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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무예사 고증 '옥에 티'

 이름 : 최형국

(2005-08-09 23:15:25, 10789회 읽음)

이순신은 칼집을 어디다 팽개쳤을까?
[분석]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무예사 고증 '옥에 티'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 장수 충무공 이순신을 오늘날 우리에게 각인 시켜준 KBS <불멸의 이순신>은 또 하나의 이 시대 화두입니다. 드라마에서 좀 더 철저하게 역사고증 작업을 한다면 지하에서 이순신 장군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2005 KBS
바야흐로 대한민국에 성웅 이순신 장군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뒤로 호박씨 까는 것이 아니라 면전에 대고 침까지 튀기며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개념 없는 일본인이 있기에 아마도 더욱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은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과(戰果)를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은 병력과 무기 및 선박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임진년 5월 4일을 시작으로 총 23회에 걸쳐 출격하여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전 장수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장면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이는 손에 검을 들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칼집은 도대체 어디에 두는 것일까요? 그리고 전투가 끝나면 그 칼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허리에 매는 방식의 환도가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는데 어찌 거의 직도 형태의 칼을 들고 다니는지 알 수 없습니다.
ⓒ2005 KBS
그 찬란한 시작이었던 옥포해전의 전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전함 27척이 출전하여 42척의 왜군전함을 맞아 전투를 벌였는데, 조선군 전함은 단 한 척도 파괴되지 않았으며 왜군전함은 42척이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이때 조선군 전사자는 없으며 단지 부상자만이 2명 발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왜군의 인명 손실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약 6920명이 전사하였고, 상당수 왜군 병사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영웅이었고 왜군에게는 그 이름만 들어도 오줌을 쌀 정도의 공포감을 줬던 이순신 장군을 오늘날 되살려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힘찬 불길을 당겨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옥에 티를 찾아 보려합니다. 물론 지금의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역사고증 부분이라고는 하나 조금은 성웅 이순신에 대한 누가 되지 않을까 내심 고심하며 몇 가지를 짚어 봅니다.

조선 장수들은 칼을 손에 들고 다녔을까?

첫 번째로 등장하는 조선군 군관 이상의 장교들이 칼을 검집에 넣은 채 늘 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조차도 검을 손에 들고 다니며 전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부분도 나오더군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말을 타고 다니는 장군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검을 들고 다닙니다.

▲ 심지어는 이렇게 말을 탄 사람도 칼집째 손에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호위 무인으로 나오는 날발의 모습은 너무나 픽션이기에 이 부분은 아예 고증을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부분입니다. 검은 옷에 계급도 없는 호위무인이라, 이것을 깜찍한 상상력이라고 봐 줘야 할까요?
ⓒ2005 KBS
만약 검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도대체 그 검집은 어디에 둬야 할까요? 과거 몇몇 사극이나 영화에서는 검을 뽑아 한 손으로는 검집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열심히 검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이것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조선의 경우 환도(還刀)라 하여 칼집에 고리가 달려 이것을 허리춤에 묶어 활동성을 높이는 칼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칼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칼 손잡이를 허리 뒤쪽에 돌려놓았고, 사용 시에는 검 손잡이를 앞으로 오도록 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었고, 전투가 끝나면 검집을 애써 찾는 것이 아니라 허리춤에 바로 꽂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일본도의 패용 방식은 허리띠에 검을 뒤집어 차는 방식이지만(일본 전국시대 전에는 칼을 바로 차는 다찌 방식이 있었음), 우리나라의 전통방식은 검을 바르게 하여 검집에 붙은 고리에 띠를 연결하여 허리에 묶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 말을 탄 장군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검집을 일본처럼 허리띠에 끼워 패용하더군요. 만약 이런 방식으로 칼을 꽂으면 말 타고 달릴 때 바로 칼집이 빠져나갑니다. 역사고증은 괜히 필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단지 연출로만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구멍이 보입니다.
ⓒ2005 KBS

일본도에는 삼지창보다 월도가 효과적

▲ 조선 병졸들이 단체로 당파(삼지창)를 들고 도열해 있는 장면입니다. 도대체 왜 조선시대 사극에서 병졸은 무조건 당파만 들고 뛰어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수병들 또한 당파만 들고 열심히 해상전투도 소화해 내더군요. 더 이상 조선 병졸의 주무기를 당파로 한정시켜서는 안됩니다.
ⓒ2005 KBS
두 번째로 늘 지적되는 부분인데 이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군졸들은 당파(일종의 삼지창)라는 무기 위주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거의 모든 방송 및 영화에서도 병졸들은 늘 당파만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닙니다. 심지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수군까지도 당파를 들고 갑판에서 백병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당파라는 무기는 물론 조선시대 전에도 사용되었지만,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명의 원병이 도착하고 나서 조선에 보급된 대표적인 무기입니다. 그리고 명의 원병의 경우 초기에는 조승훈 장군이 이끄는 북방의 기병이 배치되어 왜군에게 철저하게 괴멸되고 이후 원앙진(鴛鴦陣)이라는 보병의 결집진을 구사한 남병이 당파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왜군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 실로 오랜만에 당파를 제외한 다른 무기들이 선보입니다. 좌우에 도열해 쥐고 있는 무기는 협도(挾刀)로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하여 미첨도(美尖刀)라고도 불립니다. 적의 진을 부수는데 효과적이었으며, 월도와 함께 일본도를 제압하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당파 대신 협도만 들고 있어도 분위기가 한결 나아져 보입니다.
ⓒ2005 KBS
이렇게 명군(明軍)에게 보급 받은 새로운 무기를 익히기 위해 '무예제보(武藝諸譜)'라는 책이 임진왜란 중에 훈련도감의 낭청이었던 한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예서들이 계속 간행되어 정조시대(1790년 4월)에 이르러서는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로 완성됩니다.

더욱이 당파는 칼을 제압하는 무기가 아니라 주 용도가 상대의 창이나 긴 무기를 세 개의 가지 사이에 끼워서 비틀어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시 왜군에게 조총보다 더 우수한 것은 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총알에 맞아 죽는 것보다 왜군의 칼에 맞아 전사한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으로 일본도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당파가 아닌 손잡이가 긴 칼의 형태인 월도였습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는 화살?

▲ <불멸의 이순신> 방영 초기장면인데 조선 전통의 사법이 아닌 서양의 양궁 사법으로 각궁을 쏘고 있습니다. 조선 방식은 엄지에 깍지라는 보조기구를 끼워 당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완전히 퓨전 역사 상상물 <천군>의 이순신이 생각납니다. 이순신 장군이 언제 검지와 중지를 이용한 서양의 양궁을 익혔는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2005 KBS
셋째,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는 화전(火箭) 즉, 불화살의 문제입니다. 지난 주 울산성 전투에서 권율이 이끄는 조명 연합군이 수맥을 차단하여 성내의 우물이 말라 왜군이 밤중에 성문을 열고 물을 구하러 나왔다가 화전 공격에 치명타를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전의 선상 전투장면에서도 함 대 함 포격전 이후 불화살을 쏘았는데, 이때도 불화살은 잘 타올랐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살이 왜군의 몸통에 박혀 고꾸라지는 모습이 정말 깨소금 맛이었습니다.

허나 이 또한 역사 고증문제가 걸립니다. 화전은 불이 활활 타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화살 끝 작약통 부분 심지에 작은 불길이 붙어서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살이 날아서 목표물에 박힌 후 작약통이 터지면서 불길이 번지는 것입니다.

▲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전의 모습입니다. 만약 저렇게 화전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 날아가기 전에 작약통이 터져서 아군이 먼저 죽습니다. 조선시대 화전은 작은 심지에 불이 붙어 날아가 목표물에 박힌 후 터져 불길이 번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역사퇴보의 순간입니다.
ⓒ2005 KBS
만약 이렇게 현재 방식처럼 활활 타오르는 화살을 쏠 경우 불길은 꺼지고 맙니다. 조선시대 때 사용된 각궁으로 화살을 날릴 경우 초속 약 65m의 스피드를 자랑하며 날아갑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속도이며, 불길이 활활 타오를 경우 순간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화살의 불길은 완전히 꺼지고 맙니다. 현재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전방식은 화약이 발명되기 전 즉, 고려시대 이전의 화공(火攻) 전략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고증이 완벽해야 드라마가 산다

▲ 전통사법으로 활을 쏘는 국궁 동호인 모임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조금은 수정된 모습으로, 활을 쏘는 병졸들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깍지 없이 쏘는 모습이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전통 각궁의 경우 깍지 없이 활을 쏘면 엄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큰 고통이 따릅니다.
ⓒ2005 KBS
역사에 대한 고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왜'라는 부분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을 실제 역사자료에 맞춰서 고증하는 것이지요. 만약 검집을 손에 들고 다닌다면 조선군관은 전부 한 손만 사용하는 외수검법을 사용하였거나 혹은 싸움이 끝난 후 자기 검집을 찾으려 헤매고 다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것입니다.

▲ 조선시대 사용되었던 환도와 궁시일체인 동개를 패용한 모습이다. 이처럼 조선의 경우 칼을 허리에 차고 활집과 화살집을 현재의 탄약통처럼 몸에 붙여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전투가 끝난 후 검집을 찾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드라마처럼 그냥 통에 넣어서 움직이면 몸을 구부리는 순간 화살이 모조리 쏟아질 것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당파의 경우는 어느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포졸들이 이것만 들고 뛰어다니기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선시대 병졸의 경우 당연히 당파만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만약 당시에 사용되었던 무기를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극의 전투장면이 좀더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화전의 경우 또한 가시적인 효과 때문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에도 사용된 신기전과 같은 비행무기를 표현한다면 훨씬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연출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약 40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그 뛰어난 면모를 가슴에 새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시간을 좀 더 제대로 고증에 맞게 그려낸다면 지금도 남해바다를 지키는 해신으로 남아 있을 이순신 장군 또한 큰 웃음을 지으실 것입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2005-08-0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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