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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말타고 공놀이 한번 해 봅시다

 이름 : 최형국

(2005-04-02 18:04:13, 7683회 읽음)

말타고 공놀이 한 번 해 봅시다
[한국의 말(馬)문화 이야기 6]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1930년대 이여성이 그린 격구도의 일부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채인 장시를 들고 붉은 공을 쫓아 말을 달리던 조선 마상무예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격구자는 붉은 철릭을 입고 종립이라는 모자를 쓰고 격구를 합니다.
ⓒ2005 마사박물관도록 20
우리 나라에도 서양의 폴로(polo) 경기와 비슷한 격구(擊毬)라는 전통 놀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폴로보다도 훨씬 정교하며,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것이 격구입니다.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채를 이용하여 나무공을 치거나 채에 걸어서 상대방의 문에 넣는 경기입니다.

한자어로는 ‘타구’(打毬), ‘격구희’(擊毬戱), ‘격봉’(擊俸) 등으로 불렸는데, 이러한 말 위에서 하는 격구가 지상에서는 보격구라는 형태로도 행해졌습니다. 흔히 장치기 혹은 공치기라는 놀이가 보격구의 형태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격구는 무예를 숭앙시 했던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를 살펴보면 격구에 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나는데, 태조 원년(937) 9월 ‘상주성을 지키던 적장 아자개(阿字蓋)가 투항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환영식 연습을 격구장에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려 18대 왕인 의종(毅宗)은 격구를 매우 좋아했는데, 3~4일을 연속으로 쉬지 않고 격구를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 때에는 왕이 직접 격구경기를 하였고, 거대한 격구장을 건설하여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 무예도보통지 격구 기구설명에 등장하는 모구(毛球) 사진입니다. 모구는 싸리나무를 둥글게 짜고, 그 위에 동물의 털을 씌워 말을 타고 끌고 가면 뒷사람이 그것을 쏘는 기예입니다.
ⓒ2005 육군박물관 도록 1
고려 무신정권시대에는 격구의 사치성이 극에 달했는데, 격구장의 규모가 너무 커 민가를 침탈하여 백성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으며, 많은 신하들이 이에 대해 상소를 올리는 등 정치문제로도 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격구는 그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경우 북방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마상무예에 출중하였기에 직접 격구 경기를 즐기며 궁중 생활의 무료함을 격구를 통해 해소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 제44장을 살펴보면 이성계의 뛰어난 격구솜씨를 표현한 부분이 나오는데, “놀음놀이의 방울공이시매, 말 위에서 이어 치시나. 이군의 편수인 공치기의 선수만이 기뻐한 거이외다. 군명에 의한 방울공이어늘 말 곁에 비껴 막으시니, 구규의 사람들이 다 놀란 것이외다”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방울공은 격구에 사용되는 공을 말하며 공치기 선수들은 격구 선수들을 의미합니다.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격구 자세 중 배지(排至) 자세로 말을 달려 공이 떨어진 곳에 가서 장시의 안쪽으로 비스듬히 공을 끌어 당겨, 공중으로 높게 들어 올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이후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격구를 무과시험의 종목으로 채택하려 하는데, 어떠한 채점 방법으로 이를 확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종 9년(1427) 3월에 무과시험의 초시, 복시에 격구를 포함시키기에 이릅니다. 이후 국왕이 바뀔 때마다 격구의 규칙이나 장비에 대한 논란이 쉬지 않고 일어났으며, 광해군 2년(1629)년에는 무과시험장의 협소함을 이유로 격구가 잠시 무과시험 과목에서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인조때에 정묘호란의 치욕을 되갚기 위하여 마상무예 보급에 힘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임진왜란과 계속되는 전란 등 국가의 재정적, 정치적 한계로 인하여 마장이 급속히 줄어들어 격구를 비롯한 마상무예의 전반적인 퇴보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격구 자세를 모아 놓은 그림입니다. 이처럼 말을 타고 달리며 작은 공을 채로 치고 들어 올리는 등 다양한 자세가 있어 마상무예를 익히는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다행스럽게도 정조 14년(1790) 4월 29일 조선의 군사무예인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으며, 그동안 쇠퇴했던 격구를 비롯한 마상무예 전반을 완벽하게 복원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1800년 정조의 급작스런 서거와 함께 조선 부활의 꿈이 담긴 마상무예는 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격구에 사용되는 도구들로는 공을 치는 장시(杖匙), 붉은 칠을 한 공인 목구(木毬)가 있으며, 사모구(射毛毬)라 하여 모구라는 털공을 말을 타고 가며 끌면 뒷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가 이를 쏘는 기예가 무예도보통지의 격구조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한편 사모구를 할 때 사용하는 화살의 이름이 현재 잘못 해석되어, 무령전(無鍈箭)이라 하여 방울이 없는 화살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자를 잘못 해석하여 발생한 일입니다.

▲ 무예도보통지의 격구보에 실린 격구장의 규격입니다. 출마표를 시작으로 치구표를 거쳐 구문까지 200보 정도의 거리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무예도보통지의 격구기구를 설명해 놓은 곳을 보면 ‘방울령:鍈’ 자가 아닌 ‘화살촉 촉:鏃’자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모구에 사용된 화살은 앞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화살촉을 제거하고 무명으로 촉 앞을 감싼 무촉전(無鏃箭)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격구 기구를 설명하는 부분에 ‘면포리말(綿布裏末)’이라 하여 '화살 끝에 무명으로 감싼 것이다'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러한 설명에 비춰보면 방울보다는 화살촉이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합니다.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격구 기구 그림입니다. 위쪽 왼편에는 격구에 사용되는 나무공이 있으며, 오른편에는 사모구에 사용되는 모구공입니다. 싸리대를 끼지 않은 모습이어서 쪼그라든 형태입니다. 아래로 장시와 무촉전이 보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격구할 때 입는 옷은 <태조실록>을 보면 “고려시대 격구자의 의복과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의 관복도설을 보면 격구경기를 할 때 입는 옷은 겉옷인 홍철릭과 모자인 종립을 쓰고 격구를 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격구장의 구장은 출발선인 출마표를 기점으로 공을 놓아두는 치구표까지 50보이며, 치구표에서 목표물에 넣는 구문까지는 200보로 전체 세로로는 약 200미터 내외 가로로는 약 50미터 내외 정도의 구장 크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격구의 기본 동작으로는 크게 8가지 자세가 나옵니다. 비이, 할흉, 방미, 배지, 지피, 도돌방울, 구울방울, 수양수 등 장시로 공을 치거나 장시에 공을 걸어 움직이는 자세가 주를 이룹니다. 이처럼 섬세하게 공을 다뤄야 했기에 격구하는 사람들의 말 다루는 기술 수준은 당대 최고의 마상무예를 펼치는 군사들이었습니다.

이 격구가 일본으로 건너가 타구(打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편을 갈라 장시를 이용해 공을 구문 속에 넣는 경기로 백색과 홍색 상의를 입고 4인씩 2개조로 나뉘어 경기를 하였습니다.

▲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격구 복색입니다. 홍철릭과 종립에 대해 섬세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격구의 판정 방식은 여러 가지 있는데,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구문 밖으로 3회 모두 쳐 낸 자, 말 달리기와 빠른 솜씨, 바른 자세 등이 판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경국대전>을 보면 “구문(球門)으로 구(球)를 쳐낸 자는 15점을 주고, 구문 옆으로 지나가게 한 자는 10점을 주되, 자세를 갖춘 자라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공이 구문을 지나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징과 북을 이용하여 점수를 주는데, 성공하면 북을 두드리고 실패하면 징을 치는 것이 기본적인 신호방법이었습니다.

비록 너른 땅은 아니지만 반도에서 대륙을 꿈꿨던 선인들의 혼은 아마 기마(騎馬)의 꿈 속에서 찬란하게 불타 올랐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부활하는 기마민족의 혼을 꿈꾸며 격구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줄일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조선 최고의 마상기예 ‘마상재’ 편입니다.
자료에 도움을 주신 마사박물관 김정희 학예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마(馬)문화 이야기 연재물은 앞으로 약 3편의 기사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후 연재물은 마상재, 재활승마, 말의 생태 등입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2005-04-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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