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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실록 - 숙종대 열무기록

 이름 : 

(2011-01-10 00:15:49, 3446회 읽음)

숙종 5년 기미(1679,강희 18)  

9월11일 (계묘)

노량에서 대규모 열무를 행하다


노량(露梁)에서 대규모의 열무(閱武)를 하는데, 임금이 융복(戎服)과 우립(羽笠) 차림으로 말을 타니, 모든 관원들도 융복 차립으로 어가를 따랐다. 노량의 교장(敎場)에 이르러 장전(帳殿)에 드니, 병방 승지(兵房承旨) 안여석(安如石)이 여러 중신들에게 북을 잡기를 청하고, 훈련 대장 유혁연(柳赫然)이 조련을 거행할 것을 청하였다. 중군(中軍) 윤천뢰(尹天賚)가 단(壇) 밑에 서서 승장포(升帳砲) 쏠 것을 청하고 또 깃발 올릴 것을 청한 다음 호각을 불어 관기(官旗)를 모으고는, 포(砲) 쏘는 소리와 함께 진세(陣勢)를 펼치고 가왜(假倭)를 편성하여 전진하고 후퇴하며 어울려 싸우는 형상을 만들었다. 오시수(吳始壽)가 아뢰기를,
“세종 때 선덕(宣德) 병오년에 남교(南郊)에서 대규모의 열무를 할 적에, 왕세자 이하 모든 관원이 갑주(甲胄)를 갖추고서, 1품은 단 위에 오르고 2품 이하는 모두 단 밑에 있었으며, 진세(陣勢)를 다섯 번 바꾼 뒤에 해산시켰습니다. 오늘날 하는 것은 바로 평일의 사습(私習)으로서 이것으로는 잘하고 못하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임인년 열무 때는 이완(李完)이 대장(大將)이 되어, 삼면에서 갑자기 적의 침입을 전달하니, 별장(別將)들이 대처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별다른 호령이 있은 뒤에야 그 잘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병조 판서 김석주(金錫胄)가 아뢰기를,
“예전에는 주장(主將) 외에 또 객대장(客大將)을 차출하여 두 진영을 서로 대치시켜서, 각기 기병(奇兵)을 내어 무예를 겨루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진 왜란 이후부터 비로서 척계광(戚繼光)의 병법을 써서 가왜(假倭)를 편성하여 전투를 익혔던 것입니다.”
하였다. 유혁연이 화차(火車)를 내어 별도로 한 진영을 편성할 것을 청하니, 〈이 화차는〉 지난해 훈련 도감(訓鍊都監)에서 새로 만든 것이다. 화차 한 대가 5층으로 되어 있으며, 층마다 열 매(枚)의 화총(火銃)을 설치하여 전진·후퇴하며 어울려 싸우는데, 50매의 화총을 한꺼번에 같이 쏘니, 참으로 평지의 이기(利器)이다. 임금이 군기시(軍器寺)와 훈련 도감에 명하여 더 만들게 하였다. 여러 군대가 막 영루(營壘)를 철수하여 퇴진하려고 하는데, 임금이 김석주에게 명하여 금군(禁軍)을 풀어 미처 퇴진하기 전에 침범하게 하였는데, 금군이 여러 차례 전진하고 후퇴하니, 임금이 금군을 철수하여 세 곳에 집결시켜 약속한 장소로 물러가도록 명하였다. 화차와 영루가 다시 늘어서자, 임금이 또 마병(馬兵)에 명하여 돌진하게 했으나 들어가지 못하였다. 어영군(御營軍) 및 정선한 잡색군(雜色軍) 두서너 초(哨)를 합쳐서 포진시키고, 또 가왜(假倭) 한 초를 차출하여 어울려 싸우고 번갈아 포(砲)를 쏘게 하다가 한참 뒤에야 그쳤다.
허적(許積)이 나아와 아뢰기를,
“성삼문(成三問) 등의 육신(六臣)이 죽은 뒤 어떤 의사(義士)가 이 강의 남쪽 언덕에 시체를 거두어 묻고서 돌을 세워 표시를 하였으나, 감히 그 이름은 쓰지 못하고 다만 모씨(某氏)의 묘(墓)라고만 써 놓았는데, 그 무덤이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습니다. 선왕(先王)께서 그 자손을 녹용(錄用)하라고 명한 것은 대개 그 절의를 칭찬한 것입니다. 지금 임금의 행차가 바로 가까이 거둥하셨으니, 특별히 봉식(封殖)을 명하신다면 빛이 날 듯합니다.”
하였다. 민희(閔熙)가 옳지 않다고 하니, 허적이 다시 아뢰기를,
“명 태종(明太宗)이 방효유(方孝孺) 및 그의 종당(宗黨) 70여 명을 죽였으나, 곧바로 그의 벼슬을 복직시키고 그의 묘를 세워 주었으니, 대개 절의는 군주로서 마땅히 포창해야 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해당 관사에 명하여 봉식(封殖)하게 하였다. 임금이 이어 상(賞)을 내리는데, 양국(兩局)의 대장과 중군 및 금군의 별장·도감, 마병의 좌우 별장에게 각각 숙마(熟馬)한 필씩을 내렸다. 대사간 민취도(閔就道)가 아뢰기를,
“삼군(三軍)의 이목(耳目)이 금고(金鼓)와 정기(旌旗)에 있는데, 단 위의 호령을 군중에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반드시 교련관이 내려가서 말로 전달한 뒤에야 비로소 앉고 일어나는 동작을 취하니, 어디에다 기고(旗鼓)를 쓰려는 것입니까? 훈련 대장 유혁연과 중군 윤천뢰를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임금이 따르지 않다가, 이튿날 이르러 윤허하였다. 윤휴(尹鑴)가 아뢰기를,
“주상께서 이미 몸소 대장의 일을 행하셨으니, 두 대장은 마땅히 갑주(甲胄)를 갖추고 중군(中軍)의 일을 행했어야 했는데, 버젓이 단 위에 눌러 있어 신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근일의 예규(例規)가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이는 잘못된 예규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례가 그래왔던 것이지, 오늘날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하였다. 저녁에 궁궐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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