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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정조 037 17/01/25(기미) / 장용영이 내영과 외영의 새로 정한 절목을 올리다

 이름 : 

(2005-12-06 23:13:22, 5506회 읽음)

정조 037 17/01/25(기미) / 장용영이 내영과 외영의 새로 정한 절목을 올리다

장용영이 내영과 외영의 새로 정한 절목을 올렸다.

【내영의 절목은 다음과 같다. “
1. 본영의 설치는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제도가 확립되지 않고 호칭들도 정해지지 못하였다. 지금 내·외영을 함께 두고 규모를 크게 마련하는 때를 당해서는 당연히 호칭을 바로잡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병방(兵房)에 대한 일은 당연히 다른 영문의 규례에 따라 대장이라 호칭해야 할 것이나 본영의 사체가 지극히 엄중하니, 의당 어영사(御營使)의 옛 제도를 본떠 병방을 장용 내사(壯勇內使)라 하고 크고 작은 문서들에서의 호칭도 역시 어영사를 어영 대장이라 호칭하는 규례를 본떠 대장이라 호칭한다. 이미 내·외영을 두었으니 내사(內使)는 그대로 군색 제조(軍色提調)를 겸임하되 비국 당상이 역시 예겸하도록 한다.
1. 향색 제조(餉色提調) 1원은 시임 호조나 선혜청의 당상을 이조가 의망해서 낙점을 받는 것으로 하되, 만일 세 사람을 의망에 갖추지 못할 경우에는 이전에 지낸 사람을 계청하여 통의(通擬)하도록 한다.
1. 본영의 대장은 일찍이 장신(將臣) 이상을 지낸 사람으로 제수한다.
1. 각영의 장신들이 혹은 명소패(命召牌)를 차고 혹은 밀부(密符)를 차기도 하나, 군중에서의 호부(虎符)는 곧 국초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본영의 일은 전보다 더욱 자별한 만큼 부신(符信) 등의 절차도 의당 옛날 제도를 써야 할 것이니, 본영사(本營使)가 차는 것은 호부를 쓰도록 한다.
1. 군향색(軍餉色)의 낭청(郞廳)은 다른 군문(軍門)의 예에 따라 종사관(從事官)이라 호칭하고, 음관으로 일찍이 군수를 역임한 문벌과 이력이 있는 사람을 본영에서 품지하여 삼망을 갖추어 제수한다. 그리고 직인(職印) 하나를 장용영종사관인(壯勇營從事官印)이라고 새겨서 사용한다.
1. 각영에 중군(中軍)을 둔 것은 조련할 때에 호령을 승접하는 직무를 행하는 데에 불과할 뿐이므로, 그것을 두고 안 두는 것이 그리 긴중할 것이 없다. 또 광묘조(光廟朝) 때에 후원(後苑)에서 습진과 조련을 할 적에도 윤사로(尹師路)와 양성지(梁誠之)가 좌상(左廂)·우상(右廂)의 대장이 되어 이를 거행하면서 중군을 설치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용대장(龍大將)·호대장(虎大將)을 창설할 때에도 그들이 열무정(閱武亭) 조련에 참여한 때문에 역시 중군은 두지 않고 대장이 직접 호령을 받아 거행하였다. 그리고 정초청(精抄廳)을 설치하였을 때에도 대장 아래 별장만을 두어 금위영에 합속시키고 금군의 좌·우 별장으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깃발을 흔들고 북소리를 울리며 호령을 주고 받게 했었다. 본영의 군제(軍制)가 대부분 국초의 제도에서 본뜬 것이고 보면 중군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으니 본영에는 중군을 두지 않는다.
1. 별장(別將) 1원은 일찍이 포도 대장이나 훈련 도감의 중군이나 금군의 별장을 지낸 사람 중에서 차출한다.
1. 군제는 각기 근거한 바가 있으니, 3부(部) 6사(司)의 제도가 있고 5영(營) 3사(司)의 제도가 있다. 3부는 바로 북방의 군제이고 5사는 곧 남방의 군제이다. 부(部)에는 천총(千摠)이 있고 영(營)에는 영장(營將)이 있는데, 본영은 5사를 두어 척씨(戚氏)의 남방 군제를 본떴으니 천총은 두지 않는다.
1. 기왕 천총을 두지 않은 바에는 본영의 파총(把摠)이 바로 다른 군문의 천총이니 이력(履歷)에 있어서도 당연히 이에 준해야 할 것이다. 파총은 가선 대부인 병사(兵使) 이하로 일찍이 방어사를 지낸 사람에 이르기까지 융통해서 차출하되, 일찍이 변경을 다스린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특별 전교에 의해 제수된 자는 이 규정에 구애받지 않고 방어사의 이력을 가지고 바로 곤임(任)에 의망하는 규례를 적용한다.
1. 선기장(善騎將)은 일찍이 변경이나 중앙과 지방의 장수를 지낸 사람으로 차출한다.
1. 초관(哨官)은 당하 정3품 이하 관원의 천거가 있는 출신인(出身人)으로 차출한다.
1. 본영에 방위하는 친위병으로 이미 마군(馬軍)·보군(步軍)을 두었으나 보군은 단지 3초 뿐이라서 1사(司)의 제도에 차지 않으니, 2초를 더 두어 1사 5초의 제도에 맞게 한다. 그리고 어가가 지나게 되는 지방 고을에서나 섣달 공물 마련을 위해 사냥을 하는 곳에서는 향군(鄕軍) 20초를 나누어 배치해서 4사를 만들어 5사의 제도를 갖춘다.
1. 난후 창검군(後槍劍軍)은 이미 본영에서 대령하게 되어 있으되, 혹 60명이나 혹 30명을 임시해서 품지를 받아 거행토록 한다. 그리고 임시해서 금위영의 아병(牙兵) 중에서 70명 정도와 어영청의 겸내취(兼內吹) 30명까지 도합 1백 명을 본영에 이속시키고, 요포(料布)와 수요 물자들도 인원수에 따라 떼내어 이속시킨다.
1. 가초 군병(加抄軍兵)의 수용에 드는 비용은 불가불 구분지어 조처해야 할 것이니, 부족한 수효로 돈 8천 냥, 무명 80동(同), 쌀 4천 석을 좋을 대로 힘써 마련하여 그들 비용의 뒷받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처의 향군을 각기 그 지방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처음 정한 규정에 따라 거행한다.
1. 배봉진(拜峰鎭)을 설치한 데에는 그 의의가 가볍지 않다. 일찍이 선왕의 능을 모셨던 곳이니, 각영의 참군(參軍)에게 맡겨 소홀하게 하는 폐단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특별하게 진둔(鎭屯)을 설치하여 그곳을 금지하고 보호하는 일을 전적으로 관장하게 한 것이니, 해당 진의 별장은 본영이 스스로 임명하되, 전직의 직함이나 또는 이미 출신한 자이거나 아니거나를 막론하고 부천(副薦)과 말천(末薦)으로 추천된 사람으로 각별히 가려 임명한다.
1. 노량진은 매년 현륭원에 행행할 때에 거가가 들러서 주필하는 곳이고 보면 사체가 다른 곳과는 자별하다. 그러니 해당 진의 별장은 본영이 스스로 임명하는 자리로 바꾸고, 별아병(別牙兵) 1초는 부근의 백성들 중에서 뽑아 통솔하되, 배봉진의 아병 2초와 합해서 3초의 제도로 만든다. 그리고 배봉 별장의 깃발은 별후사 파총(別後司把摠)이라 호칭하고, 노량 별장의 깃발은 별아병장(別牙兵將)이라 호칭한다.” 외영의 절목은 다음과 같다. “
1. 수원부에 현륭원을 모신 뒤로 보호하는 절차를 한껏 다하고 있으나, 3품 고을 원에게 맡기고 있는 것은 체모를 높이는 뜻이 아니다. 또 군사 일로 본다면 본영의 내영·외영이 함께 설치되었고, 직무로 본다면 행궁의 정리 책임이 주어져 있으니, 이점이 전하의 마음속에서 영단을 내려 특별히 유수로 승격시킨 연유라 할 것이다. 관을 임명하는 일에 있어서는 이미 결정한 데에 따라 양도(兩都)에 비겨 한 등급을 높여서 문신인 경우는 정2품 이상으로 한정하여 묘당이 의망해 추천하고, 대신 무장(大臣武將)의 경우는 특지에 의한다. 그리하여 수원부 유수로서 장용 외사(壯勇外使)와 행궁 정리사(行宮整理使)의 호칭을 겸한다.
1. 외영의 군제를 금방 바로잡았는 바, 조련에 참가하는 군사는 별효사(別驍士) 2초, 마병(馬兵) 4초, 속오군(束伍軍) 26초, 각종의 표하군 5백 47명, 치중군(輜重軍) 2백 명인데, 이것은 이미 훈련 도감의 군제를 본뜬 것이니, 더 이상 가감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둔다. 그리고 근래에 조련이 오랫동안 중지되어 군정(軍政)이 허술해졌다. 그러니 지금 크게 경장(更張)하는 때를 당하여 병든 마필(馬匹)과 지쳐 있는 군사들을 특별히 찾아내어 기어코 진작시켜서 일신되도록 해야 한다. 조련은 본부가 전적으로 관장하여 거행하되, 가을이 된 뒤에 다른 군문의 예에 따라서 품지하여 조련을 행한다. 그리고 비용의 쌀로 양인(良人)의 봉족(奉足)이 낸 2천 석은 그대로 외영에 소속시켜 받아 유치한다.
1. 본부는 삼남의 요충으로 현륭원을 이미 이곳에 모셨고 또 행궁을 두었으니, 그 체모를 높이고 요새지를 중히 하는 도리가 전보다 자별하여야 할 것이다. 성을 축조해야 한다는 의논은 예전부터 있어 왔는데, 더구나 유수부로 승격된 뒤이고 보면 더욱 당연히 바로 시설해야 할 것이다. 성을 축조할 물력(物力)을 먼저 구획하여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니, 본부와 안산창(安山倉)에 소재한 환곡과 군량 등 각종 곡물들을 모두 축성곡(築城穀)으로 명목을 지어서 매년 그 모조(耗條)를 거두어 들여 차차로 경영해나갈 뒷받침으로 삼을 것이다.
1. 본부에 아직은 성을 축조하지는 못하나 앞으로 경영하는 것이 이미 순서가 정해진 일이고 보면 성정군(城丁軍)을 불가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에 총융청의 소관으로 집에 머무는 군관 1백 50인, 본부의 소관인 방어사영의 번을 면제받은 군관 2백 90인, 토포사의 소속으로 번을 면제받은 군관 4백 59인을 수첩 군관(守堞軍官)으로 호칭을 바꾸고, 본부의 군수 별무사(軍需別武士) 2천 2명에서 마사(馬士) 2백 4명을 감하고 유방군(留防軍) 7백 2명을 성정군이라 명칭하여 성을 수비하는 제도를 이루도록 한다.
1. 독성 산성(禿城山城)은 이미 요새로서의 중요한 지역이자 또 군량을 쌓아둔 곳이니, 방어하는 도리를 소홀하게 할 수 없다. 전에 총융청의 소관이었던 장초(壯抄) 2초, 아병 1초, 둔장초(屯壯抄) 68명, 군수보(軍需保) 1백 25명을, 본성의 소관 아래 모집해 들인 군관 30인, 수첩군관 1백 30인, 아병 2초, 봉족군(奉足軍) 4백 명, 별무사 1천 5백 23명과 합해서 성을 수비한다는 명목으로 본성에 전속시키고, 그 중 장초 2초, 아병 1초, 둔장초 68명, 군수보 1백 25명은 본래 쌀을 납부하는 군인들이었으니, 그 납부한 쌀은 외영에서 받아 유치한다.”.】


【원전】 46 집 375 면

【분류】 *군사(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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