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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만주를 휘어잡던 고구려의 말, 과하마를 아십니까

 이름 : 최형국

(2005-03-12 20:11:00, 6816회 읽음)

만주를 휘어잡던 고구려의 말, 과하마를 아십니까
[연재] 한국의 마(馬)문화 이야기 <4>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붉은 악마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치우상이다. 강력한 갑주로 무장한 채 드넓은 대륙을 뒤흔든 전쟁의 신이었다.
인간이 말 위에서 무예를 펼치는 마상무예가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인간이 말 사육을 시작했던 기원전 5~6세기 전부터 전투 수단으로 말을 활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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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기술이 발달하기 전, 기마병은 요즘의 전차부대와 동일한 파괴력을 가졌다. 특히 보병에게 있어서 기병은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온몸을 철갑으로 무장한 철기병(鐵騎兵)들이 일렬 횡대로 달려들어 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거대한 피의 파도가 치는 듯했을 것이다.

근래에 붉은 악마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치우천황의 상도 갑주를 두른 개마(介馬) 위에 짐승의 뿔을 투구 위에 붙이고 돌격했던 전쟁의 신을 표현한 것이다.

▲ 고구려의 말은 과하마(果下馬)라 하여 과일나무 밑을 말을 타고 지나갈 정도로 작은 말을 전마(戰馬)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고구려의 작은 말은 기동력과 지구력이 우수하여 산악지역에서 기병들의 움직임을 원활케 하였다 .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마상무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고구려의 철갑기마부대는 그 규모가 몇 만에 달할 정도의 대부대였으며 드넓은 만주 벌판을 휘어잡았다. 고구려의 마상무예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것은 고분 벽화이다.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에 전하는 5~6세기의 고구려 고분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수렵도(狩獵圖)가 그려져 있다. 특히 무용총(舞踊塚)에 있는 고분벽화에서는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4명의 말을 탄 무인이 활을 쏘며 사냥을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철갑 말얼굴 가리개 - 고구려 삼실총 기마도에 보이는 말의 철갑 얼굴 가리개로 적의 창칼에 말을 보호하기 위해 씌운 말 투구이다. 기병이 공격할 시에 보병은 말을 탄 기병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타고 있는 말을 공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활과 화살은 우리 민족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징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화살촉에 울음통을 붙여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효시(嚆矢)와 요즘의 각궁 형태인 만곡궁은 우리 민족의 독특한 활 문화다.

그림의 기마 자세를 통해 전방, 후방을 가리지 않는 활쏘는 기법에서 우리 민족의 기마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말은 과일나무 밑을 지나갈 정도로 작은 말인 과하마(果下馬)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이는 산악 지형에서도 잘 넘어지지 않고 지구력이 탁월하여 고구려 전투력의 바탕이 됐다.

▲ 명적(鳴鏑). 일명 우는 살이라고 불리는 화살이다. 우리의 변방을 끊임없이 괴롭힌 여진족은 명적이 울면서 날아오면 악마(귀신)가 우는 소리라 하여 아주 두려워하였다. 특히 편전과 짝을 이뤄 한국의 궁술을 널리 알린 화살로 알려졌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고려시대에는 신기군(神騎軍)이라는 기병을 양성하여 잃어 버린 고구려의 광영을 되찾으려 했다. 고려 숙종 9년(1104년)에 윤관의 건의로 고려의 변방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여진을 정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별무반을 두었다. 이 별무반에는 기병을 중심으로 한 신기군(神騎軍), 보병을 중심으로 한 신보군(神步軍), 승려를 중심으로 한 항마군(降魔軍)이 있었다.

특히 여진족의 경우 기마술이 뛰어났는데 그들은 기병을 이용해 신속하게 적의 진영을 부수고 말 위에서 칼과 창을 휘둘러 상대를 제압했다. 이에 대한 방비책으로 신기군을 양성하게 된 것이다.

▲ 조선의 대표적인 활 각궁이다. 소 힘줄과 무소의 뿔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복합궁의 형태로 사진은 각궁의 부린 활 모습으로 아직 시위를 올리기 전의 모양이다. 활을 쏠 수 있도록 시위를 걸 경우 양끝을 잡고 반대편 원으로 휘어 ‘W'형태로 만든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또한 고려시대에는 말을 타고 공놀이를 하는 격구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격구는 서양의 폴로와 유사한 형태이나 그 놀이 진행 방식이 사뭇 다르다. 서양의 폴로는 스틱으로 볼을 쳐서 진행하는 타구 방식의 경기다. 반면 격구는 숟가락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의 채인 장시를 이용하여 공을 채로 집어 들고 좌우로 돌리거나, 장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공을 얹고 달리는 등의 서양의 폴로보다 훨씬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려사(高麗史)> 별전 편을 살펴보면, 고려의 무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 마별초라는 기병부대를 육성시켜 무신정권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부대를 별도로 편성하기도 했다. 고려의 기병들은 마상무예를 숙달하기 위하여 격구를 즐겨 연습했다. 격구를 잘하면 기마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기에 마상무예를 훈련하기 위해서 격구를 연습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기마술에 능해 왕이 된 후에도 직접 기사(騎射)와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를 연마하는 등 개국 초기부터 마상무예를 널리 전파하기도 했다.

이후 세종은 "격구를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할 수 있으며, 창과 검술도 능란하게 된다"고 할 정도로 격구를 비롯한 마상무예의 수련을 널리 하도록 권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의 무과시험의 경우 기사(騎射)와 기창(騎槍) 등 마상무예를 섭렵해야만 급제할 수 있도록 과목에 마상무예를 포함시켰다. 특히 국왕의 최측근 호위부대였던 내금위, 우림위, 겸사복 중 겸사복 선발에 있어서는 기사(騎射)와 마수(馬手) 등을 익혀야만 뽑힐 수 있었다.

▲ 수원 화성(華城)의 북문인 장안문의 양옆을 지키고 있는 홍이포이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홍이포는 유럽에서 들여온 대형화기로 사거리가 약 700미터 정도이며, 근거리시에는 산탄포를 사용하는 등 강력한 화력을 가져 조선 후기 수성전을 위해 성곽 위에 배치되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임진왜란 이후 화약 병기의 발달로 마상무예는 급격히 퇴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약 병기의 성능이 뛰어나지 못해 기병에게 포수(砲手)들이 전멸 당하는 등 기병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광해군이 집권한 시기에 명나라의 요청으로 조선군 약 3만여명의 포수(砲手)들이 심하전투에서 누르하치의 팔기군 기병들에게 전멸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마상무예는 더욱 절실해졌다. 인조 대에 이르러서는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장효인, 김정 등이 마상무예를 일본에서 시연하여 막부를 비롯한 일본인들에게 크나큰 격찬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일본에는 조선의 통신사 일행에 마상무예에 능한 사람을 꼭 동참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의 마상무예에 감복한 나머지 일본에서는 다아헤이본류(大坪本流)라는 마상무예의 유파가 만들어져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 일본의 화가들이 그린 마상재도이다. 당시 조선의 마상무예를 구경하기 위하여 쇼군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자리를 참여했으며, 일반평민들 또한 그 재주에 감탄하여 멀리서라도 구경하려 하였다. (자료 제공: 마사박물관, 한국의 마상무예 화보 중 일부)
조선의 마상무예가 체계화된 것은 1790년(정조14년)에 이덕무와 박제가, 당시 장용영 초관이었던 백동수 등이 집필한 조선의 정통의 군사무예인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통해 이뤄졌다. 여기에는 기창(騎槍),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등 모두 여섯 가지의 마상무예가 그림과 설명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실학사상의 표상이었던 '금(今)'과 '용(用)'의 정신이 발현된 군사 무예서이다. 즉 오늘날(今) 우리에게 진실되게 필요한 것을 만들고, 우리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用)할 수 있도록 무예를 정리한 것이 바로 무예24기가 수록된 <무예도보통지>다.

▲ 1790년 4월 드디어 정조대왕이 애타게 기다리던 무예24기가 수록된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다. 정조대왕은 작업에 참여했던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를 비롯한 하급 장교에게까지 상을 주어 그들을 칭찬하였다. 본 무예24기의 글자는 좌의정 번암(樊巖) 채제공이 쓴 무예도보통지 서문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후 오군영을 비롯한 지방의 군영에서는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를 수련했다. 특히 정조의 친위군영이었던 장용영은 마상무예를 전담으로 하는 선기대와 지상무예를 담당하였던 능기군을 별도로 구성하기도 했다. 또 군사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지상무예를 포함한 마상무예의 발전을 꾀했지만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일제 식민치하를 거치면서 모든 전통 마상무예의 전승이 중단되고 말았다.

▲ 조선시대 기병들이 필수로 휴대하였던 마상편곤이다. 편곤은 일종의 쇠도리깨로 말을 타고 가며 적의 머리를 공격하는 강력한 타격형 무기이다. 일반적으로 기병이 보병을 상대할 때에는 칼로 베는 것보다, 타격형 무기로 치고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진은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 최형국 단장의 마상편곤 시범이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한국의 마(馬)문화 이야기 연재물은 앞으로 약 4편의 기사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후 연재물은 마상무예, 격구, 재활승마, 말의 생태 등입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2005-03-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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