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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병조가 진법과 군졸의 기예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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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6 23:08:11, 5753회 읽음)

인조 019 06/09/29(병술) / 병조가 진법과 군졸의 기예에 대해 아뢰다

병조가 아뢰기를,
“이번에 바야흐로 조종조의 구규(舊規)에 의거하여 따로 무학 교수(武學敎授)를 설치하고 병서(兵書)를 인출하여 무사들을 가르침으로써 장수를 양성할 터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졸을 교련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면, 도감에서 훈련시키는 것은 단지 왜병을 막는 기술뿐이고 오랑캐를 막는 방책은 《연병실기(鍊兵實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책까지 아울러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진법(陣法)의 경우는 우리 나라의 오방제(五方制)야말로 산천의 험난하고 평탄한 형세에 따라 임기 응변하여 기책(奇策)을 베푸는 것이니, 군졸로 하여금 그 방색(方色)을 완전히 알게만 하면 왜병이나 호병(胡兵)이나 모두 제압하는 데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조에서 장관(將官)들에게 능마아(能磨兒) 법을 가지고 시험을 보여 그 결과로 녹봉을 올리고 내렸으니, 이 또한 조종조의 구규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장관이나 병사·수사들은 전혀 진법을 알지 못해 군대를 행군시키거나 진을 칠 때 그저 기패관(旗牌官)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형편이니, 그러고서야 어떻게 임기 응변하고 기책을 내어 적을 제압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마땅히 우리 나라의 《제승방략(制勝方略)》에 한결같이 의거하여 무사 가운데 병법을 아는 자를 엄선해서 진법을 가르치게 하고, 그 근무태도를 고과에 반영하여 녹봉을 올리고 낮춤으로써 권장하는 여지를 마련하게 하소서.
군졸의 기예로 말하건대 우리 나라의 장기는 궁전(弓箭)이 최고인데, 편전(片箭)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서 그 묘법(妙法)은 조총(鳥銃)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단 조총을 사용하면서 편전은 전적으로 폐지되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새것만 좋아하고 옛것은 염증을 낸 나머지 이것은 버리고 저것만 취하고 있으니,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과거를 보일 때마다 특별히 편전에 대한 시험도 보여 따로 상을 주기도 함으로써 나라 사람들이 모두 편전을 익히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필시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래서 사자(射者)·창자(槍者)·총자(銃者)·기자(騎者)가 모두 칼을 차고 있는데, 칼을 차고서도 그 기술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절강(浙江)의 왜병과 호병을 보면 모두 검법을 알고 있는데, 육박전을 벌일 즈음에 네 가지 기예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면 반드시 차고 있는 칼을 가지고 사생을 결단하려 덤빕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군령이 엄하지 못하여 접전해 볼 겨를도 없이 먼저 저절로 무너져버리고 말았으니, 검술이 전진(戰陣)에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여기게 된 것도 진정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선조(宣祖)께서는 그런 점을 아셨기 때문에 시위(侍衛)하는 장사(將士) 및 선전관들 모두에게 검술을 익히게 하고 그 성적을 고과하여 상과 벌을 내렸으므로 그 당시의 연소한 무인들은 모두 용병(用兵)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군(諸軍)이 검법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칼을 차고 다니는 자도 적고, 각 고을에서 군기(軍器)를 월과(月課)할 때에도 조총만 비치해 놓았을 뿐 창이나 칼은 폐지하고 만들지 않으니, 지극히 애석한 일입니다.
《검법(劍法)》에 이르기를 ‘칼을 사용할 때에는 그 육체를 한덩어리로 결속시키고 담력과 용기를 단련시키기 때문에, 칼을 쓰는 자는 항상 살벌한 마음을 축적하게 되니 그 사람의 용기는 필시 보통 군사보다 배는 될 것이다.’ 하였는데, 이 말은 도감의 군사들에게서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상번(上番)한 군사들 중에서 여력(力)이 뛰어나고 용감한 자를 뽑아 따로 부오(部伍)를 편성하고 도감의 포수 가운데 기예가 이루어진 자로 30인을 뽑아 교사를 정해 준 다음 검술을 가르치게 하여 정해진 기일 안에 입격한 자에 대해서는 한유(閑遊)케 하여 더욱 기예를 익히게 하는 한편, 월등하게 뛰어난 자에 대해서는 본조에서 별시(別試)를 보여 시상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을 격려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번(退番)할 때에는 따로 상첩(賞帖)을 지급하여 거주하는 고을로 하여금 호역(戶役)을 헤아려 덜어주게 하고, 상번할 때에 본조에서 다시 그 검술을 시험하여 그 동안의 숙련도를 고과하여 상벌을 실시하면 될 것입니다.
또 외방의 속오군(束伍軍)으로 편입된 군사의 경우는 따로 대오(隊伍)를 편성한 뒤, 평상시에는 여수(旅首)나 대정(隊正)으로 상번케 하고, 혹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다시 여수나 대정으로서 인솔해 오게 하면, 봉족(奉足)이 있으면서 등록된 군사는 모두 전쟁에 임했을 때 가용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구차하게 충원하여 원한만 사는 경우와 비교해서 현격히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시위군사와 선전관, 그리고 내삼청(內三廳)의 무사 가운데에서도 건장하고 용감한 자를 뽑아 모두 검술을 익히게 하여 한결같이 선조조의 고사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속오군 중에서 정군(正軍)을 덜어내어 대오를 편성하는 일은 체신(體臣)과 의논하라.”
하였다.


【원전】 34 집 29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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