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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사]- 육사신보 - 기병, 그들은 전통시대 최고의 전투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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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12:03, 7187회 읽음)

[육군사관학교 신문]- 육사신보 :전통군사문화 탐방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 '24기'  소장)

기병, 그들은 전통시대 최고의 전투부대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말(馬)이라는 동물을 길들이고, 전쟁에 사용하며 진화된 기병은 역사 이래로 수천 년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전투부대로 인식되었다. 비록 산업혁명과 더불어 전쟁터에서도 일종의 군사혁명이라는 것이 발생하면서 살아 숨 쉬는 말 대신 강철로 만들어진 말인 탱크와 장갑차가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지만 그 전략의 핵심은 수천 년간 전쟁터에서 다듬어진 기병의 전략과 거의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군사용어에서 장갑부대를 ‘장갑된 기병(armored cavalry)’ 혹은 ‘기계화된 기병(mechanized cavalr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조선은 기병의 나라였다.

  지금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조선이라는 국가는 기병이 없고 오직 보병으로만 움직였던 국가였을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병이라고 하면 칭기즈칸의 거대한 원나라를 연상하거나 서양의 철갑 기사단을 연상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선군 전술의 핵심은 기병이었다. 이는 그 이전 고려의 경우 기마전술에 뛰어난 거란족을 상대하며 기병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였고, 이후 여진정벌과 몽고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얻은 결과물들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후에도 북방 이민족의 위협은 끊이지 않아 조선초기의 주적은 당연히 이들이었고 이에 대한 방어 및 공격을 중심으로 조선군의 편제가 이뤄졌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초기 핵심 병서인『진법』에는 기병을 중심으로 한 전략․전술들이 주를 이뤘으며, 보병은 기병과 동일한 비중으로 편성하였지만 그 실질적 공격 및 방어의 핵심은 기병이었다. 심지어 남쪽의 왜구를 방어하는 데에도 기병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화포를 이용한 방포법과 더불어 기병은 조선의 군사 공격 및 방어체제에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병 위주의 전법은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무인선발 제도였던 무과시험의 과목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조선전기의 무과시험의 실기과목을 살펴보면,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활쏘기를 바탕으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와 창을 휘두르는 기창 그리고 말을 자유롭게 다루기 위한 일종의 무예적 스포츠인 격구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조선전기의 오위진법에서 기본적인 전투방식은 원거리에서 기사병이 활을 쏘아 적의 예봉을 꺾고 이후 기창병이 돌격해서 근접전투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무과시험 과목은 조선후기에도 거의 이어졌는데, 화약무기의 발달로 인해 조총이 추가되고 새로 도입된 마상무예인 편곤이 편추(鞭芻)라는 이름으로 더해졌을 뿐 기본적인 내용은 조선전기와 비슷하였다. 이러한 기병중심의 무인선발 규정은 대표적인 무과시험 뿐만 아니라, 임금의 친위군 성격이 강한 내금위, 겸사복, 별시위 등 최고의 무인들을 선발하는 시험에서도 어김없이 기병의 장기였던 기사를 비롯한 기병무예들이 핵심을 이뤘다. 물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기병의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후 정묘·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기병에 대한 확신은 더해져만 갔다. 이런 이유로 조선후기 정조시대에 만들어진『무예도보통지』에 무예24기 중 기병을 위한 마상무예 6가지가 수록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다연발 총 즉, 재장전의 시간이 혁명적으로 진보되면서 기병의 설자리는 갈수록 줄었지만, 나폴레옹이 소총과 대구경 포를 가지고 유럽을 휩쓸던 18-19세기에도 기병은 강력한 병과였으며, 비행기로 공중 폭격이 진행되었던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소련의 코사크 기병들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현대에도 중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아직도 최신식 무기를 착용하고 이동 수단을 말을 이용하는 이른바 말을 탄 보병인 ‘용기병(龍騎兵-Dragoon)’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기병의 힘과 가치는 이 시대 국방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http://kmanews.kma.ac.kr/200903/pdf/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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