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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18세기 『어영청중순등록』에 나타난 각종 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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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9 11:39:11, 7182회 읽음)

18세기 『어영청중순등록』에 나타난 각종 무예

정해은(군사편찬연구소)            
                                                                          요약 - 최형국
              
지금까지 조선시대 무예사와 관련된 연구논문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무예사의 경우 그 사료의 한계로 인해 조선에서 어떤 무예가 얼마나 시행되었는지 그리고 주변국의 무예수용 및 파급효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본 논문은 『어영청중순등록』(1747-1867)에 실린 18~19세기에 어영청에서 실시한 중순 시험의 과목과 여기에 합격한 사람들을 기록해 놓은 자료를 분석하여 군영에서의 무예실태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무예도보통지』의 간행 전후한 시점에서 조선 후기 사회에서 무예가 차지하던 위상을 간접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무예와 관련한 자료를 검토해보면 무예 보급은 활쏘기나 조총처럼 단시일 안에 큰 진전을 보기 어려웠다. 이는 첫째, 무예는 활쏘기나 조총과 다리 오랜 시간과 특별한 기예를 요하였다. 둘째, 조선에서 무예란 생소한 기예이자 새로운 형식의 전법이었으므로 제대로 무예를 익히기 위해서는 해당 무기나 훈련법 그리고 교범서나 교사를 갖추어야 한다. 셋째, 무예 시범의 설발 기준과 방법이 정확하지 않는 것도 무예보급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무예보급이 절실했던 시기에도 각종 단병무예는 무과시험에서 제대로 과목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실제로 『무과총요』를 분석해보면 단병무예가 포함된 무과시험은 17회(선조 32, 33, 36, 38, 41, 41<별시>, 광해군 2, 2<별시>, 인조 17, 정조 1, 6, 6<함경도과>, 6<평안도과>, 10, 13, 24)에 그치고 있다. 특히 무과 내에서 활쏘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에 대해 가능한 양반들을 무관으로 발탁하겠다는 조선왕조의 의지가 무과제도 안에녹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영청중순등록』의 합격자 현황을 살펴보면, 첫째 상을 받은 사람은 1회당 1,000~1,300명 안팎으로 꽤 많은 인원이었다. 특히 각종 단병무예에 합격자가 가장 많은 것이 특징이다. 둘째, 어영청 소속 군사들이 중순에서 활쏘기를 시험 보는가 아니면 무예 또는 조총을 시험 보는가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직급이나 출신 성분과 깊은 연관을 맺는 듯 하다. 셋째, 그렇다고 하여 어영청에서 시재의 무게 중심이 무예에 놓여져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각 기예의 우수자에게 내린 상전에서 잘 나타난다.(조총이나 활쏘기 합격자의 경우 직부전시의 특전이 있는 반면, 무예 우수자는 목면 등 상품으로 한정되어 있다)

『어영청중순등록』에 나타난 무예는 총 25기이다. 평검, 용검, 예도, 왜검, 왜도, 왜검교전, 제독검, 본국검, 신검, 쌍검, (언)월도, 협도, 단창,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낭선, 등패, 권법, 곤봉, (보)편곤, 마상월도, 마상쌍검, 기창교전이다. 『무예도보통지』에 기술된 내용에 따라 평검과 용검, 본국검과 신검, 단창과 기창을 같은 무예로 보면 총23기가 된다. 여기서 군영에서 사용된 무예 용어의 통일과 실제 장신들이 마련한 통일안이 군영에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전후한 시기에 어영청에서는 『무예도보통지』에 정리된 무예가 보급된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다양한 무예가 일률적으로 광범위하게 보급된 상태였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또한 어영청 이외에 다른 군영도 검술 위주의 무예가 실시된 사정은 비슷하나 위의 자료를 통해 밝혀보면 군영마다 특징을 보인 무예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어영청에 소속된 군인 가운데 직급에 따라 무예 수용의 차이가 뚜렷하였다. 어영청에 소속된 모든 군인 가운데 장관·장교들은 각종 무예에서 상을 탄 사람이 저조했고 활쏘기에서 집중적으로 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군총은 장관·장교에 비해 월등하게 각종 무예에서 상을 탄 사람들이 많았다.

본 논문은 18세기 조선에서 어떤 무예가 어느 정도 보급되었는지에 대한 시론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따라서 조선의 무예 연구는 보다 다양한 사료들을 활용한 미시적 분석이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때서야 비로소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이해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무예도보통지』에 반영된 실학사상 학술회의
-2005. 5. 27. 주최 : (사)무예24기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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