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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역사] 병기(兵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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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5 21:20:38, 6642회 읽음)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3권    병지(兵志)

○ 부여(夫餘)는 활, 화살, 칼, 창을 병기로 사용하며, 집집마다 갑옷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 예(濊)는 보전(步戰)에 능하며, 길이가 3장이나 되는 창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혹 몇 사람이 함께 잡고서 사용하기도 한다. 낙랑(樂浪)의 단궁(檀弓)이 그 지방에서 생산된다. 《후한서》
○ 소수맥(小水貊)에서는 -살펴보건대,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좋은 활이 산출되는데, 이른바 맥궁(貊弓)이 그것이다. 《상동》
○ 동옥저(東沃沮)는 사람들의 성품이 굳세고 용감하다. 창을 잘 다루며, 보전을 잘한다. 《상동》
○ 마한(馬韓)은 활, 방패, 창, 큰 방패[櫓]를 잘 쓴다. 《진서(晉書)》
○ 진한(辰韓)은 보전을 잘하며, 병기는 마한과 같다. 《삼국지》
○ 고구려 사람들은 무력을 숭상하며, 활, 화살, 칼, 창을 잘 쓰고, 갑옷이 있으며, 전투에 능하다. 《양서(梁書)》
○ 고구려의 병기에는 갑옷[甲], 쇠뇌[弩], 활, 화살, 극(戟), 삭(槊), 모(矛), 연(鋋) 등의 창붙이가 있다. 《후주서》 ○ 《수서(隋書)》에, “고구려의 병기는 중국과 대략 같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일본기(日本紀)》를 보면, 인덕(仁德) 때에 고구려에서 쇠로 만든 방패[鐵盾]와 쇠로 만든 과녁[鐵的]을 조공하였고, 추고(推古) 때에 고취(鼓吹)와 쇠뇌와 만석(挽石)을 조공하였다.
○ 당나라 정관(貞觀) 19년(645, 보장왕4)에 태종(太宗)이 고려를 격파하고 명광개(明光鎧) 1만 령(領)을 노획하였다. 《신당서》 ○ 삼가 살펴보건대, 위에서 ‘고려’라 칭한 것은 바로 고구려이다.
○ 백제(百濟)의 병기에는 활, 화살, 칼, 창이 있으며, 기사(騎射)를 숭상하는 습속이 있다. 《후주서》
○ 신라(新羅)의 병기는 중국과 같다. 《수서》 ○ 《당회요(唐會要)》에, “당나라 정관 10년(636)에 남조(南詔)가 낙랑 사람의 검(劒)을 바쳤다.” 하였다. ○ 삼가 살펴보건대, 낙랑의 검이라 한 것은 시대상으로 볼 때, 남조가 혹 신라의 검을 얻어서 그 이름을 꾸민 것인 듯하다.
○ 고려의 병기는 소략하여 강한 쇠뇌와 큰 칼이 없다. 《송사》
○ 고려의 궁전(弓箭) 제도는 모양새가 간략하여 탄궁(彈弓)과 같다. 활의 몸체 길이가 5자이며, 화살은 대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버드나무 가지로 만드는데, 더 짧고 작다. 화살을 쏠 때는 시위가 가득 당겨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온몸을 들어 쏘아 보내어, 화살이 비록 멀리 나가기는 해도 힘이 없다. 전문수위(殿門守衞)와 장위군 내의 기병 및 중검랑장(中檢郞將)이 모두 호창(虎韔)에 화살을 끼고 있는데, 이는 불시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 과녁의 모양은 대략 도고(鞉鼓)와 같은데, 양쪽 편에 모두 가죽으로 만든 귀가 있어서 움직이면 소리가 나며, 창[矛] 위에 꿰어 매달았다. 대(隊)마다 약 20여 명으로, 대례(大禮) 때에는 천우좌우장위군(千牛左右仗衞軍)으로 하여금 이를 잡게 한다.
○ 극(戟)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회경문(會慶門) 안에 각각 12개를 진열하고, 아래와 위를 금동(金銅)으로 장식하였는데, 형체가 매우 크다. 조서를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 때 병장(兵仗) 안에 진열된 것은 크기가 겨우 6자쯤 되는데, 대체로 중국과 대략 같으며, 크기가 같지 않을 뿐이다.
○ 수패(獸牌)의 만듦새는, 몸체는 나무이고 그 위에 가죽을 덮었으며 사자[狻猊]의 모습을 그렸다. 위에 다섯 개의 칼날을 꽂고 꿩 꼬리털로 가리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또 상대방을 찌를 수 있으면서도, 그 견고하고 예리함을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백희(百戱)를 하는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물건 같아서, 시석(矢石)을 막아 내지는 못할 듯하다. 지금 고려의 병장(兵杖) 가운데는 두 가지가 모두 있는데,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패검(佩劍)의 꾸밈새는 길이가 길고 칼날이 예리하며, 백금(白金)과 오서(烏犀)에다 간간이 해사어피(海沙魚皮)를 섞어서 칼집을 만들고, 환뉴(環紐)를 만들어 색 끈으로 꿰는데, 혹은 혁대(革帶), 상옥체(象玉彘), 봉필(琫珌) 등속으로도 하는데, 역시 옛날의 유제(遺制)이다. 문위교위(門衞校尉)와 중검랑기(中檢郞騎)가 모두 찼다. 《이상 모두 고려도경》

신(臣 《선화봉사고려도경》을 지은 서긍을 말함)은 듣건대, 범엽(范曄)이 지은 《후한서》에 이르기를, “이(夷)는 뿌리[柢]이니, 어질어서 생육하기를 좋아함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천성이 유순하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융(西戎)이 싸움을 좋아하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고려는 본래 기자(箕子)가 팔조(八條)로 가르친 지역이지만, 그러나 병기가 매우 간단하고 소략한 것이 어찌 그 성품으로 인해 그런 것이겠습니까. 병법에 이르기를 “병기가 견고하지 못하면 맨손으로 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고려 사람의 병기는 소략하고도 간단하니, 이 점이 바로 여러 차례 흉노에게 곤액을 당하면서도 그들과 더불어 겨루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습속이 다른 나라의 병기라 하더라도 각각 사용하는 곳이 있는 법이니, 알아 두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 명물(名物)을 갖추어 왼쪽에 그려 올립니다. 《상동》
○ 조선에서 좋아하는 것은 화피(樺皮)로 만든 활인데, 그 활은 일반적인 활에 비해 조금 짧으나 화살을 쏘기에 아주 좋다. 《조선부(朝鮮賦) 주》
○ 미소궁(弭小弓)은 지금 대부분 고래의 지느러미로 만들어 침상 머리맡에 놓아두고서 불시의 사태를 막는 데에만 쓴다. 근래에 조선의 활을 잘 쏘는 이만고(李萬古)라는 자가 이것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름을 이만궁(李萬弓)이라 한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신(臣 한치윤(韓致奫) 자신을 말함)이 살펴보건대, 왜인이 이만고라고 칭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태조이다. 우리 태조께서 일찍이 동북면 상만호(東北面上萬戶)로서 위엄과 덕이 왜인에게 드러났으므로 왜인들이 ‘이 만호(李萬戶)’라고 칭한 것이다. 왜음(倭音)은 고(古)와 호(戶)가 서로 통용되니, 명호옥(名護屋)을 명고옥(名古屋)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고려사》 심덕부전(沈德符傳)에, “태조는 활을 잘 쏘았다. 왜적과 함주(咸州)에서 대진(對陣)하였을 때에 군대가 있는 곳에서 1백여 보 되는 곳에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태조가 연달아 화살 세 대를 쏘아서 모두 적중시켰다. 그러자 왜적들이 모두 서로 돌아보면서 놀랬다. 태조가 왜어(倭語)를 아는 자를 시켜 큰소리로 말하기를, ‘이번에 주장(主將)은 바로 이 만호다. 너희들은 속히 항복하라.’ 하니, 왜적들이 모두 도망갔다.” 하였다. 그러니 소궁(小弓)은 혹 태조께서 만든 것이 왜인들에게 유전된 것은 아닌가?
○ 명(明) 성화(成化) 12년(1476, 성종7)이다. 이 당시에 외국과의 병기(兵器) 무역을 금지하였는데, 조선에서 주청하기를, “소방은 북쪽으로는 야인(野人)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섬나라인 왜와 이웃하고 있어서 오병(五兵)에 소용되는 것을 하나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활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것 가운데 쇠뿔[牛角]은 오로지 상국(上國)에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고황제(高皇帝) 때에는 화약(火藥)과 화포(火砲)를 하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제 활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쇠뿔을 수매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하여 다른 이민족과 같이 금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이에 병부에서 의논하여 해마다 활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쇠뿔 50지(枝)를 수매하도록 허락하였다. 그 뒤에 다시 수요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분량을 한정하지 말 것을 요청하자, 조서를 내려 그 곱절을 수매해 가도록 허락하였다. 《명사》 ○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에서 활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재료인 쇠뿔을 수매하기를 주청하니, 해마다 50지를 수매하도록 허락한다. 또 해마다 궁면(弓面) 2백 개를 수매하도록 허락하며, 이 숫자를 넘지는 못한다.” 하였다. ○ 《명사》에, “만력(萬曆) 17년(1589, 선조22)에 조선의 공사(貢使)가 돌아가면서 화약 수매를 주청하였는데, 오도남(吳道南)이 안 된다고 고집하였다.” 하였다.
○ 조선에서 화기(火器)에 익숙하게 된 것은 동정(東征)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법은 나무로 패(牌)를 만들고 담장과 같이 죽 늘어놓고서 구멍을 열고 총(銃)을 설치하는데, 총의 위력이 자못 강하다. 《무비지(武備志)》 ○ 《화한삼재도회》에, “《징비록(懲備錄)》에 이르기를, ‘천정(天正) 14년(1586, 선조19)에 종의지(宗義智)가 건너와 조총(鳥銃)을 조선에 전하였다. 조선에 조총이 있게 된 것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임진년의 변란에 한 달도 못 되는 사이에 경성(京城)이 함락되어 팔도가 모두 떨었는데, 이것이 비록 태평스런 세월이 오래되어 백성들이 전쟁에 대해 알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왜인들에게는 조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화기가 없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갓 활과 화살만을 숭상하고 화기를 익히지 않았다. 이에 《서애집(西厓集)》에 이르기를, “임진년 이전에는 단지 김지(金墀)가 만든 대ㆍ중ㆍ소의 승자총통(勝字銃筒)만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척계광(戚繼光)이 이른바 빠른 창[快槍]류에 불과한 것으로, 단지 허공에 쏘아서 군대의 기세를 돋우는 데나 쓸 수 있을 뿐이지, 명중시키기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였다. 임진년 이후로 도감(都監)에서 그 제도를 모방하여 조총을 만들어 당시에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지금은 훈련도감의 포수들이 조총을 전적으로 익히고 있으며, 열읍(列邑)의 군기 가운데도 역시 조총이 많다. 그러나 왜인들이 만든 조총처럼 정교하고 빠르지 못하다.

[주D-001]단궁(檀弓) : 동예(東)에서 생산된 활의 일종으로, 반어피(班魚皮)와 함께 중국인들에게 애용되었다.
[주D-002]일본기(日本紀)를 …… 조공하였고 :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1 인덕천황(仁德天皇)에 나오는데, 이 기사는 모두 적신(的臣)의 시조전승(始祖傳承)이므로 그 연대나 내용이 의문시되나, 고구려와 일본의 문물 교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철순의 실제 예로는 석상신궁(石上神宮)에 높이 139cm의 장방형으로 생긴 방패가 있는데, 이는 전투용이라기 보다는 의식용(儀式用)이었던 것 같다.《韓國學基礎資料選集 古代篇, 475쪽 주》
[주D-003]남조(南詔) : 당나라 때 오만(烏蠻)이 주체가 되어 건립한 국가로, 운남(雲南), 사천(四川), 귀주(貴州) 일대에 있었다.
[주D-004]수패(獸牌) : 짐승의 문양을 새긴 방패이다.
[주D-005]해사어피(海沙魚皮) : 바다 상어 가죽을 말한다.
[주D-006]환뉴(環紐) : 칼집 둘레에 달아맨 고리를 말한다.
[주D-007]봉필(琫珌) : 칼에 다는 장식으로, 위에 다는 장식을 봉(琫)이라 하고, 아래에 다는 장식을 필(珌)이라 한다.
[주D-008]오병(五兵) : 싸움에 소용되는 다섯 가지의 병기로, 《주례》 하관(夏官) 사우(司右)에서는 활과 화살[弓矢], 창[矛], 몽둥이[殳], 가지창[戈], 미륵창[戟]이라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시칙훈(時則訓)에서는 도(刀), 검(劍), 창, 미륵창, 화살이라고 하였다.
[주D-009]동정(東征) :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군사를 파견한 것을 말한다.
[주D-010]종의지(宗義智)가 …… 전하였다 : 조총은 종의지가 건너와서 전한 것이 아니라, 황윤길(黃允吉) 등이 선조 22년(1589)에 일본으로 사신 갔다가 돌아올 때 대마도(對馬島)의 도주(島主)인 종의지로부터 선물로 받기로 하고 귀국하였는데, 곧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그것이 실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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