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우주선을 날리는 시대에 전통무예의 의미는 무엇?]
“전통무예는 훌륭한 문화 콘텐츠 자원…사회적 관심 부족 안타까워”
반만년이란 유구한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 중 한 가지가 전통무예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이용하여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 맞서 싸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듯 소중한 우리 전통무예를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은 태극권과 같은 전통무술을 생활체육화했고 관광 상품(소림무술)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일본 역시 K-1, Dream 등 현대격투기 콘텐츠를 개발함과 동시에 가라데, 아이키도(합기도) 등 각종 전통무술의 보존 및 연구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무예24기연구소의 최형국 소장은 이렇듯 부족한 우리 전통무예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힘쓰는 인물이다. 수원 화성(華城) 인근에 위치한 무예24기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무예24기연구소 소장 최형국입니다. 중앙대 역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화성행궁 무예시범단 단장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마상무예를 주제로 최종 박사 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사진 1)
무예24기연구소 최형국 소장
- 전통무예 복원 및 연구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전법, 병법, 신체단련법 등의 무예사와 전쟁사에 관한 연구를 하며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고서에 실린 무예를 단순히 육체적으로 재현해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접근해보는 거죠. 그 외에도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화성행궁에서 전통무예 정기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통무예를 소재로 연극도 제작하고 있고요.”
-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몸으로 풀어가는 것, 그러니까 육체적인 수련만으론 일종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할까요? 무예에는 그 원류가 어디일까 하는 끊임없는 고민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본질에 가까울 수 있거든요. 즉 문무겸전(文武兼全)의 필요성을 느낀 거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통무예가 단순히 ‘오래된 몸 닦는 방법’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전 그 가치를 알리고 싶었어요.”
- 그 가치란 어떤 걸까요?
“‘전통무예가 지금 왜 필요하냐?’라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해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미사일 쏘고, 우주선 날리는 시대잖아요. 그런 현대 사회에 전통무예가 왜 필요하겠어요. 말 타고 칼 들고 싸울 일도 없는데. 하지만 전통무예 수련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라져 가는 인간성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우리 몸을 닦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또 그 자체로서 훌륭한 역사적 유산임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문화 콘텐츠 소재이기도 하고요.”
- 어떤 점에서 문화 콘텐츠 소재가 될 수 있을까요?
“중국 하면 쿵푸와 소림사가 떠오르죠? 또 일본 하면 사무라이가 떠오르잖아요. 이런 식으로 누구나 다 알도록 국가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거죠. 각국 마다 갖는 무예, 군사적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을 브랜딩하면 국가 이미지가 더 올라가요. 또 우리나라에 있는 그 많은 산성들을 생각해봐요. 그 자체가 훌륭한 유형문화유산이죠. 그런 산성과 결합해서 가장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무형문화유산이 뭐가 있을까요? 바로 전통무예에요. 여기 수원 화성을 조선시대 기병들이 순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광화문 앞에서 무관들이 대련하는 모습도 떠올려보세요. 이렇게 ‘다이내믹 코리아’에 딱 맞는 소재가 또 어디 있을까요?”
(사진 2)
2008년 아산 이순신 축제에서 조선시대 무과전시 재현 중 기창 시범을 선보이는 최형국 소장
-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 전통무예의 복원 및 연구 상황은 어떤가요?
“굉장히 열악해요. 관심이 거의 없는 편이죠. 국가 차원에서 전통무예진흥법을 통해 노력중이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지원, 육성책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도 없고요. 전통무예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중국은 쿵푸(우슈)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고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어요. 소림사는 문화․ 관광 상품으로 키워냈고요. 이 시장이 엄청나게 커요. 소림사 주변에 무술학교만 삼사백 개에 이르니까요. 그만큼 상품성도 있다는 거죠. 일본 같은 경우, 검도와 유도를 의무교육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요. 메이지 유신 이후로 ‘사무라이의 나라’라는 이미지로 국가 브랜딩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린 어떤가요? ‘외국 검색 사이트에 한국에는 전통무예가 없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올 정도에요. 독자적인 전통무예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굉장히 안타까워요.”
- 많이 힘드시겠어요.
“힘들죠. 아직까진 정말 쉽지 않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전통무예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문무겸전이 필수적인데, 문(文)과 무(武)를 동시에 겸비한 연구자도 많이 부족해요.”
- 문무겸전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은데요.
“제가 전통무예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데 기본이 되는 책은 조선 정조시대에 집필된《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요. 그런데 이 책이 참고한 문헌만 대략 160여권이 넘어요. 당시의 한, 중, 일 삼국의 무예와 군사적 기술을 총망라했기 때문이죠. 그 모든 걸 올바르게 이해하고 본질에 접근하려면 역사학, 즉 문(文)을 익히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반대로 단순히 수련만 해도 불가능하죠. 총기 매뉴얼만 읽고는 총을 잘 쏠 수 없죠? 그렇다고 총을 잘 쏜다고 그 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에요. 그래서 전통무예의 복원과 연구에는 문, 무를 모두 갖춘 연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해주세요.
“우선 지금과 같이 학문적 접근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지금 하는 무예시범과 같이 지속적으로 전통무예의 가치성을 알리는 방안도 더 찾으려고 하고요. 먼저 말씀 드린 각 지역의 산성과 전통무예를 결합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죠. 또 지금 수원의 2개 고등학교(수일고, 삼일공고)에서 출강 형식으로 전통무예를 가르치고 있는데이런 부분도 점차 확대시키고자 해요.”
<취재를 마친 이재우의 생각>
난방이 되지 않는 그의 연구소는 조금 추웠다. 하지만 전통무예를 말하는 그의 총총한 눈빛과 열정이 담긴 목소리는 곧 주변을 따듯하게 했다. ‘사회적 관심 부족’이란 거대한 적에게 외로이 맞서는 최형국 소장. 누구보다 뜨겁게 문무겸전의 삶을 사는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작은 바로 전통무예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어린 시선이 아닐까?
이재우/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인턴 기자(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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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ram.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102022208032&code=8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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