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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 화포 제도를 새롭게 할 것을 의정부에 전지하고 대호군 박강을 군기감 정으로 삼다

 이름 : 

(2007-02-25 20:24:18, 6264회 읽음)

세종 27년 을축(1445, 정통 10)      

3월 30일(계묘)  
화포 제도를 새롭게 할 것을 의정부에 전지하고 대호군 박강을 군기감 정으로 삼다


의정부에 전지하기를,
“태종께서 자주 문밖에 거둥하시어 화포 쏘는 것을 구경하시매, 이숙번(李叔蕃)·최해산(崔海山) 등이 그 일을 맡아 보는데, 마음쓰는 것이 지극하지 않음이 아니나, 지자화포(地字火砲)·현자화포(玄字火砲)는 화약만 많이 들고 화살은 5백 보를 넘지 못하고, 한번에 화살 여러 개 쏘는 기술을 힘껏 연구하여도 끝내 성공하지 못한지라, 태종께서 일찍이 낙천정에 거둥하시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화포는 군국(軍國)의 중한 일이다. 유은지(柳殷之)가 총명하고 슬기로와서 기술의 소질이 있으니, 제조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 하시었다. 은지가 제조가 되어서 태종께 아뢰기를, ‘신이 화포 쏘는 것을 보오니, 현자화포는 힘이 센 사람이라야 쏠 수가 있삽고, 힘이 적은 자는 두세 방(放)을 넘지 못하여 어깨와 팔이 아파서 쓰지를 못합니다.’ 하기에, 나도 아뢰기를, ‘조금 그 제도를 작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은지도 내 말을 옳게 여기므로,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시험삼아 해 보라.’ 하시고, 만든 뒤에 태종께서 친히 납시어 보신즉 화살이 지자화포·현자화포보다 백여 보나 미치지 못한지라, 태종께서 말씀하시기를, ‘힘이 약해서 쏠 수가 없다.’ 하시고, 깨뜨려버리게 하시었다. 뒤에 중국 화포를 얻어서 보니 그 제도가 현자포보다 작고 부리[觜]가 긴데, 군기감으로 하여금 그 제도대로 만들게 하여 지자화포·현자화포에 비하매, 화약은 적게 들고 화살은 멀리 가니, 이른바 황자포(黃字砲)가 이것이다. 임자년에 처음으로 쌍전화포(雙箭火砲)를 만드니 화살이 2백 보까지 가는데, 정부와 육조가 모여서 구경하고 말하기를, ‘좋다.’ 하였고, 파저강 토벌 때에 크게 이익을 보았다. 뒤에 또 사전화포(四箭火砲)를 만들었다가 화살 나가는 힘이 약하여서 즉시 헐어버렸고, 또 가자화포(架子火砲)를 만들었더니 변장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단히 좋다.’ 하였고, 또 세화포(細火砲)도 만들었다. 작년 가을에 다시 화포의 제도를 의논하고, 군기감을 시켜서 여러 화포들을 시험하여 보니, 황자포는 화살이 4,5백 보에 미치고, 지자·현자포는 화약을 많이 써도 그만 못하고, 가자포는 혹은 2,3백 보에 미치나, 2백 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고, 세화포는 모두 2백 보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순몽이 말하기를, ‘지자·현자포는 무겁고 화약이 많이 들어서 도리어 황자포에 따르지 못하니, 마땅히 다 깨뜨려 버리자.’ 하매, 이천(李蕆)이 말하기를, ‘현자화포는 수가 많아서 경내에 퍼져 있는 것이 1만 가량이나 되니, 이제부터는 더 만들지 말면 그만이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은 불가하다.’ 하고, 순몽이 말하기를, ‘세화포는 한 사람이 가히 3,40개를 가질 수 있고, 비록 부인들이라도 쏠 수가 있어서, 그 이익됨이 가장 크다.’ 하매, 이천이 말하기를, ‘편전(片箭)은 비록 약한 활이라도 가히 3백 보를 갈 수 있으되, 세화포는 2백 보도 가지 못하니, 무슨 이익됨이 있는가. 마땅히 깨뜨려 버려야 한다.’ 하기에, 내 말하기를, ‘지자·현자화포는 화약은 많이 들어도 마땅히 황자화포보다 멀리 가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화살의 가볍고 무거움이 적당하지 못한 까닭이니, 마땅히 다시 연구하게 할 것이고, 가자화포와 세화포는 2백 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이것이 유감이니, 역시 마땅히 화살 제도를 고쳐 정하여 시험해 보게 하라.’ 하였는데, 군기감에서 여러 달을 두고 연구하여도 마침내 기술을 얻지 못하였고, 순몽이 말하기를, ‘양편 군사가 마주 싸울 때 사이가 백 보 더되지 아니하면 지금 말한 그런 화포들이 비록 2백 보 이상 가지 않더라도 그 이익됨이 클 것입니다.’ 하기에, 내 말하기를, ‘말탄 군사가 활을 잡고 화살을 띠고서 달리면서 내리 쏘기를 비퍼붓 듯 하여, 활과 살의 이용 가치가 극치에 달하는 것인데, 화전(火箭)은 한 사람이 가지는 것이 열 개에 지나지 못하며, 한 번 쏘면 맞붙어 싸울 때는 다시 쓸 수가 없으니, 만일 다시 쓰려면 먼저 화약을 재이고 다음에 방아쇠를 걸고, 그 다음에 받침목을 넣고 마지막으로 화살을 꽂아야 쏠 수가 있게 되어서 그 쓰기가 이렇게 어렵지마는, 그러나, 화살의 힘이 맹렬하여서 만일 여러 군사들 속으로 쏘면 화살 하나가 3,4인을 죽일 수 있으므로 적군이 무서워하니, 공격하는 싸움에 유리하기는 천하에 화포와 같은 것이 없다.’ 이제 이르기를, ‘마주 싸울 때 백여 보 더 되지 아니하면 세화포가 비록 화살이 약하더라도 쓸 수 있다.’고 하나, 그렇다면 편전으로도 족할 것인데 어찌 꼭 화포를 쓸 필요가 있는가. 내가 즉시 군기감에 명하여 대장간을 행궁(行宮) 옆에다 설치하고 화포를 다시 만들어서 멀리 쏘는 기술을 연구하게 하였더니, 전의 천자화포(天字火砲)는 4,5백 보를 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만든 것은 화약이 극히 적게 들고도 화살은 1천 3백여 보를 가고, 한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1천 보까지 가며, 전의 지자화포는 5백 보를 넘지 못했는데, 이번 것은 화약은 같이 들어도 화살이 8,9백 보를 가고, 한 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6,7백 보를 가며, 전의 황자화포는 5백 보를 넘지 못했는데, 이번 것은 화약은 같이 들어도 화살이 8백 보를 가고, 한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5백 보에 이르며, 전의 가자화포는 2,3백 보도 못갔는데, 이번 것은 화약은 같이 들어도 화살이 6백 보를 가고, 한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4백 보를 가며, 전의 세화포는 2백 보를 넘지 못했는데, 이번 것은 화약은 같이 들어도 화살이 5백 보에 미치게 되었으며, 전의 여러 화포들은 화살이 빗나가서 수십 보 안에서 떨어지는 것이 태반이었는데, 이번 것들은 화살 하나도 빗나가는 것이 없다. 이번 것들이 비록 이러하지마는, 더욱 정밀함을 구하느라고 지금은 아직 제도를 정하지 못하였다. 내 이제 왕위에 있은지 28년 동안에 화포에 관심을 두고 자주자주 강론하고 연구하여 제도를 많이 고쳤더니, 여러 신하들이 볼 때마다 잘된 양으로 칭찬한다. 오늘날의 만듦새로 보면 전의 화포들은 모두 못쓸 것이 되니 곧 깨뜨려 버림이 마땅하다. 전에는 이러한 새 제도를 모르고서 그때 만든 것을 완전히 잘된 것으로 여겼었으나, 이제는 그 우스운 일임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뒷날에 오늘 것을 볼 때 오늘날에 전날 것을 보는 것과 같게 될까 싶기도 하다. 최해산(崔海山)은 그 아비가 국가에 공이 있고, 또 그 사람 됨이 부지런하여 태만하지 않으므로 태종께서 이 일을 맡기시었고, 그 아들 최공손(崔功孫)도 조부(祖父)로 인한 음직(蔭職)으로 역시 이 일을 맡고 있으나, 내 들은즉 그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 별다름이 없다 하고, 요사이 제조(提調)들이 모두 늙어 근력이 쇠잔하여서 필시 부지런히 힘써 일을 처리할 수 없을 것이므로, 정3품이나 종3품 중에서 나이 40세 미만인 자로 한 사람을 구해서 당상관을 삼아 군기감 제조(軍器監提調)로 임명하여 외직으로 내보내지 말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자리에 종신(終身)할 것을 알게 하면, 군기감 일을 계획하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같지 않고 크게 유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러한 인재를 얻으면 좋을 것이고, 만약 적당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공연히 벼슬자리만 가볍게 사용함이 될 뿐일 것이다. 공손은 그 조부의 업(業)을 이어서 마음 쓰는 것이 필시 남보다 나을 것이니, 역시 약간 그 벼슬을 올려서 자기로서 여기에 종신할 것을 알게 하면, 반드시 유익함이 될 것이다. 이제 제조가 될 만한 사람을 구하되 얻지 못하였으니, 경들이 문관이나 무관 중에서 네댓 사람을 골라서 아뢰라.”
하매, 정부(政府)에서 대호군(大護軍) 박강(朴薑)을 천거하니, 드디어 강으로 군기감 정(軍器監正)을 시키고, 특별히 통훈 대부(通訓大夫)로 한 계급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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