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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학] 역사학의 중심은 여전히 정치사인가?

 이름 : 

(2007-04-19 17:07:14, 5813회 읽음)

역사학의 중심은 여전히 정치사인가? - 정리 : 최형국

쟈크 르 고프


본 논문은 역사학의 근간이 아직도 정치사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내용으로 들어가서 아날학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정치사는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 데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치사만이 아닌 종교, 법, 지리, 문학, 예술 등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만이 역사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반 세기동안 경제, 사회, 문화만이 역사학자의 관심을 독점해 왔다. 특히, 역사학자들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정치사는 실제 정치와 이론적인 정치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몇몇 사회학파의 영향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 학문 자체의 인식론적 근거가 되는 대상마저 불확실해진 듯 하다. 이는 정치적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한편으로는 구조적 분석에 휘말릴 위험에 있다는 것과 또다른 한 편으로는 역사학에 포함될 위험이 있다는 것의 두 가지 약점을 의미한다.
기존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인식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300년대부터 1600년대까지의 예를 들면, 겉으로 보기에는 철학사가 정치사를 몰아내는 것처럼 보였던 볼테르의 혁명적인 의도는 곧 철학사와 정치사의 결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789년에 혁명으로 인하여 부르조아 계급이 정치권력을 탈취하게 되었지만 아직 정치사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정치사는 새로 탄생한 사회과학 즉,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을 등에 업은 새로운 역사학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날학파는 정치사, 이야기 식의 역사, 그리고 연대기적 또는 삽화적 역사로 구성된 삼중주곡을 밀어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것은 단순한 사이비 역사이고 실체보다는 환영을 추구하는 천박한 사건사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경제사, 사회사 그리고 정신사와 같은 심층적 역사가 정치사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역사학의 중심권이었던 정치사가 이제 역사학의 부수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정치사는 정치사의 근거 자체를 위태롭게 하였던 바로 그 사회과학의 방법, 정신, 이론적 접근방법을 빌려옴으로써, 점차로 자신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을 중세사의 예를 들 경우, 권력(power)의 개념과 권력에 관계된 사실들을 정립시킨 것이다. 피상적인 역사는 이제 지양되었고, 정치사는 권력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더욱 깊은 탐구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또한 깊이있는 정치사는 권력을 나타내는 외적인 상징과 징표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정치적 상징성을 이해함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이 상징성은 정치적인 것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놓았던 종교적인 표상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예를 들면, 중세정치에 전체적인 파노라마는 왕관이라는 상징물을 통해서 반영되어 왔다. 또한 가시면류관류과 연관된 중세왕관의 다양한 상징성을 밝히는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인식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접근방식이 새롭고 일반적으로 적용가능한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시대에만 적합한 예외적인 방법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그래서 권력의 표상에 대한 고찰은 일반적인 권력의 상징성을 고찰함으로써 보완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초기의 연대기에만 의존했던 역사탐구영역이 문서, 편지, 행위 등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면서 더욱 정밀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체계적 발전에의 여지가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배자가 사용하는 상징은 다른 어떤 증거물보다도 그의 기대와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보다 정확한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사는 원사료가 없을 경우에 반드시 글로 쓰여지지 않은 고증에 의존해야 한다는 낡은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대에는 정치적 의식이 있는데 역사학자의 임무란 그 의식의 중요성을 밝혀내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이다.
종교사와 인류학으로부터 빌려온 비교사의 방법을 통해서 기존 정치사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가능해졌고 정치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사와 최근 정치사의 발전에 영향을 끼쳐왔던 여러 과학 분야들은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중세 정치사는 인류학으로부터 빌려온 방법을 인용함으로써 변형되고 풍부해졌으며, 이를 통해 중세 봉건제 구조에 대한 이해가 변화하였다.
정치적 국면은 문화사적인 측면에도 또다시 부각된다. 교육은 권력이며 권력의 도구이다. 예를 들면, 중세사회에서 대학생과 대학교수가 갖는 권력의 움직임은 새로운 틀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의 영역도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분석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례를 들면, 예술작품이 지닌 권위가 일반적인 권력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처리되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거의 연구되어진 바가 없었던 주제지만, 종교사 분야에서도 이교도 운동과 정당 사이에 깔려있는 관계의 경우 이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정치사가 분명히 위기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인문과학에서 정치적 측면과 접근방법이 점차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낡은 정치사는 이제 소생불가능한 상태다. 비록 사이비역사가 인식대상 수준을 사건과 영웅 중심에서 제도와 환경의 차원으로 전환한다 해도 구태의연한 정부 또는 국가의 개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여전히 그 정체성을 탈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어떠한 인문과학을 통해 정치사를 개편하고 재부각시킨다고 하더라도 정치사는 그 자율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보편사의 모델에서는 현 정치학의 인식론적 대상인 권력현상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정치의 차원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것도 여전히 사실이다. 해부학의 시대에서 원자의 시대로 이행하기 위하여 정치사는 더 이상 역사의 중추가 아니다. 그 핵이다.












전통적 역사학과 새로운 역사학
:변화하는 역사학의 어제와 오늘

김현식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역사학은 헤로도투스 이래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의 주된 특징은 탐구와 조사인 바, 역사가는 자료를 수집하고 증거에 입각하여 과거사에 대한 참된 이야기를 서술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의 옥좌는 늘 자연과학의 차지였고 역사는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있는 사이비지식으로 낙인찍힌 채 학문의 변방을 떠돌아 다녔다. 쉽게 말해, 역사가는 자료를 수집하고 증거에 입각하여 과거사에 대한 참된 이야기를 서술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볼 경우, <자료>,<증거>,<서술> 등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은 이를 반증한다.

문화개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현재 역사학의 관심과 탐구대상이 변화,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소재로써 농민, 노동자, 여성, 어린이 등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이 연구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의 개념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간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인간을 만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점이다.
과거 문화사는 역사의 변두리를 맴돌 뿐 그 왕좌는 정치사, 경제사, 그리고 사회사의 차지였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의 간판격인 신문화사의 경우, 단순한 과거의 문화의 개념이 아닌 이제 인간의 사상과 행위를 산출하는 것들의 총합체를 뜻하는 개념으로까지 고양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 이야기)

텍스트 해독의 실마리로써의 문화
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는 역사에서조차 잊혀진 사람들의 실재적인 생활양식과 구체적인 사고방식을 탐구하려는 경향에서 출발한다. 역사가들이 취한 방도는 신문기록과 같은 중계물을 이용하거나 민담과 축제 등의 인류학적, 민속학적 자료를 통해 아니면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비언어적 자료에 의거해 이들의 세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힘든 것은 이같은 자료들의 ‘두께’가 주는 중압감이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의 전통적인 자료는 우리가 분명한 ‘저자’나 ‘저자의 의도’를 상정할 수 있는 언어적 인공물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료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민담이나 설화의 경우 저자는 익명이며 그 의도는 불투명하다. 또한 참으로 그림과 같은 비언어적 인공물의 의미를 읽어내기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시대적, 사회적 함의를 제대로 간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중계물의 경우에도 역사가는 기록자의 시각을 통해 역사적 행위자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에 의미해독의 어려움은 한층 증폭된다.
결국 잊혀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구성하기 위해 역사가는 자료에서 텍스트로 탐구의 대상을 확대해갔고 이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 문화개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문화적 개념을 통한 전유의 이해
그렇다면 문화에 의거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해독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단턴의 <고양이대학살>의 경우 생 세브렝 가의 고양이대학살은 노동자들의 부르주아적 법질서와 사회질서 전체에 대한 라블레 식의 풍자와 조롱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턴의 연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과연 그들이 18세기 초 파리 노동자들의 정신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점에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가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주인공인 메노키오를 통해서 진즈부르크는 소위 고급문화를 어떻게 전유하여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하는가와 이 과정에서 어떻게 민중문화가 여과지로 작용하는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끝말: 역사 그 넓어지는 지평선
역사란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다. 이제 역사가는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금지하고 배척하며 추방하는 대신에 이를 포용, 해독, 변형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창조해내야만 한다. 앞으로 역사가의 몸은 더욱 분주해지고 역사가의 정신은 더욱 개방되어야 한다. 분명 모든 것은 반복될 뿐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 역사학의 겉은 옛모습 그대로이다. 역사가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고민한다. 그러나 변화한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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