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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 순조 004 02/01/20(임진) / 장용영을 폐지할 것을 명하다

 이름 : 

(2005-12-06 23:24:34, 4984회 읽음)

순조 004 02/01/20(임진) / 장용영을 폐지할 것을 명하다

장용영(壯勇營)을 폐지할 것을 명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심환지(沈煥之)가 아뢰기를,
“생각건대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지(聖智)의 자질로써 정령(政令)과 시조(施措)가 반드시 전성(前聖)을 본받았고 제작(制作)과 운위(云爲)가 스스로 천칙(天則)에 부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용영의 창설에 있어서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서 대농(大農)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재용이 스스로 넉넉하였고 평민(平民)을 소란시키지 않고도 영제(營制)가 엄연히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침(園寢)을 천봉(遷奉)한 뒤에 이르러서는 새로 큰 읍(邑)을 일으켜 위부(衛府)를 만들어 배치하여 내외(內外)를 공어(拱禦)하는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대저 강간(强幹)의 도모는 오영(五營)이 있고, 굳게 방위하는 방술은 열곤(列)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우리 선대왕은 행동함에 조금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 성인(聖人)으로써 즉위하신 처음의 윤음이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고 식량을 풍족히 하는 방책에 권권()하셨으니 어찌 시급하지 않은 군대를 양성하고 셀 수 없이 송은 비용을 증가시키고
자 하였겠습니까? 진실로 정밀한 뜻과 괴로운 마음이 따로 있는 바 있어 규모와 조획(措劃)을 미리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화성 행궁(華城行宮)의 미로한정(未老閒亭)의 편액(扁額)을 보면 성상의 뜻의 담겨 있는 바를 누가 우러러 인식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내외영(內外營)이라 하지 않고 외내영(外內營)이라 하고 영사(營司)라 하지 않고 위부(衛部)라 한 것은 모두 언외(言外)의 의의(意義)를 열어 보인 것입니다. 거의 나라 사람들이 영회(領會)할 수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하늘이 수명을 빌려 주지 않아서 끝내 천재 일유(千載一有)의 커다란 주략(籌略)으로 하여금 시행할 수 없게 하였으니 매양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심간(心肝)이 찢어지는 듯하게 됩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가로이 계실 적에 순순(諄諄)하게 하교하기를, ‘나의 이 조처는 부득이한 것이다. 지금 좌우(左右)에서 나를 가까이 호위하게 하는 것은 모두가 일시적인 방편에서 나온 것이니 후세에는 이것으로써 법을 삼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연신(筵臣)들이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씀을 받들어 지금까지도 옥음(玉音)이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대저 충질(忠質)을 손익(損益)하는 것은 각각 시의(時義)가 있고 모열(謨烈)을 현양하고 계승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대개 선조(先祖) 때에는 부득이한 정밀한 뜻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부득이한 제도의 설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의리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제도는 변통을 하는 것이 합당하니 ‘일시적인 방편으로 한 것이니 법으로 삼을 수 없다.’는 하교를 바로 오늘에 있어 마땅히 우러러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3년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의리로써 우선 내년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지만 이것은 통달하지 못한 논의입니다. ‘고친다’라고 하는 것은 변혁하고 경장(更張)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정온(精蘊)을 발휘하고 이훈(彛訓)을 현양하여 제작(制作)하신 깊은 뜻과 후손에게 전하신 성덕(盛德)으로 하여금 해와 별처럼 나란히 게양되게 한다면 이것을 ‘잘 계승하고, 잘 전술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비록 당일로 시행한다 하더라도 좋을 것입니다. 신은 삼가 본영(本營)의 절목(節目)을 가지고 전곡(錢穀)과 포목(布木)을 구처(區處)하는 계책과 군교(軍校)와 이례(吏隸)를 귀속시키는 방도에 대해 반복해서 헤아린 나머지 대략 두서(頭緖)가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다른 대신(大臣)과 등연(登筵)한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하순한 뒤에 장용영(壯勇營)을 특별히 철파(撤罷)할 것을 명하시고 이어서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주사(籌司)에서 회의하여 본영의 절목에 나아가 곧바로 개정을 단행하게 한다면 실로 선왕(先王)의 뜻을 밝히고 선왕의 아름다움을 천양하는 도리에 부합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이에 우러러 아뢰는 것입니다.”
하니,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대신과 여러 재신들은 각각 소견을 진달하라.”
하였다. 영부사 이병모(李秉模)가 말하기를,
“이제 동료 재상이 주달한 바를 듣고 옛날을 추억하니 슬픈 감회가 새로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제도는 변통을 하는 것이 합당하니 ‘일시적인 방편으로 한 것이니 법으로 삼을 수 없다.’는 하교는 바로 오늘날에 있어 마땅히 우러러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신은 다른 의논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좌의정 이시수(李時秀)는 말하기를,
“수상(首相)의 부연하여 주달한 것은 비록 오늘에 있었으나 신 등이 깊이 생각하고 익히 의논한 것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낱낱이 하순을 하심에 있어 어찌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우의정 서용보(徐龍輔)는 말하기를,
“대개 이 외내영(外內營)을 제치(制置)한 것은 미로한정(未老閒亭)의 편액(扁額)을 쓴 성의(聖意)를 살펴본다면 정밀한 뜻의 담겨 있는 바를 누가 우러러 본받지 않겠습니까? 수상이 주달한 바는 진실로 천명(闡明)하는 의리에서 나온 것이니 신은 여기에 다시 진달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개성 유수 김문순(金文淳), 상호군 이만수(李晩秀), 대호군 서유대(徐有大), 형조 판서 황승원(黃昇源), 광주 유수 이경일(李敬一), 호조 판서 이서구(李書九), 행 호군 남공철(南公轍)·이한풍(李漢)·신대겸(申大謙)이 모두 다른 말이 없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의 주달한 바가 이와 같고 또 자교(慈敎)를 받았으니 아뢴 대로 하도록 하라.”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장용영(壯勇營)의 일은 이제 연주(筵奏)를 듣고 옛날의 설시(設施)한 뜻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스스로 서러운 눈물이 얼굴을 가림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비록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조정의 신하들이 누가 알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고 식량을 풍족히 하는 것으로써 말을 하니, 현재 주상(主上)이 아직 나이 어리고 나라의 형세(形勢)가 외롭고 위태로운데 그것이 백성을 위해 폐단을 바로잡는 조처에 있어 내가 어찌 일이 예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여 한갓 난처해하고 신중히 함에만 있고 변통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또 주달하는 바를 들으니 선조(先朝)께서 ‘이것으로 법을 삼을 수 없다.’라는 것으로써 하교를 하여 연신(筵臣)이 그 말씀을 들은 자가 많이 있다고 하니 더욱 어찌 그 사이에 이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전후(前後)를 통해서 볼 때 굳이 아껴서 지속시킬 필요가 없으며 대신의 주달한 바에 따라 거행하라.”
하였다.


【원전】 47 집 422 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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