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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바람에 빗질하고 빗물로 목욕하던 정조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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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1 17:53:11, 6162회 읽음)

[바람에 빗질하고 빗물로 목욕하던 정조의 남자들]
-수원 화성박물관 1주년 특별 전시회 <화성의 웅혼 장용영>  
                                                                                                최형국 (bluekb) 기자


▲ 입구 정경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빗질하고 비로 목욕하라' 그렇게 조선 최강의 군대는 탄생했습니다.  
ⓒ 최형국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인기를 끄는 소재는 단연 역사물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조선 후기는 늘 안방극장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소재입니다. 특히 조선후기 개혁정치를 이끌었던 정조 시대는 가장 매력적인 소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정조일까요? 정조 집권기에 펼쳐진 문예부흥 운동은 조선을 문화적으로 가장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그 시대를 이끌었던 정조는 물론이고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비롯한 실학자들이나 김홍도(金弘道, 1745~?), 신윤복(申潤福, 1758~?), 최북(崔北, 생몰년 미상)과 같은 화공들에게까지 이어지며 18세기 조선의 많은 부분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정조 시대에 대한 이러한 열풍을 보면서 무예사를 전공한 나로서 느끼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러한 관심이 주로 문(文)이나 예(藝)에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문의 대칭은 바로 무(武)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조 시대를 함께 살아간 무인들의 삶도 충분히 새겨볼 만한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정조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만든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 '장용영(壯勇營)'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지금의 특수부대 못지 않은 실력으로 왕을 호위했던 장용영에 얽힌 이야기 또한 당대를 이해하는 좋은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장용영은 말 그대로 '정조의 정조를 위한 정조에 의한' 국왕 친위부대이며, 더 나아가 정조의 민생개혁 의지를 뒷받침한 최강의 군사조직이었습니다.


▲ 조선시대 화기 조선후기 사용된 화약무기인 조총과 대승자총의 모습입니다. 강력한 화력의 지원은 예나 지금이나 군대의 전투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 최형국


- 장용영의 탄생은 정조의 삶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슬픈 일은 아마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일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그 자체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로 큰 사건이겠지요. 그런데 정조는 불과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모습을 그저 넋 놓고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아비를 죽인 원흉인 홍인한(洪麟漢, 1722~1776)을 비롯한 노론 척신들에 의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정조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 모든 아픔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지요.

그런 악몽 같은 10대를 보낸 정조는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날을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스물셋 되던 해에는 이른바 '동궁삼불필지설(東宮三不必知之設, 세손은 세 가지 일을 알 필요가 없다)'이 혈기에 찬 정조를 정면에서 찍어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즉, 세손이 국사의 핵심을 아느냐는 영조의 물음에 홍인한은 "동궁은 노론·소론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고, 병조판서와 이조판서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나아가 조정 일에 대해서는 더욱 알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던 것입니다. 홍인한은 세손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더 나아가 세손의 지위를 박탈하려는 주장을 영조 앞에서 버젓이 행한 것이지요.


▲ 삼혈총 총혈이 세 개인 삼혈총입니다. 세 개의 총열을 하나의 손잡이에 결합시켜 만든 총으로 조선후기 기병이 전속력으로 돌진하면서 가장 먼저 적에게 날렸던 무기입니다.  
ⓒ 최형국

다행히 이날의 일은 서명선(徐命善, 1728~1791)을 비롯한 정조의 친위 세력에 의해 덮어졌습니다. 그리고 세손에게 대리청정 의식이 행해진 지 석 달 만에 영조가 승하함으로써 정조는 드디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긴 세월 동안 다져진 기득권 세력은 정조를 결코 왕으로 모실 수 없었습니다. 정조 또한 그들이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도록 가만둘 수 없었겠지요. 그들은 아비를 죽인 원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설움을 딛고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던 날, 정조는 대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선대왕께서 종통(宗統)의 막중함을 위하여 나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뒤를 이으라고 명하셨다."

- <일성록(日省錄)>, 정조 즉위년 3월 10일

정조는 자신이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킬 화두를 대신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조가 자신의 뜻을 펼치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했습니다. 비록 왕위에는 올랐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중앙 군영인 오군영의 대장들은 이미 척신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한 채 병조판서를 무시하며 정조에게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정조와 척신들의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직접적인 선제공격은 척신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처소까지 자객을 잠입시키는 '존현각(尊賢閣) 침입 사건'을 벌였지요. 다행히 정조를 호위하던 무관에게 발각되어 암살은 실패했지만 정조는 이를 핑계로 그동안 감춰뒀던 복수의 칼에 드디어 피를 묻힙니다. 그리고 정조는 썩어 버린 오군영을 버리고 진정 자신만의 군대, 참세상을 열 수 있는 정예 군사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 어정 병학통 <어정 병학통>은 정조의 명으로 만든 군사 진법서로 단병무예인 칼과 창을 운용하는 <무예도보통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된 책입니다. 요즘 군대에서도 진법훈련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 최형국

1785년 7월, 정조는 드디어 훈련도감의 최정예 무사들을 뽑아 장용위(壯勇衛)라는 국왕 경호부대를 창설합니다. 정조는 처음엔 30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규모를 50명으로 늘려가다가, 2년 뒤엔 약 200명으로 확대하고 부대 이름도 장용영의 전신인 장용청(壯勇廳)으로 바꾸었습니다. 1788년 정조는 기존의 오군영을 감싸던 척신들의 불만을 뒤로하고 장용청을 확대 개편해 드디어 한 개의 단독 군영인 장용영을 탄생시켰습니다.

당시 장용영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척계광의 전법을 기본으로 5사(司)에 25개 초(哨)를 두었는데 그중 핵심인 중사 5개 초는 서울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는 수원, 용인, 가평, 파주 등에 분산 배치했습니다. 이후 수원에 화성이라는 거대한 성을 쌓고 장용영 외영을 설치하면서 그렇게 정조의 개혁이 드디어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 고풍 이 자료는 고풍(古風)으로 활쏘기 시험을 잘 본 장용영 관원 오의상에게 정조가 직접 내린 문서입니다. 내용은 화살 몇 발을 쏴서 몇 개나 과녁에 적중했는지 그리고 그것의 점수는 어떠했는지를 적고 있습니다. 이날 정조는 선물로 수조기 한 마리와 웅어 한두름을 하사했습니다.  
ⓒ 최형국  

- 장용영- 끊임없는 훈련, 오직 실력으로 승부한다

장용영에 뽑힌 병사들은 오직 실력으로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장용영에는 정조의 새 세상에 대한 의지와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용영의 병사들은 기존의 오군영 병사들이 받았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특수부대의 위용을 갖춰나갔습니다.

장용영 병사들이 익혔던 기본 무예는 원기(元技)라 해 화포, 조총, 활쏘기였으며 이외에 별기(別技)인 창검 무예를 따로 익혔습니다. 또 장용영의 정예 기병인 선기대는 좌초와 우초로 나눠 좌초는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적을 기만하는 마상재를 훈련하고, 우초는 별기인 기창·마상쌍검·마상월도 등 실전에서 적의 예봉을 꺾는 기예를 훈련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대부분 정조의 어명으로 편찬된 개인 전투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한자를 모르는 군사들을 위하여 언해본을 따로 만들어 보급했기에 당시엔 누구나 <무예도보통지>를 옆구리에 끼고 수련했을 정도였지요.


▲ 환도- 조선시대 대표적인 칼인 환도의 모습입니다. 적과의 마지막 전투시 백병전에서 사용한 무기로 칼집에 고리를 묶어 몸에 부착하도록 하였습니다. 손잡이에는 '홍조수아'을 드리워 장식성을 높였습니다  
ⓒ 최형국  

이 중 보군(步軍)은 능기군(能技軍)과 십팔기군(十八技軍)으로 구분했는데, 일 년에 네 번 시험을 봐서 실력이 떨어지고 게으른 병사들은 십팔기군으로 강등시키고 성적이 우수한 자는 능기군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선발된 능기군 중에서도 무예 실력이 뛰어난 병사들에게는 특별히 번직을 줄여주고, 급료를 높여주며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 장용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 정조를 지켰던 조선 최강의 특수 부대 장용영의 군사들이 이번 전시회의 내용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수원화성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로 수원 화성을 지꼈던 장용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더욱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2010년 6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나는 간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 간 날을 아쉬워하듯...


▲ 장용영 힘찬 붓끝의 움직임에는 칼날의 매서움이 담겨있습니다. 장용영 편액 탁본첩으로 조선시대 관청에 걸린 편액 중에서도 명필로 인정받는 작품입니다.  
ⓒ 최형국


"문과 무의 균형발전, 정조 바람 담긴 장용영"
-[인터뷰] 수원 화성박물관 김준혁 학예팀장

  
▲ 김준혁 수원 화성박물관 학예팀장  
ⓒ 최형국

-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 전의 특수부대였던 장용영을 주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장용영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장용영은 정조시대 개혁의 핵심이었습니다. 문으로는 규장각, 무로는 장용영을 설치하여 인재개발과 군제개혁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이는 정조가 꿈꾸었던 세상, 즉 문과 무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서 진정 부강한 나라로 조선을 키우고자 했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장용영의 경우는 백성과 함께 키우고 백성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부분이 담겨 있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 특별전의 핵심인 장용영의 무예 훈련은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요?

"장용영은 조선후기 최강의 군대였기에 조총은 기본이었고 다양한 선진화된 무기들로 무장했습니다. 특히 백병전처럼 군사들이 일대 일로 전투에 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칼이나 창을 비롯한 단병무예였기에 이러한 부분에도 많은 훈련을 할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단병무예를 무과시험의 과목으로 지정해서 많은 성과를 봤습니다."

- 앞으로 수원 화성박물관에서 장용영에 관한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요?

"장용영과 관련된 모든 사료를 이곳에 집중시킬 계획입니다. 무기류, 병법서 등은 기본이고 현재 규장각에 남아 있는 장용영 관련 토지 문서나 둔전 생산량 관련 문서 등 관련 자료를 최대한 확보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향후 연구자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 번역 및 연구작업을 진행하여 홈페이지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이를 홍보할 예정입니다."

- 마지막으로 국내 최초로 장용영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요. 개관 1주년 기념으로 펼쳐진 장용영 특별전의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어떠한 것이 있는지요.

"장용영이 갖는 상징성은 단순히 유물로만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민생안정이나 자주국방의 부분은 전시공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조대에 장용영에서 펼쳤던 민과 군의 합동 군사훈련의 모습이나 수차 복원을 통한 민생안정책 등을 실제로 보여 줄수 없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향후 10년 즈음 뒤에는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전을 다시한번 계획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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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시회 기간 : 2010년 04월 27 - 06월 27일

-전시 장소 : 수원화성박물관(031-228-4205)
  
최형국 기자는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합니다.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이며, 저서로는 <친절한 조선사>, <조선무사>가 있습니다.

2010.05.11 14:31 ⓒ 2010 OhmyNews

기사 주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9812&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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