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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 정조 049 22/10/19(기유) / 비변사가 아뢴 장용위 외영 5읍 군병의 절목②

 이름 : 

(2005-12-06 23:32:48, 5713회 읽음)

정조 049 22/10/19(기유) / 비변사가 아뢴 장용위 외영 5읍 군병의 절목②

1. 용병(用兵)하는 법은 음양 오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경(經)·위(緯)·기(奇)·정(正)이 이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위(衛)의 제도를 폐지하고 순전히 척법(戚法)을 사용하면서부터 편중되는 폐단이 생겨났으므로 병가(兵家)가 이를 병통으로 여겨 왔습니다. 대개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실린 내용을 보건대 음양 빈모(牝牡)의 뜻을 밝히면서 장단(長短)을 동시에 이루는 법을 부치긴 하였으나, 결국은 표리(表裏)가 서로 연결되고 대소(大小)를 서로 포괄하며 방원(方圓)을 나누고 합쳐 각각 온당하게 되도록 하면서 5와 10이 중앙에 거한 상태에서 경(經)·위(緯)의 위치가 정해지는 위(衛)의 제도보다는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위(衛)와 부(部)에서 전적으로 척법(戚法)을 숭상하는 것은 혹 상치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뿐더러 전대(戰隊)·주대(駐隊)·정군(正軍)·유군(遊軍)의 제도에 얽매이는 결과가 될 것이니, 통일된 홀기(笏記)를 만들어내어 척법과 동시에 익히게 함으로써 이름에 맞는 실효를 얻게 하는 동시에 혹시라도 일방적으로 폐지되는 일이 없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
1. 위(衛)의 제도가 소중한 것은, 첫째 통(統)을 만들어 대오 편성을 편하게 할 수 있고, 둘째 농사를 병행하여 군량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이점(利點)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농한기 때에 5번(番)으로 나누어 입방(入防)시키는 것은 결국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오합지졸만 양산해내어 절제(節制)를 쉽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성 내외에서 1부(部)의 군사를 단속한 다음 2월부터 9월까지 8개월 동안은 번(番)을 나누어 영하(營下)에 입방시키면서 둔전(屯田)의 농사를 짓게 하고 경작하는 여가에 대략 진퇴(進退)하는 법을 익히게 했다가 본격적으로 입방시킬 때가 오면 몇 명씩 각부(各部)에 나누어 파견함으로써 1명을 가르쳐 10명을 교습시키는 방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1. 내영(內營)에서 일단 중군(中軍)을 두지 않고 별장(別將)으로 하여금 중군의 임무를 아울러 행하게 했고 보면 이 예를 준용(遵用)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이미 위(衛)의 제도를 복구해놓고나서 또 영사(營司)의 규정을 시행하는 것은 이름에 맞게 실효를 거두게 하는 뜻이 결국 못되니, 대략 위의 제도를 모방하여 따로 외군(外軍)의 총제(摠制)를 둠으로써 위의 뜻을 받들어 군무(軍務)를 수행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관직을 마련하는 것이 중군을 두지 않는 내영의 제도와 어긋나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외사(外使)가 친군위(親軍衛)의 별장에게 수시로 전령(傳令)하여 겸행(兼行)케 해야 할 것입니다.
1. 장락위(長樂衛)의 각 위장과 부장을 일단 실직(實職)으로 임명한 이상 친군위의 별장 및 좌·중·우의 장관(將官)을 전직 군함(軍銜)으로 임명하는 것은 제도를 같이해야 하는 도리가 못될 듯싶습니다. 따라서 삼가 국조(國朝)의 구례(舊例)에 따라, 별장은 녹관(祿官)으로 마련하여 실직으로 확정하고 서울과 지방을 따질 것 없이 아장(亞將) 이하 병사(兵使) 이상 중에 평소 성망(聲望)이 있는 자를 특별히 가려 의망(擬望)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별장을 일단 실직으로 하고 또 총제(摠制)의 임무를 겸행케 한다면 별장의 차출을 내영이나 외영에서 독단적으로 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니, 외사(外使)가 의망하는 격식을 갖춘 뒤 병조 판서와 함께 의논하여 정당한 의망이 되게 함으로써 체면이 중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좌·중·우의 장관 역시 금군(禁軍)의 장관의 예에 따라 실직으로 임명하되, 좌열(左列)·중열(中列)·우열(右列) 장관이라는 이름을 일번(一番)·이번(二番)·삼번(三番)의 장관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또 별장과 번장(番將)은 모두 정사(政事)를 행할 때 차출하되, 혹시 시급히 거행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금군 장관의 예에 따라 구전(口傳)으로 차출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동안 임무를 수행해 왔던 본부(本府)의 중군(中軍)과 독성(禿城)의 수장(守將)은 모두 감하(減下)시키되, 독성을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니 독성 별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따로 차견(差遣)해야 하겠습니다.
1. 내영의 선기대(善騎隊)를 이미 3 초(哨)로 마련한 이상 외영도 차이가 있게 해서는 안될 것이니 친군위(親軍衛)에서 1백 인을 더 뽑아 1 번(番) 2 번 3 번의 제도에 맞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5 읍(邑)을 이미 이속(移屬)시킨 이상 당연히 5 읍으로 하여금 분배(分排)하고 골라 정하게 함으로써 무사들을 위로해 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만, 5 읍에서 모두 뽑아서 채울 수 있을지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60인은 그 읍의 규모에 따라 출신(出身)·한량(閑良) 가운데 선부수(宣部守)로 천거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특별히 뽑아 채워 넣고 나머지 40인은 본부의 사람들을 차출한 뒤 마필(馬匹)을 나눠주고 일체 절목(節目)대로 시행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대(馬隊)는 전적으로 활 쏘는 기예를 중시하는데, 계축년에 절목을 마련할 때 취재(取才)하는 한 조목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정말 소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 뒤로는 새로 차견할 때 반드시 시취(試取)하여 입속(入屬)케 하되, 취재에 관한 절목은 외영으로 하여금 참작해서 마련해 내어 아뢴 다음 준행(遵行)케 해야 하겠습니다.
1. 수성(守城)할 때 외사(外使)는 군마(軍馬)를 총령(摠領)하는 만큼 응접하며 성가퀴에 올라가는 일에 전념하기가 어려우니 본부(本府)의 판관(判官)을 관성장(管城將)으로 차정(差定)해야 하겠습니다.
1. 창룡 위장(蒼龍衛將)으로 용인 현령(龍仁縣令)을 임명하고 팔달 위장(八達衛將)으로 진위 현령(振威縣令)을 임명하고 화서 위장(華西衛將)으로 안산 군수(安山郡守)를 임명하는 것은 모두 전에 마련한 대로 차하(差下)하고, 시흥(始興)과 과천(果川)은 군사의 숫자가 현격히 다르니 과천 현감을 장안 위장(長安衛將)으로 바꿔 임명하고 시흥 현령은 협수 위장(協守衛將)으로 옮겨 정하여 용도(甬道)에 속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풍위(新豊衛)는, 위장은 본부 경내의 당상(堂上) 내·외장(內外將) 및 조관(朝官) 역임자를 차출하고 부장은 당하(堂下) 조관이나 출신(出身) 중에서 차출하며, 속위(屬衛)의 각 부장은 본부나 속읍 할 것 없이 일체 군사가 있는 읍에서 차출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각 위장 관하(管下)의 부장과 통장(統長)을 차출할 때 본부와 속읍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뒤섞어서 하게 되면, 그 대상자들이 평소 길러두었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호령을 발할 즈음에 서로 어긋나고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이는 절제(節制)하는 도리가 못될 듯 싶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부장 이하가 소속된 위(衛)의 지휘에 따라 군무(軍務)에 관계된 일체의 관유(關由)를 감히 어기지 못하게 함으로써 군율(軍律)이 엄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4 성(城)의 위장(衛將)을 일단 용인·진위·안산·과천 등 네 고을의 수령으로 정했고 보면 부장 이하에 대해서도 일정한 규례를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인데, 각성(各城)의 신지(信地)별로 하되 가령 본부군(本府軍)을 마련한 곳에는 본부 경내의 당하 조관이나 출신(出身)으로서 선부수천(宣部守薦)을 받은 자를 차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통장은 평상시 각리(各里)에 정해 두었던 통장 중에서 풍력(風力)이 있어 감당할 만한 자를 골라 차출하고, 타장(長)은 통(統) 안에서 군관을 수행하는 자 중 조금 사무를 처리할 줄 아는 자를 차출하여 각각 타부(夫)를 이끌게 함으로써 신지(信地)에서 성으로 데리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장내(墻內) 및 중포사(中舍)의 장관(將官)과 각처 돈대(墩臺)의 장관은 장교 중에 이력(履歷)이 있고 감당할 만한 자를 특별히 골라 차정(差定)하고, 속읍의 부장 이하를 차출하는 규정도 이상의 예에 따라 마련해서 시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1. 각성 위장의 신지는 동·서·남·북의 정문(正門)에 위치하는데, 파수(派守)하는 법을 보면 그 정문으로부터 똑같이 분할한 뒤에 장령(將領)이 그 중앙에 위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영(本營)의 성제(城制)가 이미 사면(四面)의 방성(方城)으로 되어 있지 않고 보면, 각문(各門)의 사이가 구부러져 있기도 하고 곧바르기도 하여 거리에 차이가 많이 날 뿐더러 각읍(各邑) 군사의 숫자도 많고 적은 차이가 있어 자연 구애받는 점이 많으니, 전문(前門)에서부터 똑같이 분할해 나가 후문(後門)에 이르는 식으로 해서 머리와 꼬리가 합쳐지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팔달위(八達衛)의 경우 위장은 문에 있고, 우(右)·후(後) 2 부(部)는 우측으로 배치해 나가 서남쪽 암문(暗門)의 서쪽 제 2 첩(堞)에 이르게 하고, 전(前)·좌(左)·중(中) 3 부는 좌측으로 배치해 나가 봉돈(烽墩) 북쪽 제 5 첩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창룡위(蒼龍衛)의 경우는, 위장은 문에 있고, 전·좌·중 3 부는 우측으로 배치해 나가 봉돈 북쪽 제 6 첩에 이르게 하고, 우·후 2 부는 좌측으로 배치해 나가 북쪽 암문의 동쪽 제 9 첩에 이르게 합니다. 장안위의 경우는, 위장은 문에 있고, 전·좌·중 3 부는 우측으로 배치해 나가 동쪽 암문의 동쪽 제 8 첩에 이르게 하고, 우·후 2 부는 좌측으로 배치해 나가 북쪽 포루(樓)의 동쪽 제 1 첩에 이르게 합니다. 화서위(華西衛)의 경우는, 위장은 문에 있고, 전·좌·중·우 4 부는 좌측으로 배치해 나가 서남쪽 암문의 서쪽 제 3 첩에 이르게 하고, 후(後) 1 부는 우측으로 배치해 나가 북쪽 포루(樓)의 동쪽 모서리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신풍위(新豊衛)의 경우는, 위장의 신지는 십자통구(十字通衢)에 위치하게 하고, 각 방면마다 2 부씩 배치하여 4 성(城)에 응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본성(本城)은 둘레가 4천 6백 보(步)이니 5보당 1 첩(堞)을 마련하면 9백 20 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 밑의 바깥 둘레에 비해 여첩(女堞) 안의 둘레는 36보쯤 줄어드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9백 13 타()를 보(步)로 계산해 마련해서 배치된 군사에게 나누어 줄 경우, 4 위(衛)의 신지(信地)는 각각 보(步)로 계산하면 1천 1백 40보가 되고 첩(堞)으로 계산하면 2백 28 첩씩이 되는데, 나머지 1 첩은 동성(東城)에 덧붙여주고, 타부는 1 타당 8명씩 마련하면 될 것입니다.
1. 4 성(城)에 증원하여 파견하는 군사는, 남문과 북문에 각 1백 명, 동문과 서문에 각 70명, 상·하의 수문(水門)에 각 60명, 네 곳의 각루(角樓)에 각 50명, 남쪽 암문(暗門)과 서남쪽 암문에 각 60명, 내포사(內舍)·중포사(中舍) 및 동·서·북 암문과 봉돈(烽墩)에 각 40명, 포루(砲樓)·포루(樓)·노대(弩臺)·적대(敵臺)·치성(雉城)·공심돈(空心墩) 등 27 처(處)에 각 20명씩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1. 4 성 각위(各衛)의 각부(各部)·통장(統長)·타장(長)·타부(夫) 및 신풍위(新豊衛)의 신풍대(新豊隊)와 협수위(協守衛)의 협수대(協守隊), 그리고 여기에 주대(駐隊)의 책응병(策應兵) 및 각처에 소속된 표하(標下)·화부(火夫)와 증원 파견된 자까지 모두 합해 마련된 총 병력 수는 1만 1천 7백 28명입니다. 이밖에 대오를 편성하고 남은 군사가 본부(本府)에 1천 6백 19명이 있는데, 이것은 성외(城外) 각처 돈대(墩臺) 및 복로(伏路)·당보(塘報) 할 것 없이 상황이 전개되는 데에 따라서 배정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읍의 보속(保屬) 및 옮겨 오고 옮겨 가는 부류에 대해서는 외사(外使)로 하여금 수령을 신칙해서 더욱 치밀하게 단속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체 실수(實數) 그대로 여정(餘丁)이라고 이름 붙여 역시 통안(統案)에 기록해놓게 함으로써 중간에 새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멀리 척후(斥)하고 봉화(烽火)에 관한 일을 근실하게 행하는 것이야말로 병가(兵家)의 요법(要法)입니다. 본성(本城) 주위의 형세를 보건대, 동성(東城) 밖에는 인가가 드물고 산등성이가 가로 걸쳐져 있는데 광교(光敎) 계곡이나 백운(白雲)의 지름길 등은 관심을 쏟아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영화 찰방(迎華察訪)이 북성(北城) 밖에 설치되어 있는데 아직 결정된 신지(信地)가 없으니 그를 척후장(斥將)을 차정(差定)한 뒤 본역(本驛)에서 편성한 1 부(部)의 군사를 거느리고 용연(龍淵) 위 약암(藥巖) 돈대(墩臺)를 막아 지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암(門巖)에서 애현(艾峴) 아래 사이에 있는 다섯 곳의 돈대에도 50명의 군사에 장관(將官)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되 일체 척후장의 지휘를 받아 위급할 때 경보를 울리면서 임기 응변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팔달위(八達衛) 서쪽으로는 평야가 광막하게 펼쳐지면서 샛길이 이리저리 엇갈려 있는데, 숙지산(孰知山) 돈대와 고양동(高陽洞) 둔사(屯舍) 뒤 언덕의 돈대는 요해지(要害地)로서 모두 관방(關防)에 합당하니, 남쪽 수구(水口) 및 귀산(龜山)의 돈대와 아울러 동돈(東墩)의 예에 따라 장졸(將卒)을 배치하여 경계하게 함으로써 서성(西城)의 노대(弩臺)까지 단계적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서둔(蟾)의 제언(堤堰)에 물을 모아 둠으로써 북둔(北屯)의 수전(水田)에 물을 댐은 물론 만석거(萬石渠)에 통하게 하고, 요로(要路)를 차단하면서 수택(水澤)이 전면과 좌측에 있게 하는 뜻을 부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위(衛)의 제도를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統)에 대한 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옛날 위의 제도를 보면 5인을 오(伍)로 하고 5 오(伍)를 대(隊)로 하고 5 대(隊)를 여(旅)로 하여 거기에 통장(統長) 1인을 두었으며, 호법(戶法)을 보면 5 가(家)를 비(比)로 하고 1백 가를 이(里)로 하였는데, 이 두 가지를 절충하고 참작하여 5 가(家)마다 각각 통수(統首)를 정하고 1백 가마다 대통장(大統長)을 둔 뒤 통의 모든 일을 일체 관장하게 하는 등 전적으로 그들에게 위임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옛 제도를 거듭 밝힌 뒤에야 군정(軍丁)을 뽑을 때 수괄(搜括)하느라 소요스럽게 되는 폐단이 없어지고 단속할 때 생선 비늘처럼 대오가 편성되는 효과를 보게 됨은 물론 병(兵)을 농(農) 속에 숨기면서 평소 통령(統領)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1. 이번에 계하(啓下) 받을 절목(節目)들은 사체(事體)가 자별한데 지금 논열(論列)한 것은 단지 그 대체적인 것만 거론했을 따름입니다. 이 밖에 자질구레한 조목들에 대해서는, 외사(外使)와 속읍의 수령들이 위제(衛制)나 통법(統法) 등을 다각적으로 강구하여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모두 적합하게 되도록 마련해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중도에 폐지되지 않고 오래도록 준행(遵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령 면(面)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하는 식으로 집을 헤아리고 이(里)를 나누어서 통안(統案)을 작성한 뒤, 그 통안에 입각하여 모면(某面) 모리(某里)는 모성(某城)에 소속시키고 어느 집 어느 장정은 어느 첩(堞)에 소속시키는 것으로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부나 속읍을 막론하고 대소 군민(軍民)들로 하여금 모두 각각 자기들의 구역을 알고 있게 하여 그때에 가서 뒤죽박죽되지 않게 함으로써 위급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성내(城內) 및 성외(城外) 부근의 인호(人戶)는 성정(城丁)의 총수(總數)에 포함시키지 말고, 각항(各項)의 표하(標下)·교졸(校卒)·이노(吏奴) 외에는 사부(士夫)·군민(軍民)·남녀·노소 할 것 없이 따로 장부를 작성한 뒤 늘 단속을 하고 있다가 경보가 울리는 즉시 성으로 올라가 각자 담당 구역을 지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타()를 계산해서 나누어 지키게 하되 그 숫자가 상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치첩(雉堞)·초포(砲)·노대(弩臺) 등 지역을 단위로 하여 담당 구역으로 삼게 해야 하겠습니다.
1. 각성(各城)의 담당 구역은 한결같이 해읍(該邑) 군정(軍丁)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정하되, 본부(本府) 군정과 고르게 나눠 마련할 즈음에 위부(衛部)마다 숫자에 비해 서로들 길고 짧게 되는 등 불균등한 폐단이 있게 될지도 모르니, 본부군이나 속읍군 할 것 없이 각성의 위장(衛將)이 각부(各部)의 군사 숫자를 전·좌·중·우·후로 나누고 여기에 표하군(標下軍) 및 화부(火夫)까지 합쳐 총 병력 수를 도안(都案)으로 작성한 뒤 하나는 외영(外營)에 올려 보내고 하나는 성소(城所)로 올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단속하는 것은 지방의 각통(各統)에서 전담하여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주대(駐隊) 책응병(策應兵) 4 부(部)는 1 부마다 1백 명씩으로 하고 여기에 표하(標下) 50명을 합쳐 구성하며, 이 장수 및 부장은 다른 위장이나 부장의 예에 따라 차출하고, 장수의 칭호는 책응장(策應將)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4성의 각면마다 세 곳의 복병(伏兵)과 세 곳의 당보수(塘報手)를 두되, 복병을 설치한 곳마다 1 장(將) 5 졸(卒)로 하여 합계 60명으로 하고, 당보수는 2명씩 배치하여 합계 24명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1. 화부(火夫)는 통(統)마다 각각 5명씩 배정하여 각타마다 등불을 매달고 횃불을 태우고 밥을 짓는 등의 일을 맡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포사(舍)를 장내(墻內)와 성 위에 설치한 것은 전적으로 행궁(行宮)을 호위하기 위해서이고, 돈대(墩臺)를 산 위와 평야에 나누어 설치한 것도 위급할 때 경보를 울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비록 평상시라 하더라도 내(內)·외(外)의 포사 여섯 곳에 대해 근일 마련한 규정에 따라 각각 2명의 군졸을 배치해서 분담 경비하게 하고, 돈대의 경우도 가령 용연(龍淵)·문암(門巖)·애현(艾峴)·귀산(龜山)·숙지(孰知)·고양(高陽) 등 여섯 곳에 대해서는 각기 장교 1인과 군졸 2인을 배정하여 늘 경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수성(守城)에 필요한 기계(器械)는, 1타마다 현등(懸燈) 1잔(盞)·방() 1구(口)·조총(鳥銃) 1문(門)이나 쾌창(快槍) 1지(枝)【적으면 2타에 1문을 설치한다.】 ·단창(短槍)이나 참마도(斬馬刀) 1파(把)·크고 작은 돌멩이 1백 괴(塊)씩을 나누어 주되 도(刀)·부(斧)·곤(棍)·궁(弓)·시(矢)는 화부(火夫)가 맡게 하고, 5 타마다 낭기(狼機) 1위(位)【적으면 10타마다 1위를 설치한다.】 ·수항(水缸) 1구(口)를 다 두고, 성문 아래마다 대장군포(大將軍砲) 1위(位)나 2위를 설치하고, 10타마다 무게 2백 근(斤)이나 1백 50근짜리 대석(大石) 3괴(塊)를 놔 두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속위(屬衛)에 있어서는 위장(衛將) 1인마다 각각 차관(差官)·장교(將校) 2인을 두고, 표하(標下)로는 곤장수(棍杖手)·주장수(朱杖手)·영기수(令旗手)·순시수(巡視手)·문기수(門旗手)·나팔수(喇叭手)·대각수(大角手)·대포수(大砲手)·호적수(號笛手)·등롱수(燈籠手)·장막수(帳幕手)·서기(書記)를 각 2명씩 두고, 인기수(認旗手)·고수(鼓手)·정수(鉦手)·나수(手)·별파진(別破陣)을 각 1명씩 두도록 합니다. 그리고 부장(部將)은 한 사람당 각각 차관·장교 1인을 두고 표하로는 인기수·곤장수·나수·대포수·고수·장막수·서기를 각각 1명씩을 두며, 통장(統長)은 기수(旗手)를 각각 1명씩 두도록 합니다. 용도(甬道) 협수장(協守將)과 신풍 위장(新豊衛將)은 각각 차관 1인을 두고 표하로는 영기수·순시수·곤장수·문기수·나팔수·호적수를 각각 2명씩 두고 인기수·고수·나수·정수·대각수·대포수·별파진·서기를 각각 1명씩 두며, 부장은 표하를 속위의 부장의 예에 따라 마련하되 각기 대포수 1명을 감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척후장(斥將)·책응장(策應將)·아병장(牙兵將)은 표하를 협수장의 예에 따라 마련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시흥(始興)의 군사 4백 73명 가운데 3백 40명은 용도(甬道)의 68첩(堞)에 1첩당 5명씩 나누어 주되, 좌·우 부장(部將)을 차출하여 1백 70명씩 나누어 거느리게 하고 부마다 각각 4명의 통장(統長)을 정하여 단계적으로 절제(節制)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타장(長)은 12명, 화부(火夫)는 40명, 협수장(協守將)의 표하(標下)는 52명, 부장의 표하는 12명, 통장의 기수(旗手)는 8명으로 마련하고, 부장을 차출하는 규정과 통장을 단속하는 법은 다른 속읍(屬邑)의 예에 따라 시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성내에서 조련할 때 조련하러 오는 수성군(守城軍)들에 대하여 그 도리(道里)의 원근과 날짜[日子]의 다과(多寡)에 따라 신포(身布)를 감해 줌으로써 양식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1. 외영(外營) 군보(軍保)의 경우 명색(名色)이 엄청나게 많아 갖가지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각종 군관(軍官)을 제번 군관(除番軍官)이라고 명칭하고 각종 군보를 향보(餉保)로 명칭하는 등, 그 명호(名號)를 통일함으로써 군정(軍丁)을 뽑아 포목을 거둘 즈음에 혹시라도 뒤섞이는 폐단이 있지 않게끔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부(本府)나 속읍(屬邑)을 막론하고 군관은 소속된 5 위(衛)의 이름에 따라 각각 모위(某衛)의 군관이라 하고, 군보의 경우 역시 군관의 예에 따라 모대(某隊)의 군보라고 이름을 붙이게 해야 하겠습니다. 또 예전부터 군관이 상탈(喪)을 당했을 경우에는 으레 현탈(懸)하여 혹시라도 침징(侵徵)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각각 그 이름 아래에 사고를 당한 날짜를 통안(統案) 가운데에 상세히 주(註)로 달아 면임(面任)이나 이임(里任)의 간사한 행동을 막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본부의 군보 외에 또 독성(禿城)의 군보가 있는데 각자 나뉘어 소속된 명색(名色)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다만 각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관계로 본영(本營) 근처에 살고 있는 자가 군명(軍名)에 따라 독성에 부쳐지기도 하고 독성 근처에 살고 있는 자 역시 반대의 경우를 당하기도 하는 형편이고 보면, 지금 와서 통(統) 단위로 편성할 즈음에 방해될 소지가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경내(境內)의 군보에 대해 일단 그 명호(名號)를 통일하기로 한다면, 그 명수(名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어느 면(面) 어느 이(里)는 본성(本城)에 부치고 어느 면 어느 이는 독성에 부친다고 하는 식으로 각각 안책(案冊)을 작성하여 예전처럼 혼잡스럽게 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5 읍에 있는 신풍대(新豊隊) 및 아병(牙兵)은 원래 속오(束伍) 정군(正軍) 가운데에서 단속된 자들이니 군사훈련을 행하지 않는 해에는 관문(官門)에 집결시켜 점검을 행하도록 하고, 4성(城) 각위(各衛) 소속의 팔달대(八達隊)·창룡대(蒼龍隊)·장안대(長安隊)·화서대(華西隊)는 이미 통(統) 단위로 편성되었으니 각기 그 부근의 편리한 장소에 집결시켜 통별로 점검하게 하되, 반드시 수령 자신이 직접 거행하여 소홀해지는 폐단이 없게끔 해야 하겠습니다.
1. 남한 산성(南漢山城)에서 대조(大操)를 행할 때 5 영(營)의 군병으로 하여금 낮에는 장조(場操)를 하고 밤에는 성조(城操)를 익히도록 하는 이것이야말로 공수(攻守)의 작전 모두에 통하는 훌륭한 법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허다한 수성(守城) 군졸들을 모두 장조에 참여케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으니, 합조(合操)를 하는 해에는 동면(東面)으로부터 시작해서 단지 1 면의 군사씩 돌려가며 참여하도록 하고, 면조(面操)를 하는 해에는 그대로 참여케 해야 하겠습니다.
1. 주대 책응병(駐隊策應兵) 및 신풍대(新豊隊)는 훈련에 참가하는 정군(正軍)과 다름이 없으니 각별히 건장한 자들을 뽑아 단속해 둔 뒤 장조(場操)를 행할 때 으레 모두들 참가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조(城操) 때에는 타단위로 헤아려 나누어 지키기 때문에 오방색(五方色)의 호의(號衣)를 입히지 않아도 별로 구애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장조를 행할 때에는 그렇지 않으니 정군과 똑같이 호의를 착용하고 기계(器械)를 소지하게 하되, 당해(當該) 성장(城將) 및 신풍 위장(新豊衛將)이 각각 나누어 거느리면서 정군의 후미와 연결하여 바짝 붙어 주둔시킴으로써 호령을 곧바로 이어 받을 수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1. 향무사(鄕武士)의 경우는 수첩 군관(守堞軍官)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데 반하여, 경내(境內)의 출신(出身)들의 경우는, 선부수 삼천(宣部守三薦)을 따질 것 없이 별군관(別軍官)으로 들어가 소속된 약간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천(無薦) 출신들과 함께 소속된 곳이 없으며, 전함(前銜) 장교의 경우는 이른바 그 청사에서 기록해 둔 자들인데도 대부분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영남(嶺南)의 좌·우열(左右列) 출신들을 대오로 편성한 법에 비추어 볼 때 크나큰 궐전(闕典)이라 할 것이니, 지금부터는 출신들 및 전함 인원들을 모두 모아들여 문안(文案)에 기록함으로써 추후 변통할 수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1. 승도(僧徒)가 어쩌면 성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는 성정(城丁)보다도 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용주사(龍珠寺)에 이미 총섭(摠攝)을 두어 승도를 단속하게 하고 외영(外營)에 소속시켜 가끔 포 쏘는 법을 시험하게 하고 있고 보면, 이들은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의 승졸(僧卒)과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니, 부근에서 독성(禿城)을 협수(協守)케 하면서 타를 헤아려 증원 파견할 수 있는 소지를 삼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성(本城) 북쪽 광교동(光敎洞) 입구에도 작은 사찰을 세웠는데 모든 일이 초창기라서 엉성하고 승도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승도를 모집하여 분위기가 이루어진 뒤에는 용주사의 경우와 똑같이 절목을 마련하여 부근 돈대(墩臺)에 증원 파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독성 산성(禿城山城)은 선침(仙寢)과 근접해 있고 본성과 기각(角)의 형세를 이루고 있는 만큼 외곽에서 호위해야 할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고 중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에 소속된 각종 군관과 군보(軍保)가 2천 1백 23명이나 되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외사(外使)로 하여금 본성의 첩수(堞數)를 헤아리고 배치할 군정(軍丁)을 마련해서 수성 절목(守城節目)을 작성한 다음 추후에 아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지금 이 절목은 크게 시설(施設)하는 것과 관계되는 만큼 전일에 비해 규모가 웅장한데, 소소한 사항들은 계축년의 절목에 기재된 내용을 참작하여 시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1. 군정(軍政)을 서로들 교환하면서, 현재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고질적인 폐단이라 할 것입니다. 지금 본부와 다섯 속읍에서 이미 통법(統法)을 정해 옛 제도를 다시 밝힌 상황에서, 군정을 각자 서로들 관할(管轄)하는가 하면, 심지어 그들을 출동시켜 쓸 때에도 통(統) 안에 현재 있는 인호(人戶)를 다른 읍으로 옮겨 소속시키기도 하고 다른 읍에 산재해 있는 대오를 거꾸로 붙이어 녹안(錄案)하고 있으니, 이는 실상에 입각해서 행하는 정사가 결코 못된다 할 것입니다. 지금 이후로는 토착인(土著人)을 기준으로 단안을 내려 일체 통 단위로 편성된 호수(戶數)로만 시행하되, 본부와 5 읍 사이에만은 서로들 교환하는 것을 허락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1. 본부는 탕목읍(湯沐邑)이니 군제(軍制)도 중요하지만 인화(人和)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아 별무사(兒別武士)를 둔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약(兒弱)으로 충정(充定)한다는 자체가 벌써 조금(朝禁)에 걸리는 일이고 본부의 입장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대로 놔 둘 수는 없기 때문에 명(命)을 기다려 1천 명을 감액(減額)하였습니다. 그리고 납미군(納米軍)의 경우 양정(良丁) 6두(斗) 사정(私丁) 3두로 하는 것이 본디 제로(諸路)에서 두루 행하는 규례인데, 본부의 경우는 보미(保米)가 6두·5두·4두·3두 등으로 각각 달라 균일하게 해야 하는 제도의 뜻에 이미 어긋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대적으로 변통시키는 때에 너그럽게 보살펴 주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기에 6두를 납부하던 7천 4백 79명과 4두를 납부하던 5백 78명에 대해 삼가 하교대로 준행하여 모두 1두씩 특별히 감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본부 안에 단지 5두와 3두의 두 가지 명색(名色)만 있게 함으로써 균일하게 되도록 하긴 하였습니다만, 한편으로 각종 보미(保米)야말로 지방(支放)하는 수요와 직결되는 것인 만큼 불가불 급대(給代)해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감해 준 숫자가 미곡으로 7백 37석 2두이니, 기읍(畿邑)에 있는 강도미(江都米) 3천 석과 칙수미(勅需米) 5천 석에 대한 모조(耗條) 도합 8백 석을 매년 떼 주어 외영에 보내게 함으로써 수요에 충당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이번에 액수(額數)를 감하고 두수(斗數)를 감해 주라고 명하셨는데, 이는 대체로 영(營)으로 승격된 뒤로 군정(軍丁)의 신미(身米)가 예전에 비해 늘어났기 때문에 특별히 너그럽게 보살펴 주는 은전을 베푸심으로써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토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영으로 승격되고나서 더 내게 된 신미는 9백 석인데, 아별무사 1천 명의 액수를 감한 데 따른 미곡 2백 석 및 6두와 4두를 납부하던 군정 8천 57명을 대상으로 각각 1두씩 감해 준 미곡 5백 37석을 합치면 미곡 7백 37석이 되니, 이를 더 내게 된 숫자와 비교해 보면 아직도 1백 60여석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영으로 승격된 뒤로 광주(廣州)의 송동(松洞)과 일용(日用) 2 개 면(面)이 본부로 이속(移屬)됨에 따라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토지가 더 넓어지고 인민(人民)이 더 늘어났는데, 2 개 면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것과 인민이 납부하는 것을 1백여 석 부족한 숫자와 비교해 헤아려 보면 몇 배 정도만 될 뿐이 아니니, 이로부터 군정에게 여유가 생기고 요역이 수월해져 1 부(府)의 군민(軍民)이 모두들 성대한 은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1. 속읍이 본부와 약간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그곳에 있는 군정(軍丁)을 지금 이미 외영으로 전속(專屬)시켰으니 이 뒤로는 똑같이 너그럽게 보살피면서 특별히 관심을 쏟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5 읍에 있는 속오군(束伍軍) 5백 10명과 납포군(納布軍) 4백 90명 등 도합 1천 명에 대해서 특별히 감액(減額)하도록 명하고, 또 4 읍의 여정(餘丁)과 군보(軍保) 2백 28명에 대해서도 모두 각읍에 환급토록 한 것인데, 이 액수를 가지고 만약 골고루 배정해 널리 베풀 경우 지금 이후로는 인족(隣族)의 피해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게 될 것이고 노약자들은 면제받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니, 이러한 뜻을 다섯 속읍에 알린 뒤 반드시 직접 거행하게 함으로써 대소 군민(軍民)으로 하여금 조정에서 특별히 혜택을 베푸는 뜻을 알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양정(良丁)과 사정(私丁)은 그 역의 이름이 각각 다르고 징납(徵納)하는 것이 현격하게 틀리는데도 근래 제로(諸路)에서 첨액(簽額)하는 정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 뒤섞어 시행하고 있는 등 간악한 폐단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 소속된 5 읍의 성정(城丁)과 향보(餉保)를 보더라도 양정과 사정이 서로 뒤섞이는 폐단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성에 올라가 첩(堞)을 지킬 때에야 물론 구별할 필요가 없겠지만 각자 본읍(本邑)에서는 양(良)·사(私) 두 글자를 일일이 그 첨안(簽案)의 각 이름 아래에 기록해 둔 뒤 포목을 거두는 등의 절목을 시행할 때 일체 법례(法例)에 따라 하면서 감히 어기지 못하게 하고, 궐원(闕員)이 생겨 대리자로 충정(充定)할 때에도 반드시 이름별로 자세히 조사한 뒤 예전대로 기록해 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한 명이라도 서로 뒤섞이게 한 것이 점검할 때 발각되었을 경우에는 당해 수령을 중하게 논핵(論劾)한다는 내용으로 규정을 정해 거듭 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1. 5 읍의 군보(軍保)와 장보(匠保)를 통칭 향보(餉保)라 하여 모두 외영에 소속시킨 만큼 도리상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면서 힘을 느슨하게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良)·사(私) 군정(軍丁)이 각각 1냥(兩)·2냥씩 내는 것은 가감(加減)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서 변통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합니다만, 그 후전(後錢)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부터 각사(各司)에서 거두어 들일 때 제멋대로 조종하면서 많이 받고 적게 받는 등 일정하지가 않아 군민이 그 폐단에 시달려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데 합쳐 소속시킨 초기에 일정한 규정을 두어 너그럽게 보살피는 뜻을 보여 주어야 마땅하니, 2냥을 납부하던 것은 2전(錢)으로 마련하고 1냥 납부하던 것은 1전으로 마련하여 거두어 들이도록 절목에 기록해서 감히 어기지 못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逃)·노(老)·고(故)의 부표채(付標債)야말로 지필(紙筆) 비용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도 아무렇게나 징수하여 많게는 3, 4냥을 받기도 하고 최소한 1, 2냥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고 있으니 법의 뜻에 어긋난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양정(良丁) 5전 사정(私丁) 3전으로 규정을 정해 다시 밝히고, 고대(故代)할 때에는 연전의 조령(朝令)에 따라 징수하지 못하게 과조(科條)를 엄히 세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5 읍에 있는 각사(各司)·각군문(各軍門)의 군보(軍保)가 내는 것을 모두 화성(華城)에 납부하게 함으로써 갖가지로 주구(誅求)하는 폐단을 제거하였는데, 화성에서 경각사(京各司)로 이송하는 것 역시 이미 폐단이 많고 또 일의 체면에도 관계되니, 경각사에서 받아 들이는 미포(米布)는 급대(給代)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돈으로 환산하여 5천 5백 12냥인데, 이에 대해서는 균역청(均役廳)의 2천 7백 56냥과 병조의 겸 사금 군록(仕禁軍祿)·마태가(馬太價) 및 관서(關西)의 소미가(小米價) 등 도합 2천 7백 56냥을 합쳐서 급대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각사·각군문의 각종 군오(軍伍)·장보(匠保)가 내는 전(錢)·미(米)·포(布)는 많고 적은 것을 따질 것 없이 특별 분부를 통해 일체 급대토록 하였는데, 각종 군보가 내는 돈 5천 3백 60냥과 외영에서 거두어 들이던 것 모두를 외영에 소속시켜 별도로 저장해 두게 함으로써 불시의 수요에 대비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원전】 47 집 120 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병법(兵法) / *군사-부방(赴防) / *역사-고사(故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호구(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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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 정조 036 16/12/10(갑술) / 태복시가 올해 목장에서 기르는 말의 수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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