)을 따른 뒤에야 '통지(通志)'라고 이름지은 뜻이 비로소 명석(明晳)해진다.

만약 변증(辨證)할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은 글귀 사이에 '안운운(案云云)'이라 쌍서(雙書)하였고, 큰 것은 별항(別行)으로 한 자 낮추어 '안운운(案云云)'이라 썼다. 그리고 무릇 원(原)ㆍ증(增)ㆍ안(案) 자에는 다 광(匡 검은 네모 바탕을 말한다)에 흰 글자로 했으며, 굉강(宏綱)과 세목(細目)을 다 임금께 아뢰어 결재를 받았다.
널리 열성조(列聖朝)에서 군문을 세우고 편찬한 병서(兵書)와 《내원시열(內苑試閱)》을 상고하고, 《전사(前史)》 본기(本紀)가 연(年)을 경(經)으로 하고 월(月)을 위(緯)로 한 것을 모방하여 사건을 따라 차례를 배정하고 이름을 《병기총서(兵技總書)》라 하여 따로 수권(首卷)을 만들었다.

다만 옛날과 지금의 기록한 것이 상세하고 간략함이 동일하지 않다. 그러므로 연조가 없는 것은 '아무 조[某朝]'라고만 썼고, 달수가 없는 것은 우선 빼버렸다. 《내원시열》에 매해마다 한 것은 '해마다 준례로 했다[歲以爲常]'라고 했고, 어쩌다 한 번씩 보인 것은 '뒤에도 이와 같다[後亦如之]'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원(御苑)과 어당(御堂)에 있어서는 어떤 것은 기록하고 어떤 것은 기록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대강 《시예일기(試藝日記)》를 따른 것이다.

병기(兵技)는 찌르는 식[刺]ㆍ내리쳐 쪼개는 식[砍]ㆍ돌격하는 식[擊]의 세 가지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창(槍)ㆍ칼[刀]ㆍ주먹[拳]의 3기(技)로 첫머리를 삼고 각각 종류별로 따랐다. 그리고 교전(交戰)하는 방법은 왜검(倭劒)에서 나왔으므로 그대로 붙여 두고, 마재(馬才)는 격구(擊毬)하는 법과 가까우므로 그 아래에 두었으며, 기(騎)ㆍ보(步)ㆍ관(冠)ㆍ복(服)의 도설(圖說) 또한 그 다음에 두었다. 각 군영의 기예(技藝)는 전수(傳授)되는 것이 각각 다르므로 고이표(考異表)를 만들어 끝에 붙였다.

모든 병서를 참고로 열람하여 기계도식(器械圖式)에 만약 제도(製度)와 양식(樣式)이 금식(今式 현재 행하고 있는 방식)보다 좋을 듯한 것이 있으면 먼저 화식(華式 중국의 법식)을 그리고 다음에 금식을 그렸으며, 또 왜식(倭式 왜가 행하던 방식)이 있으면 금식의 다음에 두어 식(式)을 개조(改造)한 데 대한 참조로 대비하였다.

원서(原書)의 기계도해(器械圖解)는 다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따라 잘라내서 옆에다 그리고, 종횡(縱橫)으로 잔글씨로 쓴 것을 이 편집에서는 간혹 늘려서 큰 글씨로 썼다. 그러므로 줄이고 합치는 사이에 어떤 것은 한두 글자를 거꾸로 넣어서 고친 것이 있으니, 말은 간단하고 뜻은 완벽하게 하려 한 것이다.

척씨(戚氏)의 《기효신서(紀效新書)》와 모씨(茅氏)의 《무비지(武備志)》는 이 책을 편집하는 데 표준(表準)으로 삼아서 다른 책과는 비교할 수 없으므로 다른 책에서 인용(引用)한 것은 '아무 책[某書]에 말하기를……'이라 하였으나 척씨(戚氏)와 모씨(茅氏)의 책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척계광(戚繼光)이 말하기를……,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이라고 쓴 것은 낮춘 것이 아니고 관습(慣習)이 되어 숭상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또 척씨와 모씨의 소전(小傳)을 찬집하여 권수(卷首)에 기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게 하였다.

한교(韓嶠)의 《사실훈국연기합성안설(事實訓局緣起合成案設)》 1편(篇)을 골라서 《기예질의(技藝質疑)》의 아래에 기재해두어 앞사람이 창작한 공로를 오래도록 빛나게 하였다.

이 책은 장령(將領)과 졸오(卒伍)로 하여금 누구나 환히 통달케 하려고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혹 벽자(僻字)나 오문(奧文)이 있으면 따로 음의(音義)를 주(註)내었고, 인물(人物)ㆍ여지(輿地)ㆍ기용(器用)ㆍ동식물(動植物)과 같은 유에 이르러서는 간략히 주해(註解)하였다. 그리고 보통 것으로 주석할 가치가 없는 것과 드물어 억지로 소(疏)낼 필요가 없는 것은 번잡한 것을 없애고 간략한 것을 취하기에 힘썼다.

창(槍)의 제도에는 마땅히 창자루의 재목을 살펴야 하며, 검(劒)의 제도로는 마땅히 쇠의 품질을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옛날과 지금의 각국에서 사용한 창자루의 재목과 연철(煉鐵)의 법을 아울러 창검의 아래에 두어서 선택하여 사용하는 데 자료삼게 하였다.

원서(原書)에는 등패(藤牌)가 있는데 금제(今制)에는 표창(鏢槍)이 없으니, 대개 도표(刀鏢)와 방패가 서로 따른 뒤에야 공격할 수 있고 방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제 도표를 등패의 아래에 붙였다.

비록 지금 사람들이 익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용검하는 자세와 곤법(棍法)과 권법(拳法)이 치고 찌르는 데 자료가 될 만한 것은 널리 여러 가지 도보(圖譜)를 상고하여 각각 그 아래에 두었다.

구도(舊圖)에 혹 좌우의 자세를 상실하고 장단(長短)의 법식에 위배된 것이 있는 것은 이제 하나하나 살피고 연구해서, 인물(人物)은 그 의복의 무늬와 향배(向背)를 분별하고, 형명(形名)은 그 원첨(圓尖)과 수칠(銹漆)로 분변하였다.

보군(步軍)의 관복(冠服)은 구도(舊圖)는 척도(戚圖 척계광의 도보)에 의존했는데 파수(帕首 머리띠.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맨 것)와 복장에 대해 그 색깔과 모양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제 다 개정하였다.

구서(舊書)에 그린 각기(各技)의 보군(步軍)은, 한 장(張) 한 면(面)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을 그려서 사람의 수가 동일하지 않으므로 연구하고 살피는 데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장 양면[一張兩面]에 각각 상하로 두 칸을 만들어 위 칸에는 각 기예(技藝)의 자세를 쓰고 아래 칸에는 사람을 그리되 두 사람에 지나지 않게 하였고, 마상(馬上)의 모든 기예는 구서대로 한 면에 한 사람 만을 그렸다.

도(圖)는 아래에 있고, 보(譜)는 위에 있는데 보설(譜說)은 부득불 도식(圖式)을 따라서 나누고 합하였다. 보군은 비록 일면(一面)에 병립(並立)했더라도 따로 한 자세[一勢]를 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보에다 동그라미를 그려 그것으로 다음 사람을 분별하였는데, 왜검(倭劒)ㆍ천류류(千柳流)ㆍ유피류(柳彼流)ㆍ예도(銳刀)ㆍ거정(擧鼎)ㆍ점검(點劒)의 유가 그것이다.

그 첫째 줄에 있어서 상문(上文)과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았다. 마군(馬軍)은 위 문장과 연결되어 끝맺는 말이 있으나, 문세가 이미 분속(分屬)되어 오로지 하단(下段)에 연속된 것과 같은 것이 있다. 월도(月刀)와 같이 좌측을 돌아보고 한번 휘두른 그 밑에 우측을 돌아보고 한번 후리는 것이 세 차례 있는 유가 그것인데, 이것은 또한 마땅히 위 문장에 연결하여 보아야 한다.

구보(舊譜)는 산도(散圖)만 있고 합도(合圖)는 없는데, 이제 《무비지(武備志)》의 제세총보(諸勢總譜)의 예(例)를 모방하여 보를 만들고 《무비지》에 동그라미 하고 자세 이름을 쓴 것은 다 그림으로 대신하였고 또한 《여지도(輿地圖)》의 백리척법(百里尺法)에 의거하여 기반영격(棋盤影格)으로 받아서 보법(步法)을 균일하게 하였다.
구서총보(舊書總譜)에는 물러나면 순하게 쓰고 나아가면 거꾸로 쓴 것이 자못 패엽(貝葉 범서(梵書))의 옆으로 간 글씨보다 심한 점이 있다. 이제는 다 그 자세의 이름을 동그라미하여 먹줄로 칸을 만들고, 그 지세(地勢)를 따라 시작과 끝나는 표시를 써서 종횡으로 돌리며 길을 따라 선을 찾으면 환히 알 수 있게 하였다.

원서에는 언해(諺解)를 도보 사이에 섞어 두어서 보기가 어려우므로 이제 언해를 떼어 내어 따로 한 책으로 편집하여, 책에 붙이면 보기에 편하고 떼어 놓더라도 단행본(單行本)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말투가 고금이 서로 다르고 도시와 시골이 서로 혼동되었으므로 하나하나 개정하고 기계의 제도와 신찬해설(新撰解說)은 우선 번역(翻譯) 하지 않고 요약을 따랐다.

예도(銳刀)는 이미 모씨(茅氏)의 세법(勢法)으로 도보를 만들었는데 지금 연습하는 도보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부득불 금보(今譜)로 따로 총보(總譜)를 만들고, 또 별도로 모설해(茅說解)를 만들어서 이미 익힌 자로 하여금 배운 것을 폐하지 않게 하고, 익히지 못한 사람에게는 근본한 것이 있음을 알게 하였다.

곤봉(棍棒)의 여러 가지 자세는 서로 같은 자세가 많으므로, 그 문장을 깎아내고 다만 '어느 자세에서 어느 자세까지는 위와 같다……' 하였고, 언해는 알기 쉽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본문(本文) 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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