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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 홍재전서-서북(西北) 무신의 관방(官方)을 변통하라는 하교

 이름 : 

(2011-11-14 17:43:37, 3090회 읽음)

홍재전서 제31권  

교(敎) 2

서북(西北) 무신의 관방(官方)을 변통하라는 하교


문(文)과 무(武)는 상호 보완 관계에 있어 어느 한쪽만을 중하게 여겨서는 안 되니, 어느 한쪽만을 중하게 여기면 습속이 그 추이를 바꾸어 나라가 그 폐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원백(原伯)은 학문을 폐기하였다는 것으로 기롱을 받았고 상술(向戌)은 병정(兵政)을 해이하게 하였다는 것으로 비난을 받았으니, 여개(余玠)의 똑같이 보아야 한다고 한 논의는 이에 송조(宋朝)에 있어 약석(藥石)과 같은 것이 되었다.
예악(禮樂)을 좋아하고 시서(詩書)에 능통한 것이 비록 장수에 대해 논할 때 근본이 되기는 해도 윗사람을 친히 하고 어른을 섬기는 것이 어찌 모두가 유자(儒者)의 복색을 한 사람뿐이겠는가. 그런데도 태평한 날이 오랫동안 계속되기만 하면 번번이 문(文)이 성하고 무(武)가 해이해지는 근심이 생긴다. 한 번 궁마(弓馬)를 업으로 삼으면 곧 비난과 수모를 불러와 거친 사람이라 손가락질을 하고 함께 무리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전쟁을 치러야 할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마침내 무인들의 힘을 빌어야 하니, 옛날에 “기른 것은 쓰이는 것이 아니고 쓰이는 것은 기른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 그렇지 않겠는가.
아조(我朝)는 문치(文治)를 숭상하기는 해도 반드시 무비(武備)를 신칙하여 똑같이 여겨야 하는 것을 늘상 염두에 두고 어느 한쪽만을 중하게 여기는 데 따른 폐단을 경계하여 왔다. 서북(西北)의 경우는 변방의 방어에 관계되는 곳으로, 그 강하고 용감한 성향으로 인하여 오로지 말 타고 활쏘는 기술이 뛰어난 자들만을 뽑아 풍속에 따라 다스려 왔고 혹시라도 변한 적이 없었다. 이는 실로 문(文)의 장려와 무(武)의 분발을 지역에 따라 특성에 맞게 운용해 온 데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습상(習尙)이 점차 해이해져 무를 부끄럽게 여기고 모두 유생이라는 이름을 차지하려 하여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곧 강경(講經)에 응하는 구두(口讀)를 익힌다. 이에 5백 가구가 넘는 큰 고을에도 혹 도적을 막을 활과 화살마저 부족하니, 장차 기풍이 나약해져 변방의 방어가 소홀해질 것이다. 내가 이를 심히 병통으로 여기고 있다가 지난번 한 의주 부윤(義州府尹)의 말에서 깊이 취한 바가 있었다.
의주부 한 고을 안에 서당(書堂)이라 이름하는 것이 수십 개나 되니, 문이 성하면 무가 쇠하는 것은 필연적인 형세이다. 중신(重臣)이 조정으로 돌아와 일찍이 이러한 폐단을 진달한 바가 있었는데, 한 부(府)가 이와 같으니 온 도내의 일을 알 만하고 서로(西路)가 이와 같으니 북로(北路)를 추측하여 알 만하다. 대개 그동안의 수신(守臣)들이 혹 힘써야 할 일에 어두워 스스로 문옹(文翁)의 교화에 가탁하고 망녕되이 무성(武城)의 통치를 바라서 강무(講武)와 열병(閱兵)의 광장이 잡초로 뒤덮이고 학업을 돕고 선비를 길러 내는 데 드는 비용이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허비되고 있는 가운데 일찍이 융정(戎政)이 날로 실추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정은 사방의 근본이니, 그 연유를 가만히 궁구해 보면 어찌 수신의 잘못 때문일 뿐이겠는가. 인재를 격려하여 권면하는 방도는 오로지 어떤 인재를 등용하고 버려두느냐에 달려 있고 인도하여 이끄는 공효는 정주(政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서북의 경생(經生)으로서 과명(科名)을 훔치는 자는 전혀 문자에 어둡고 겨우 언해(諺解)나 익힌 정도인데도 한 번 갑과(甲科) 진사(進士) 급제자의 명단에 들면 곧 조적(朝籍)에 통하여 대함(臺銜)에 오르고 읍재(邑宰)에 제수되는데, 아무리 낮아도 삼조(三曹)의 낭료(郞僚)나 국자감(國子監)의 여러 관직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저 무인들은 실로 유독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종신토록 선달(先達)이라는 이름을 바꾸지 못하는 자가 열에 여덟아홉은 되고, 비록 다행히 은택을 입게 되더라도 또한 모두 갖은 고생을 실컷 겪으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하고 마침내 천거받는 자리라고는 말직(末職)이나 부직(副職)에 지나지 않고 관직도 수문장(守門將)이나 부장(部將)에 지나지 않는다. 혹 훈련원 주부나 훈련원 판관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나 다만 요행 중의 요행일 뿐이다. 조정에서 정주(政注)하여 등용하고 버려두는 것이 이미 이와 같이 한쪽에 편중되게 하니, 습상(習尙)이 점차 변화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이와 같이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나는 패수(浿水)의 서쪽과 철령(鐵嶺)의 북쪽에 다시는 활을 잡을 사람이 없어지게 될까 두렵다.
예전에 선조(先朝) 때 서북인 가운데 발탁되어 영장(營將)이나 수사(水使)에까지 이른 자가 또한 왕왕 있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들리는 바가 없으니 어째서인가? 어쩌면 그리도 실용성이 없는 문(文)을 귀하게 여기고 유용한 무(武)를 버려두고 있단 말인가. 내가 많은 인재가 적체되어 있는 고통을 깊이 염두에 두고 외세에 의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한 번 이 문제로 하교를 내리려고 한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폐단이 날로 심해져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하기 어려운 형편이니, 바로잡아 고칠 방책을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大臣) 및 장신(將臣), 병조 판서는 이 문제를 깊이 상의하여 그 천거법부터 관방(官方)에 이르기까지 서북 무변(武弁)을 거두어 등용하는 데 관계되는 정사 가운데 별도로 변통할 수 있는 것을 아울러 충분히 강구하여 의견을 하나로 모아 보고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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