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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평] 무예인의 눈으로 본 무예영화 청풍명월

 이름 : 최형국

(2004-08-01 23:18:40, 9711회 읽음)

무예인의 눈으로 본 무예영화 <청풍명월>
탄탄한 스토리, 철저한 역사 고증 아쉬워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청풍명월(Sword In the Moon)'은 백성들이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 아래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정예 부대를 말한다.

맑은 바람 한줄기와 밝은 달빛 한 자락을 그리워한 사람들. 그러나 피로 얼룩진 역사는 백성들의 작은 바람조차 꿈꾸지 못하게 한다.

▲ <청풍명월> 포스터.검은 피박형 두석린갑을 착용하고 검을 짚은 것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0여년 동안 검술을 연마하고, 특히 내가 하는 무예가 조선 정조 당시 최정예 군대인 장용영의 무예24기였기에 더욱 관심 있게 본 영화였다.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된 인조반정은 1623년(인조 1) 서인(西人)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大北派)를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 종(倧: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별군위의 성격을 띤 <청풍명월> 이라는 정예 병력들 사이에 주인공이 서 있다.

<청풍명월>의 홈페이지에서는 '청풍명월'이 인조반정 이후에 만들어진 엘리트 군관 양성소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스토리상 분명 '청풍명월'은 인조반정 이전의 광해군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그 곳에서 수련을 마친 두 주인공들이 부대 배치를 받은 뒤에 인조반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청풍명월>은 기존 '따라하기 식'의 한국 무협영화들과는 많이 다를 뿐만 아니라, <와호장룡>에서의 절제된 화려함과 장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인 듯 보인다.

예를 들면 배경(장소)에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소쇄원의 운치 있는 정원 장면, 자객과 호위군으로서의 첫 대면 공간인 담양 대나무 숲과 최민수의 한 손 흘려 베기가 돋보인 수원 화성(華城) 방화수류정 옆 화홍문 수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 화성의 화홍문은 일곱개의 홍예가 달밤에 더욱 그윽하다. 그 아래서 두 무인이 검술을 나눈다.
또한 화성(華城) 창룡문 옹성에서의 결투 또한 나름대로 좋은 그림을 만드는데 한 몫했다. 그리고 조금 어설프지만 한강 주교 장면 또한 나름대로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어 이렇게 몇 자 적어 본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무협의 가장 아쉬운 점은 스토리의 난제이다. 인조반정이라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 어찌 이리도 단순한 흐름으로 스토리를 진행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먼저 우정과 사랑의 중첩은 우정에 대한 지극한 배려가 너무나 깊어 최민수와 김보경과의 사랑은 관객들에게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역사적 중첩 부분은 인조와 대신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가 대립 구도적 한계를 나타내었다.

만약 인조반정에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인조와 광해군의 갈등이 조금이라도 다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역사물이 아닌 픽션이라는 영화적 허구라는 것은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횡적인 이야기구조가 아니라 씨줄과 날줄처럼 영화의 작은 이야기들이 잘 조화되어야 하는데 <청풍명월>은 그러한 스토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으로 과연 이 무협영화가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갑옷과 최민수의 머리에서 조금의 의아스럽다. 나름대로 고증을 철저히 하였다고는 하나 세상에(!) 갑옷의 대부분이 검정색이다.

물론 가끔씩 갈색의 두정갑과 다른 갑옷이 등장하지만 참으로 걱정스러운 복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검정색 갑옷이 강렬한 인상으로 관객들에게 깊게 파고 들 수는 있다.

▲ 두정갑은 콩머리같은 쇠못을 박아 방호력을 증강시켰다. 갑옷의 안쪽에는 일반적으로 두꺼운 동물가죽을 덧대어 사용하였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그러나 당시의 조선시대의 갑옷은 10여 종(도금동엽갑·피갑·사사을갑·철갑·두석린갑·두정갑·경번갑·수은갑·유언갑·지갑·면갑 등) 이 있으나 가장 많이 입었던 갑옷은 두정갑(豆丁甲)과 두석린갑(豆錫麟甲)으로 붉은 빛과 갈색 빛이 주를 이룬다.

두정갑의 두정(豆丁)이란 쉽게 말해 놋쇠로 된 못 머리를 말하는데 겉에서 보면 갑옷에 둥글고 굵은 못이 박혀 있는 모양이기 때문에 두정갑이란 명칭이 붙여졌다. 원래 두정갑은 내부에 금속이나 가죽제의 편찰이 달려 있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가죽과 쇠못만으로는 화살과 칼날을 피할 수 없기에 겉쪽은 가죽을 그리고 안쪽은 철편 등을 붙여 방호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갑옷은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의 기마부대가 유럽을 정벌할 때 입었던 갑옷으로 당시 서양인들은 20kg이 넘는 철제 갑옷으로 무장하였는데 화살이 뚫지 못하는 몽고인들과 싸우며 치를 떨었던 사실이 있다.

▲ 두석린갑은 물고기 비늘 모양의 두석을 오려 붙여 갑옷의 방호력을 증강시켰다. 청풍명월에서는 피박이라하여 어깨와 심장을 보호하는 형태의 어깨 가리개를 덧댄 피박형 두석린갑이 보인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즉, 일반적인 갑옷은 바깥에 방호재(防護材)가 붙어있지만, 두정갑은 갑옷의 안쪽에 방호재가 붙어있다. 두석린갑 형태의 갑옷을 안팎으로 뒤집어 입으면 두정갑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현재 유물로 남아 있는 조선시대 갑옷은 거의 대부분 두정갑의 형태이다.

그리고 두석린갑은 두석으로 된 미늘 갑옷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갑옷 형태이다. 어린갑(魚鱗甲), 용린갑(龍鱗甲)으로 부르는 갑옷들 모두 두석린갑과 같은 갑옷이거나 거의 유사한 갑옷들이다.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당파 - 세개의 날을 이용하여 상대의 무기를 찍어 눌러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또한 늘 그러하듯이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군졸들의 무기는 당파(일종의 삼지창) 일색이었다. 정말 당혹스럽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TV사극에서도 병졸들은 늘 당파만 들고 정신 없이 뛰어 다닌다.

1600년대 초라면 이미 왜란을 겪은 후여서 죽장창, 기창, 낭선, 편곤, 곤방 등 다양한 병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당파와 도검류가 등장하는 무기의 주류를 이룬다.

특히 임진왜란 후에는 조총이 급속히 각 군영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 어디에도 조총을 쏘는 군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조선시대라고 하면 총 한 자루도 없고 대포 한방 제대로 못 쏘았다고 생각할까? 심지어는 당파나 창에도 화약을 장착하여 총을 쏘았는데도 말이다.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편곤 - 일종의 쇠도리깨로 앞쪽의 자편에 두정을 박아 파괴력을 높이기도 하였다. 특히 편곤은 조선시대 기병의 주된 무기였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또한 조선 중기 기병(騎兵)의 필수 휴대 무기는 편곤(일종의 쇠도리깨)이다. 왜냐하면 칼로 상대를 베어서 공격하는 것보다 말을 타고 달려가며 쇠도리깨를 이용하여 상대를 연속으로 치는 것이 기병의 주요 공격 기법이었다.

허나 <청풍명월> 기병들은 여전히 칼만 차고 돌아 다닌다. 정말 다시 한 번 미디어에서 사극이나 무협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웬만하면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무지의 사슬을 끊어주시는 것이 어떠신지요"라고.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마상편곤 - 이처럼 말위에서 편곤을 좌우로 휘둘러 적의 머리를 치고 빠르게 돌격하는 것이 기병의 장기였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주교에서 마무리를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주교를 건설할 때는 강의 양편에서 대규모 정예병사들이 호위를 한다.

특히 왕의 능행 시는 전 군영에 특별 호위부대를 차출하여 미리 적이 매복할 만한 자리를 점거한다(현대 대통령 경호와 비슷하다. 대통령이 이동할 경우 저격이나 테러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은 모두 사전에 통제되고 경비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찌 김보경은 서슬퍼런 그 곳으로 말을 타고 돌진할 수 있었을까? 정말 어이없는 부분은 왕의 대궐 밖 행차 시 이용하였던 대련(大輦-임금이 타는 가마)에 임금의 호위군이 함께 타고 가는 장면이다. 이것은 정말 상상력의 극대화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국왕의 가마에 어떻게 호위군이 함께 타고 주교를 건널 수 있는 것인가! 왕이 타고 가는 가마에 누군가가 오르는 상황은 오직 임금이 죽었을 때, 즉 국장 행렬에서 단 한명의 인도자가 국왕의 대련에 함께 탈 수 있다.

그리고 최측근 호위군의 복색 또한 어이없다. 검은 복색에 검은 갓을 쓰고 임금을 호위한다니 호위군들이 무슨 저승사자인가! 그리고 주교를 건너갈 때 임금의 복색은 면류관과 구장복을 걸쳤는데 이 또한 역사를 모르는 실수일 것이다.

▲ 구장복과 면류관은 최고의 예를 갖추는 자리에서만 착용하는 왕의 복색이다. 청풍명월과 같은 역사적 상황이라면 구장복 대신 전투복인 구군복과 갑옷을 입는 것이 옳을 것이다.
ⓒ2004 푸른깨비최형국
보통 면류관(얼굴 앞으로 발과 같은 구슬장식이 내려와 있는 모자)과 구장복은 중국의 칙사를 영접하거나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릴 때, 또는 즉위식과 혼인식 등에 입었던 최고의 예복으로 시나리오상 그 복색은 옳지 않다. 제대로 입는다면 아마도 주교를 건너 능참배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전투복 차림(갑옷)의 복색이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예적 측면을 바라본다면, 먼저 여전히 최민수는 거합의 헛된 망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청풍명월을 알리기 위해 최민수는 여러 방송매체를 통해서 이러한 표현을 하였다.

"한국적 무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 나라 고유 무사의 검술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그가 수련한 대한검도이며 진검법 또한 거합적 내용이 다분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일본의 검술이 한국적 무협을 만들어 내는 주요 소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전통방식을 사용, 어피 씌운 손잡이를 끈으로 감아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역날로 도를 패용하고 납도의 형식에서 거합의 납도 방식을 사용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일본 검술이 장기간 동안 단절 없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검쓰는 법 또한 배울 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의 맹목적 수용은 오히려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는 또 다른 문화 식민지적 발상이 아닐까!

다음으로 조재현의 검술을 살펴보자. 왕의 호위 무관이 양날의 검을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양날의 검(劍)은 외날의 도(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의전행사와 개인 호신의 용도로서만 사용되었다.

▲ 일반적으로 외날을 도(刀), 양날을 검(劍)이라 칭하는데 양날인 검보다도 외날인 도의 형태가 전시에는 더욱 효과적이었다.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검이라는 명칭과 도라는 명칭이 혼용되어 사용된다.
ⓒ2004 푸른깨비 최형국
의장적이고 주술적 성격이 강한 검인 사인검(四寅劒), 삼인검(三寅劒)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전쟁이 많아지고 철을 본격적으로 가공하면서 칼의 단면에 양쪽으로 충격이 가해지는 찌르기 위주의 검 형태보다는 내구력이 더 우수한 치고 베는 위주의 외날 도가 조선조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왕의 호위를 맡은 호위무관들은 양날의 검보다는 외날의 도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차라리 자객으로 등장하는 최민수가 양날 검을 사용하는 것이 전체적 구조상 더 어울리는 소품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김보경의 쌍검은 제대로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거의 동시에 한 손으로는 공격하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방어를 하여 상대의 눈을 현혹하고, 상대의 무기를 제압하여 움직이는 것이 주된 쌍검의 검리이다. 허나 어찌나 카메라를 흔들어 대던지 단 일합의 장면까지도 그러한 쌍검의 기본 흐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와호장룡>에서의 편안하고도 기품 있는 검술대결 장면이나 검술 수련장면이 없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기본에 충실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군사적, 무예적 내용을 세심하게 참고하여 차별화 된 시각을 견지한다면 분명 한국 무협영화는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푸른깨비 최형국 기자는 무예를 연마하며 몸철학과 글사진을 만들어 갑니다.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2004-07-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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