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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 화성(華城)에서 진찬(進饌)하는 날 중외에 유시한 윤음 원행(園幸) 사실을 덧붙임

 이름 : 

(2011-11-14 17:54:19, 3333회 읽음)

홍재전서 제28권  
윤음(綸音) 3


화성(華城)에서 진찬(進饌)하는 날 중외에 유시한 윤음 원행(園幸) 사실을 덧붙임 ○ 을묘년(1795)


장락당(長樂堂)에서 축수의 술잔을 받들어 올리고 낙남헌(洛南軒)에서 술자리를 베풀면서 경건히 북두(北斗) 자루에 술을 따르고 남산(南山)처럼 장수하시기를 축원하였고, 이튿날 또 노인들을 섬돌과 뜰로 불러들여 자궁의 덕에 배부르게 하였으니, 오늘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래에서 이미 화봉인(華封人)의 축원을 올렸는데 위에서 어찌 홍범구주(洪範九疇)에 따른 하사를 아낄 수 있겠는가. 노인으로서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이하 70세 이상 된 사람 및 61세가 된 사람들에게 각각 비단 한 필을 하사하고, 또 누런 명주를 주어 구장(鳩杖)에 맬 수 있게 할 것이며, 본부에서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각각 한 자급을 가자하라.
한 고조(漢高祖)는 풍패(豊沛)에 대해서, 광무제(光武帝)는 남양(南陽)에 대해서 탕목읍(湯沐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히 복호(復戶)를 하사했었는바, 역사책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구나 이 화성 지역은 대가가 행차하여 머물렀던 곳이며 선침(仙寢)을 봉안한 곳이 아닌가. 우리 자궁을 모시고 올 적에 길 양쪽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임금의 행차를 바라보는 기쁨과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하는 정성으로 곳곳마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모든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칭송하였다. 그러니 지금 만약 별도의 혜택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이 지역의 부로(父老)와 자제(子弟)를 위로하겠는가. 전에 이미 급복한 이외에 원침 아래에 사는 백성들에게 특별히 2년을 더 급복하고, 성 안팎에 사는 백성들에게는 1년을 더 급복하라.
남의 노인들에게 은혜가 미치게 하는 것을 이 네 가지보다 먼저함은 은혜를 미루어 넓힌 선왕의 인정(仁政)이었다. 이번 행차는 그 시기가 자궁의 회갑을 맞이하는 해이고 봄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절기인데, 자궁의 기후가 편안하시어 성대한 의식을 순조롭게 행하였으니, 영광을 입어 산천이 빛을 더하게 되었다. 이에 자궁의 마음을 우러러 체득하여 크나큰 은혜를 대대적으로 베풀어서 기로(耆老)에게 이미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문무과를 치르고 군사들의 사열도 행하였다.
그런데 저 누더기를 걸치고 창백한 모습을 한 자들만이 함께 즐기고 기뻐하는 대열에 들지 못한다면 어찌 하늘의 아름다움을 받들어 행하는 뜻이 되겠는가. 내일 신풍루(新豊樓)에 나아가 사민(四民)과 진민(賑民)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승선(承宣)에게 명하여 길이 조금 먼 마을로 나뉘어 가서 창고를 열어 먹이도록 할 것이다. 지금 이때에 죽을 먹이고 전대를 채워 주어 구덩이에서 벗어나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한다면 이는 털끝만큼도 모두 자궁께서 내려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백성들이 비록 무식하고 무지하다 한들 어찌 서로 기뻐하면서 크나큰 은혜를 가슴에 품고 인자한 덕을 칭송하지 않겠으며, 남산과 북두성처럼 장수하시기를 축원하는 마음이 지금의 내 심정과 같지 않겠는가.
이를 통하여 생각건대, 인정은 은혜를 미루어 나가는 데 있을 뿐이니, 맹자(孟子)가 이른바 “이 마음을 들어서 상대에게 시행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지금 화성 한 부(府)로써 미루어 보면 한 도(道)를 알 수 있고, 한 도를 미루어 본다면 7개 도와 양도(兩都)를 알 수 있다. 지금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화성 한 부에만 미치고 팔도(八道)와 양도에 미치지 않으며, 단지 올해만 시행하고 천년만년토록 시행되지 않는다면, 이것을 어찌 미루어 나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리소(整理所)의 설치가 옛날에 있었던 것인가. 실로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폐단을 줄이고자 해서 설치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적은 돈도 경상 비용을 축내지 않고, 위로는 대내의 음식 공급, 중간으로는 반열에 수행한 관원들의 노자, 아래로는 군마(軍馬)와 여도(輿徒)들의 식량과 사료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리소에서 마련하였으니, 이것이 10만 꿰미의 돈을 별도로 준비해 온 까닭이다.
10만이라는 수효로 이와 같은 행사를 치르자면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어가를 돌리려 함에 도리어 정리소에 남은 돈이 있다. 호조로 돌려서 몇 달간의 경비로 쓰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지방에 은혜를 베푸는 데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 액수대로 곡물을 마련하여 ‘을묘정리곡(乙卯整理穀)’이라고 이름 짓고, 300개 고을에 나누어 유치시킨 다음 매년 이자를 늘려 나가 수만 포에 이르게 하라. 이로써 나라 안의 백성들이 모두 자궁이 베풀어 주는 은택을 입게 할 것이며, 다함이 없이 비축하고 유구히 전해 가도록 하라. 또 이 곡식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하여 공사(公私) 간에 산더미처럼 축적한다면 미루어 나가는 뜻이 크게 될 것이다.
어버이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뜻을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고, 뜻을 따름에 있어서는 은혜를 넓히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아, 너희 유사의 신하들은 나의 지극한 뜻을 알아서 똑똑히 듣고 삼가 준행하도록 하라.


계축년 봄에 내가 연신(筵臣)에게 말하기를,
“내후년은 바로 우리 동방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나큰 경사가 있는 해이다. 하례 의식은 내년에 의당 먼저 행하여 보령 60세를 맞이한 일로 칭경(稱慶)하고 진하(陳賀)할 것이며, 상호(上號)는 자전(慈殿)과 경모궁(景慕宮)에 장차 현책(顯冊)을 올릴 것이다. 그런데 연향례에 대해서는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내후년에 자궁을 모시고 원침(園寢)에 전배(展拜)한 후 환궁하는 길에 행궁(行宮)에서 진찬(進饌)하려는 것이다. 이해 이 경사를 맞이하여 이곳에서 이 예를 행한다면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갑인년 겨울에 빈청(賓廳)이 자전과 자궁에게 존호를 올리기를 청하였다. 이에 하교하기를, “힘써 청한 끝에 다행히 애써 따르겠다는 분부를 받들었다. 자전과 자궁께 존호 올리는 의식을 좋은 날을 택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내년 봄의 원행(園幸) 때 자궁을 모시고 가서 전성(展省)의 예를 행할 것이니, 별도로 정리 당상을 차출하여 분담하여 구관(句管)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마침내 심이지(沈頤之), 서유방(徐有防), 이시수(李時秀), 서유대(徐有大), 서용보(徐龍輔), 윤행임(尹行恁)을 정리 당상으로 차임하고 홍수영(洪守榮), 구응(具膺), 이노수(李潞秀), 홍대영(洪大榮), 김용순(金龍淳)을 낭청으로 삼았으며, 나중에 우의정 채제공(蔡濟恭)을 총리대신으로 삼았다. 경상 비용 이외에 선혜청의 저치전(儲置錢) 10만 3천여 냥을 정리소에 내려 주고, 행행 때 어공(御供)에 필요한 여러 가지 수요로부터 두 군주(郡主)와 내외 빈척(賓戚)의 옷감과 여비 및 배행한 각 아문의 당상과 낭청, 각 영문의 장관 이하의 제반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본소에서 조처해서 지급하게 하였다.
○ 이해 윤2월 9일에 자궁을 모시고 출궁하였는데, 수가(隧駕)한 관원이 129명, 장관이 49명, 각 차비가 43명, 장교가 236명, 원역(員役)이 1108명, 군병이 3410명, 내관(內官)이 12명, 나인(內人)이 31명, 액속(掖屬)이 113명이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에서 주정(晝停)하고 시흥(始興) 행궁에서 잠을 잤다. 10일에는 사근평(肆覲坪) 행궁에서 주정하고 화성 행궁에서 밤을 지냈다. 11일에 본부의 성묘(聖廟)를 참배하고, 선조(先朝) 때 향교에 나아가 알성한 다음 경서(經書)와 노비를 하사하신 고사에 따라 새로 간인한 사서삼경을 내각으로 하여금 옥쇄를 찍어 내려 보내게 하고, 노비는 해조로 하여금 마련하여 지급하게 하였다. 그리고 경향의 수복(守僕)과 원역(員役) 등을 등급을 나누어 시상하였다. 다시 낙남헌에 나아가 문무과를 설행하였다. ‘근상천천세수(謹上千千歲壽)’로 부(賦)의 제목을 삼아 본부 및 광주(廣州), 과천(果川), 시흥 네 고을의 유생들을 시험 보인 다음 문과에서 5명을 뽑고 무과에서 56명을 뽑았다. 그리고 봉수당(奉壽堂)에 친림하여 진찬(進饌)에 대한 습의(習儀)를 거행하였다. 12일에 자궁을 모시고 원침을 배알하였는데 사모의 정을 더욱 가눌 길이 없었다. 원속(園屬)에게 의당 뜻을 보이는 거조가 있어야 하겠기에, 영(令) 임희후(任希厚)를 곧바로 목사에 제수하고 구응(具膺)은 승서(陞敍)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경향의 수복, 식목 감관(植木監官), 숙수(熟手), 수호군(守護軍) 등은 등급을 나누어 시상하도록 하였다. 또 총섭(摠攝)한 용주사(龍珠寺)의 상좌승(上座僧)을 체가(帖加)하고 경술년 이후로 거접(居接)한 승들에게 미두(米斗)를 나누어 주도록 명하였다. 도로 행궁으로 나아가서 서장대(西將臺)에 친림하여 성조(城操)와 야조(夜操)를 행하였다.
○ 13일에 봉수당에서 진찬례를 행하였는데, 찬안(饌案)이 70기(器)에 별미(別味)가 12기였다. 첫 번째 잔과 두 번째 잔을 친히 올리고, 세 번째 잔부터 일곱 번째 잔까지는 자궁의 뜻에 따라 명부(命婦) 및 외빈(外賓),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광은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이 받들어 올렸다. 직접 지은 장락장(長樂章)을 선창(先唱)하였다. 첫 번째 잔을 올릴 때는 헌선도(獻仙桃)를 정재(呈才)하고 환환곡(桓桓曲)을 연주하고, 두 번째 잔을 올릴 때는 금척(金尺)과 수명명(受明命)과 하황은(荷皇恩)을 정재하고 청평악(淸平樂)을 연주하고, 세 번째 잔을 올릴 때는 포구락(抛毬樂)과 무고(舞鼓)를 정재하고 오운개서조곡(五雲開瑞朝曲)을 연주하고, 네 번째 잔을 올릴 때는 아박(牙拍)과 향발(響鈸)을 정재하고 천세만세곡(千歲萬歲曲)을 연주하고, 다섯 번째 잔을 올릴 때는 학무(鶴舞)를 정재하고 유황곡(惟皇曲)을 연주하고, 여섯 번째 잔을 올릴 때는 연화대(蓮花臺)를 정재하고 항항곡(恒恒曲)을 연주하고, 일곱 번째 잔을 올릴 때는 수연장(壽延長)을 정재하고 하운봉곡(夏雲峯曲)을 연주하였다. 술잔 올리기를 마치자 다시 처용무(處容舞), 정읍악(井邑樂), 첨수무(尖袖舞), 낙양춘곡(樂陽春曲)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친히 지은 관화장(觀華章)을 후창(後唱)하였다. 백관에게 선찬(宣饌)하고 산화(散花)하였다. 내외 빈척(賓戚)으로부터 교례(校隷), 군민(軍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세(千歲)를 불렀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은 내빈(內賓)이 13명, 외빈(外賓)이 69명이었다. 연회를 마친 후 칠언 율시(七言律詩) 한 수를 써 내리고는 연회에 참석하거나 수가(隨駕)한 신하들로 하여금 화운(和韻)하여 올리게 하였다. 정리소의 신하들에게 하교하기를,
“오늘의 예는 실로 천 년 만에 처음 있는 크나큰 경사이다. 오는 갑자년에는 자궁께서 칠순이 되실 것인데, 그때의 진찬도 오늘과 같이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사용한 반탁(盤卓)과 준작(尊爵)의 도구들을 본부에 보관해 두어 10년이 거듭 돌아오는 것에 대비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고 판서 조엄(趙曮)의 처 홍씨(洪氏)는 80의 나이로 진찬하는 반열에 참석했다 하는데, 더구나 이 사람은 자궁의 고모이며, 고 참판 홍낙인(洪樂仁)의 처 민씨(閔氏)와 동지돈녕부사 홍용한(洪龍漢)의 처 송씨(宋氏)는 모두 70의 나이로 탈 없이 왕래하였다. 옷감과 음식물을 외탕고로 하여금 수송하게 하라. 동지돈녕부사 홍준한(洪駿漢)ㆍ홍용한(洪龍漢)ㆍ홍낙신(洪樂信)ㆍ홍낙임(洪樂任), 도정(都正) 홍낙륜(洪樂倫)에게도 의자(衣資)와 식물을 외탕고로 하여금 수송하게 하라.”
하였다. 진찬할 때 거행한 본부의 비장(裨將), 교리(校吏) 등을 등급을 나누어 시상하도록 명하였다.
○ 14일에 신풍루(新豊樓)에 친림하여 사민(四民)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기민(饑民)에게 죽을 먹였는데, 백성들의 수는 모두 4819명, 쌀은 377석 13두 9승이었다.
○ 낙남헌에 나아가 양로연(養老宴)을 행하였다. 수가한 관원, 본부의 노인 가운데 70세 된 조관과 80세 된 사서인 및 61세 된 사람은 연회에 참석하라고 명하였다. 수가한 노인, 영의정 홍낙성 등 15명과 화성의 노인 전 참의 이석조(李奭祚) 등 384인이 각각 자손을 거느리고 자리로 나아가서 일좌(一座)가 재배(再拜)하는 예를 행하였다. 홍낙성 등이 차례로 술잔을 올리고 산호(山呼)를 외쳤다. 첫 번째 잔을 올릴 때는 ‘녹명(鹿鳴)’과 ‘천보(天保)’를 연주하고, 두 번째 잔을 올릴 때는 ‘관저(關雎)’와 ‘작소(鵲巢)’를 연주하고, 세 번째 잔을 올릴 때는 ‘남유가어(南有嘉魚)’와 ‘남산유대(南山有臺)’를 연주하였다. 뭇 노인들에게 명하여 각각 한껏 취하도록 하였다. 칠언 절구(七言絶句) 한 수를 써 내리고는 양로연에 참석한 신하들로 하여금 화운하여 올리게 하였다. 본부에 집을 지은 노인으로서 호적이 없어 양로연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들을 의장대(儀仗隊) 앞으로 불러서 술과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
○ 15일에 자궁을 모시고 서울로 돌아왔다. 사근평 행궁에서 주정(晝停)하였다. 지방관에게 말을 하사하고, 대령 교리를 시상하고, 경기 감사에게 표피(豹皮)를 하사하고, 역(驛)의 인마차지 찰방(人馬次知察訪)을 수령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조용(調用)할 것을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매번 원침을 배알하고 돌아가는 길에 미륵현(彌勒峴)에 이르게 되면 고삐를 멈추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서성이곤 했었다. 이번 행차에서 미륵현 위쪽에 앉은 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臺)를 보고는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하였다.” 하고, 앞으로는 행행 노정에 ‘지지대’ 세 글자를 첨가해 넣도록 명하였다. 시흥 행궁에서 밤을 지냈다. 지방관에게 3품직을 제수하고 이교(吏校)를 시상하도록 명하였다. 자궁을 모시고서 재차 시흥을 지나게 되었다 하여, 갑인년에 1년간 정퇴했던 본 고을 백성들의 환향(還餉)을 모두 탕감해 주도록 명하였다. 과천의 대령 교리도 시상하였다.
○ 16일에 용양봉저정에서 주정하고 환궁하였다. 주교 당상(舟橋堂上)에게 표피를 하사하고, 도청(都廳)과 곤수(閫帥), 차견(差遣)한 노량 별장(鷺梁別將)을 가자(加資)하고, 감관(監官), 영장(領將), 변장(邊將)을 더러 군문에 조용하였다.
○ 정리소의 여러 신하 이하에 대해 상전(賞典)을 시행하였다. 총리대신 및 정리사 6명의 품계를 올려 주고, 재신(宰臣) 2명에게는 말을 하사하고, 찬탁검거 당상(饌卓檢擧堂上) 4명, 진건 당상(進巾堂上), 진화 당상(進花堂上), 장악원과 사복시의 제조, 내승(內乘) 2명에게는 말을 하사하고, 치사(致詞)를 마주 든 승지 2명에게는 표피(豹皮)를 하사하였다. 정리 낭청 2명은 외직(外職)에 제수하고, 3명 및 사복시 첨정은 승서(陞敍)하고, 사복시 판관은 부사(府使)에 조용하고, 찬의(贊儀)는 가자하고, 책응(策應)한 감관(監官) 2명과 인의(引儀) 2명은 수령에 제수하고, 인의 2명은 승륙(陞六)하였다. 대가를 배종(陪從)한 나인, 중관, 액속 및 장관, 장교, 원역, 군병, 공령(工伶), 숙수(熟手) 등도 모두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 21일에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였다. 내탕고에서 떡과 고기를 준비하여 수가한 장사들을 호궤(犒饋)하였다. 이어 각영으로 하여금 중순일(中旬日)에 별시(別試)를 설행하여 수가한 교졸들을 시상하게 하였다.
○ 정리소에서 쓰고 남은 돈이 4만 냥이었는데, 1만 냥은 화성에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1만 냥은 탐라(耽羅)에 내려 보내어 진휼 밑천을 삼게 하였다. 그 나머지 2만 냥을 삼도(三都)와 팔도(八道)에 나누어 보내어 고루 배분하여 곡식으로 바꾸게 한 다음 봄에 대여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절목(節目)을 만들어 준행하게 하였다. 무오년 봄에 이를 옮겨서 화성의 환곡으로 삼고 영원히 모곡(耗穀)을 면제하게 하였으니, 화성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천년만년 영원히 자궁의 은덕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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