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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깨비의 산성따라 걷기 3] 임란의 뼈아픈 실책, 고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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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8:15:38, 5996회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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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 토끼벼리
사진 2 : 관음의 미소


-문경 고모산성(姑母山城)

굽이굽이 산 넘고, 물 건너는 깨비의 산성 답사.

우리의 옛길 영남대로의 심장부, 문경 고모산성(姑母山城)을 찾아 갑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지 2시간 반이 넘어설 무렵 구 국도 3호선 진남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우직한 두 다리를 믿어야할 시간입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옛 진남교 아래로는 아직도 굽이 굽이 한 세월을 머금은 영강이 흐릅니다. 일제때 만들어진 진남교는 그들의 수탈방식을 이야기 해줍니다. 일단~ 조선에 도로와 다리 등 기반시설을 잘 갖춘 후!, 아주 효율적으로 조선의 자원을 빠르게 뽑아 먹는다.(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며 조선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야기 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가끔 그들의 뇌 구조를 한번 들여다 보고 싶기도 합니다. )



진남교를 건너 고모산성으로 가다보면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기차길과 터널이 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때 문경지역의 석탄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경선입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듯 보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선로위에 아무것도 다니지 않습니다. 물론 이곳의 탄광산업을 통해 70-80년대 문경이 많은 발전을 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허나 탄광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다시 적막감만이 함께 합니다.



철길을 지나 얕은 산허리를 돌아가다 보면 드디어 고모산성의 중앙문 진남문에 이릅니다. 헉, 그런데 산성에 다가가면 다가 설 수록 인상이 찡그려 집니다. 왜냐구요? 보시는 것처럼 주변의 돌은 편마암 계열의 돌인데, 성문 주변으로 말끔한 화강암으로 치장한 새로운 '문경성문'의 탄생을 노래합니다. 부디 복원을 하더라도 주변의 경관과 원래의 축성방식(이곳은 신라시대부터 쌓은 산성입니다.)을 살렸으면 합니다. 물론 조선후기에 고모산성의 왼 나래쪽에  남동쪽으로  날개처럼 뻗어나간 석현성(石峴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완벽한 사각구조와 시멘트에 화강암으로 둘러싼 모습은 역시 눈에 심각하게 거슬립니다.



진남문을 지나 왼편으로 돌아 서면 아직 복원중인 성벽의 일부를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토끼비리'가 나타납니다. 토끼비리... 토끼가 비리를 저질렀나구요? ^^ 토끼 정도가 지날 수 있다는 '토끼벼랑' 혹은 '토끼벼리'입니다. '비리'는 벼랑의 이곳 사투리랍니다. 왜 토끼 벼리인지는 조금 후에..



석현성이 끝나는 무렵 문뜩 고개들어 뒤를 돌아 봅니다. 그곳에 거대한 고모산성이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로는 신라시대의 고분들이 몇개 앉아 있습니다. 올라 오시는 길에 잠시 들리셔도 좋습니다. 자 이제 토끼벼리로 출발~



토끼벼리에는 이처럼 바위가  닳고 닳아서 반짝 반짝 해진 곳이 많습니다. 이곳 아래로는 영강이 흐르는, 말그대로 한발만 잘못 놓으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짐... ^^;  이곳은 조선시대에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던 길인 영남대로의 한 구간이었기에, 수 많은 짚신에 이렇게 광이 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인지라, 그들의 한과 눈물이 이리도 험한 곳에 길을 만들었나 봅니다. 자! 그럼, 토끼벼리에 얽힌 옛날 이야기 하나 들어 갑니다.



때는 후삼국, 아직 제대로 된 파워를 형성하지 못하던 왕건은 견훤에게 맞짱을 뜨려 했지만 중과부적이라. 견훤에 쫓기던 왕건이 앞으로는 오정산이 막아서고 영강이 가로지르는 이곳에 이르러 어쩔 줄 몰라 하늘에 탄식하고 있는디... 그때 마침 길 잃은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모습을 본 왕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토끼를 따라 사지를 벋어 났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이후 사람 한명 지날 수 없을 것 같던 길이 토끼 덕분에 열리게 돼 ‘토천’(兎遷), 즉 ‘토끼가 달아난 벼랑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조선시대 문인들 중 이곳을 지나면서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그 시는 직접 한번 찾아 보시길... ^^

조선초기의 문신인 면곡 어변갑 선생이 지은 시가 대표적입니다.  글께나 쓰시는 양반들은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답사 사진에서 가끔 사람이 등장해도 느낌은 좋은 듯 합니다. 혼자가는 길보다는 여럿이 함께... ^^ 토끼벼리를 따라 걷다보면 그 긴 세월 이곳을 지나갔던 사람들의 훈훈한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그럼 다시 길을 되돌아와서 고모산성으로 갑니다. 토끼벼리로 쭉가면... 고모산성을 제대로 볼 수 없겠지요.~




진남문 안쪽에는 주막과 그 옛날 사람들이 걸었던 넓은 영남대로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개 위에는 성황당과 돌탑이 기다립니다. 우리나라 어느 길이든 옛길에는 돌탑과 성황당이 마음의 안식을 채워줍니다. 그 옛날 사람들도 한 고개 넘을때마다  여행의 안녕을 위해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쉼없는 고개길을 넘는 우리네 삶 속에서도 뭔가에 복될수 있는 그 마음이 필요할 듯 합니다. 참, 이곳에도 전설따라 삼천리의 이야기가 있는데, 자판 위의 손가락이 아파서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

자! 다시 고모산성으로 go go~




다시 진남문으로 돌아 와서 토끼벼리의 반대쪽 능선(남문쪽)을 따라 올라갑니다. 고모산성은 아직도 복구 중입니다. 남문이 있었던 곳을 향해 올라가면 산성의 엄청난 높이에 숨이 막힙니다. 그러나 역시 복구공사는 너무나 완벽하게 진행중이었습니다.




원래 이곳의 하단부는 상당부분 남아 있었지만 몽창 중장비로 밀어 버리고 다시 쌓은 듯 합니다. 너무 정교해서 숨이 막혀 옵니다. 왜 숨이 막혀 오냐구요? 다음 다음의 사진을 보시길...



참,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남문지를 지나 성벽에 오르면 '진남교반'을 만납니다. 지금 보시는 영강의 물돌이의 왼쪽 위가 바로 토끼 벼리랍니다. 각도를 대충 짐작해 보시길... 가랑비가 내려 잠시 우비를 꺼냅니다.



아직 원형을 잘 간직한 서문지 근처의 성벽입니다. 편마암의 날카로운 선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복원하면 안되나요? 자연스럽잖습니까! 모두 규격화시켜 자연의 맛을 잃어버린 위쪽의 복원성벽과의 느낌을 비교해 보시길...



좀 더 가까이 눈길을 보내면 그 세월의 풍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 석공들의 우직한 손내음을...



성벽 안쪽에는 이렇게 수구-물구멍이 아직도 숨쉬고 있습니다. 고모산성은 축성방식이 포곡식 산성이라 계곡의 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성벽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이처럼 정교하게 수구를 만들었습니다. 총구멍(?)은 아니랍니다. 조선시대의 원총안과 근총안의 개념은 아니지요. 오히려 현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는 초여름 6월인지라, 산천에 먹을 것이 널려 있으니... 그 중에 하나 산딸기(복분자)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따라 그 한 많은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때깔 고운 산딸기가 반깁니다. 허겁지겁 목마름을 달래려 한 주먹 모아 입에 털어 넣습니다. 그 맛은~... 상상 불가! 기갈이 감식이라고 했으니 땀을 뻘뻘 흘린후 그 맛은, 이는 천상의 맛일께요~!


자! 이즈음해서 역사 이야기 한 토막!

이곳 고모산성은 임진왜란때의 뼈아픈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바로 신립의 탄금대 전투의 몰살에 대한 원인이 담겨 있지요. 오죽했으면 임진왜란 1선봉대인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와 그의 부하들이 고모산성을 지나며 춤을 췄다고 하는 기록이 남겨 있습니다. 왜냐구요? 만약 조선군이 이곳을 제대로 지켰다면 일본군들은 제대로 충주에도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토끼벼리에 몇 백명만 지켰다면 왜군들이 정상적으로 지나 갈 수 이었을까요? 심지어 조선을 도우러온 명군의 장수 이여송이 이 고모산성 아래를 지나면서 방어하기에 최고의 장소라 극찬을 했던 곳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상주에서 선봉장 이일장군의 부대을 박살내고 조심스레 이곳을 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가 바로 조령입니다. 신립의 부장이자, 백전노장 김여물 장군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바로 '조령'말입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 아시겠지요? 물론 신립의 항변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항변을 모두 듣기에는 너무나 그 패배가 뼈아파 귀로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신립장군의 항변은 같은 기병장수(?)로써 다음에 한번 다루지요.


이일장군을 박살낸 고니시는 함창을 거쳐 이곳 고모산성의 근접지인 당교에 이르러 고모산성의 위험성을 대비하기 위해 미리 정찰대를 파견했습니다. 심지어 한번이 아니라 두번, 세번에 걸쳐 고모산성에 정찰을 보냈지만, 역시나 조선군은 아무도 이곳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도 안타까운 일이지요.

임란이후 영조의 소론 및 남인 청산작업에 반발한 무신난(이인좌의 난)때에도 토벌군 장수인 신필정(申弼貞)이  당시 난의 투톱(이인좌와 정희량)중 하나인 정희량(鄭希亮)의 반란군을 제대로 방어해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 만약 이곳이 뚫렸다면 영조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구한말 일본에 의해 조선이 풍전등화의 위기였을때, 문경지역의 의병을 일으켰던 운강 이강년 의병장이 승전의 전투를 지휘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강년 의병장은 당시 의병장으로는 유일하게 무과급제자 출신으로  22세 때인 고종 17년(1880)에 정시 무과에 합격하여 종6품인 절충장군 (折衝將軍)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이되었으나 갑신정변(甲申政變)을 계기로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왔다가 의병의 칼을 뽑았습니다. 최고의 무신 엘리트 코스를 버리고 낙향한 그에게 조선의 위기는 곧 그의 위기였습니다. 그의 게릴라 전술을 통해 전력을 확보한 의병들은 서울진공연합작전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광복군의 좌절된 서울 진공작전처럼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의 뜻은 이미 하늘에 닿았습니다.



자! 이제 곰팡내 나는 역사 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고 다시 걷습니다. 산행길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직한 두 다리입니다. ^^ 얼마전 근육파열이라는 심하게 다친 다리가 조금씩 결리지만 그래도 고운 산내음 맡을 수있기에 그 길위에 섭니다. 서문지를 지나 북문지로 향하는 길은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입니다. 그곳에 올라 저 멀리 문경평야를 바라 봅니다. 잠시 내리 비에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굽이 굽이 고운 물줄기가 꼬리를 흔들고 지나갑니다.



고모산성을 내려 오는 길에 만난 오디입니다. 뽕~ 나무 열매이지요. 많이 먹으면 혀 바닥이 깜해집니다. ^^; 헤~ (보이시나요?)

주변을 돌아 보면 이 산하 가득 자연이 준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그 고마운 자연을 가능하면 그대로 두면 좋겠습니다. 산과 강이 그대로 쉼쉬도록...



고모 산성을 내려와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하늘재에 잠시 들러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있다가 관음님의 얼굴을 만나러 갑니다. 하늘재에서 다시 내려와 오는 길 중간에 (사과농장이름이 '애플 농장' 입니다) 사과나무 밭을 찾아 들어가면 그곳에 관음님이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십니다. 이곳은 원래 큰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이 가듯 큰 받침돌이 여기저기 쌓여 있습니다. 자!~ 그럼, 관음님의 얼굴을 만나 보실까요!




이곳의 마을 이름이 '관음리'입니다. 관음의 세상, 미륵의 세상... 그 따스한 세상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그 분의 미소는 언제나 고맙기만 합니다. 통일신라시대때 만들어진 불상이라 세월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그분의 얼굴은...




염화미소라... 당신의 마음을 모두 아시기나 한 듯, 속세에 묻혀 사는 우리에게 그 분의 미소는 이리도 인자하십니다. 머리에는 산 모양의 삼산관을 쓰시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계시는 그분... 뭔가 흐뭇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 흐뭇한 미소 한자락~  이 글을 보신 분들도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날려 주시길~~

내려 오는 길에 약사함을 곱게 들고 계시는 약사여래님의 미소도 만나 실 수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서서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면 복을 전해주시는 그분들처럼, 우리네 삶도 그렇게 따스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눈빛 가는 모든 곳에 행복이 가득하길...



-2010년 6월, 당신의 작은 글 사람 푸른깨비 최형국 드림-

  http://muye24ki.com

원본 글 : http://blog.naver.com/bluekb/50090298943
(사진과 함께 보시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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