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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 2(軍政編二) - 訓鍊都監 設置沿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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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7:08:06, 6277회 읽음)

군정편 2(軍政編二)  

훈련도감(訓鍊都監)


설치 연혁(設置沿革)


선조 27년 갑오(1594년)에 설치하였다. 임진년(1592년)에 왜추(倭酋) 수길(秀吉)이 입구(入寇)할 적에 명조(明朝)에서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ㆍ이여백(李如柏)과 남방 출신의 장군 낙상지(駱尙志) 등이 40,0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구원하려 왔다. 상지가 일찍이 대신 유성룡(柳成龍)에게 말하기를, “조선(朝鮮)이 바야흐로 미약한데 적이 오히려 영토 안에 있으니 이때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가장 급하다. 명군(明軍)이 철수하기 전에 기예(技藝)를 학습시키면 수년 동안에 정예(精銳)가 될 수 있으며, 왜병도 방어할 수 있다.” 하므로, 유성룡이 곧 행재소(行在所)에 상주하고 또한 금군 한사립(韓士立)으로 하여금 70여 명을 모집하게 하여 낙상지에게 교도(敎導)하기를 청하니, 낙이 부하 장육삼(張六三) 등을 발탁하여 교사를 삼아서 곤방ㆍ등패(籐牌)ㆍ낭선(狼筅)ㆍ장창(長鎗)ㆍ당파(鐺鈀)ㆍ쌍수도(雙手刀) 등의 기예를 습득시켰다. 왕이 명하여 도감을 설치하게 하고, 대신 윤두수(尹斗壽)로 그 사무를 주관하게 하였다가 얼마 뒤에 성룡에게 그 사무를 대신하게 하였다. 성룡이 모집에 응하려는 자는 큰 돌을 들고 한 길[丈] 이상되는 담을 뛰어 넘는 자라야 입대를 허가하도록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수천 명을 얻게 되어, 파총(把摠)과 초관(哨官)을 두어 이를 영솔하게 하였다. 처음 이여송이 평양(平壤)을 수복(收復)하였을 때에 왕이 그에게 가서 사의(謝意)를 표하고, 또한 명군의 전후 승패가 서로 이유를 여송이 아뢰기를, “먼저 왔던 북방 출신의 장군들은 늘 호군(胡軍)을 방어하는 것만 익혔으므로 싸움에 불리하였는데, 지금 쓰는 것은 곧 척계광(戚繼光)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왜적 방어법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비밀히 그 책을 그의 부하에게서 구입하여 성룡에게 보이니, 성룡이 종사관(從事官) 이시발(李時發) 등과 토론하여 강해(講解)하고, 또 유생(儒生) 한교(韓嶠)로 낭관을 삼아 전담시켜 명나라 장수에게 질문하여 3수(三手) 사수(射手)ㆍ포수(砲手)ㆍ살수(殺手) 의 기술 단련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부문(部門)으로 나누어 연습하여 모두 척씨의 제도대로 하니 몇 달만에 완성되었다.

이 해에 명조에서 호대수(胡大受)가 나온 것은 3수를 교수하기 위하여 초청하여 온 것이다. 한교가 살수제보(殺手諸譜)를 번역하고 또 창법(槍法)을 유격 허국위(許國威)에게 질문하여 후보(後譜)를 만들었다. 영종 35년 기묘에 장헌세자(莊獻世子)에게 명하여 죽장창(竹長槍)ㆍ기창(旗槍)ㆍ예도(銳刀)ㆍ왜검교전(倭劍交戰)ㆍ월도(月刀)ㆍ협도(挾刀)ㆍ쌍검(雙劍)ㆍ제독검(提督劍)ㆍ본국검(本國劍)ㆍ권법(拳法)ㆍ편곤(鞭棍) 등 12종의 기술을 증입(增入)하고, 의 곤방 등 6기와 아울러 이것이 18기가 되었고, 정종 14년 경술(1790년)에 또 기창(騎槍)ㆍ마상쌍검(馬上雙劍)ㆍ마상월도(馬上月刀)ㆍ마상편곤(馬上鞭棍)ㆍ격구(擊毬)ㆍ마상재(馬上才) 등의 6기를 증가하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집하니 이것이 24기가 되었다.

성룡이 또 조총을 가르치려 하였으나 화약이 없음을 걱정 하였는데, 군기시장(軍器寺匠) 대풍손(大豐孫) 이란 사람이 화약 고려 말기에 중국 상인 이원(李元)이 배로 예성강(禮成江)에 왔다가 군기감(軍器監) 최무선(崔茂宣)의 종의 집에 들어 있었는데, 무선이 종에게 이를 잘 대접하도록 하였더니, 원이 자초(煮硝)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 화약이 이때부터 있게 되었다 을 만들어서 적에게 공급하여 죄가 사형(死刑)에 해당한 것을 특별히 용서하고 염초(焰硝)를 굽도록 하니, 풍손이 감격하고 두려워하여 있는 힘을 다하니 하루에 10여 근을 구워 낼 수 있게 되었다.

각부(各部)로 하여금 주야로 쏘기를 연습시켜 그 성적을 평정(評定)하여 상벌을 실시하였다. 성룡이 계청(啓請)하여 군병을 더 모아 10,000명을 채워 5개 영을 설치하고, 이덕형(李德馨)으로 병조 판서에다 도감의 사무까지 겸하여 주관하게 하고, 무신 조경(趙儆)으로 대장을 삼고, 문신 신경진(辛慶晋)ㆍ이홍주(李弘冑)로 낭관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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