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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사 고증] <주몽>, 칼로 말 궁둥이 계속 때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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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2 18:40:38, 8260회 읽음)

<주몽>, 칼로 말 궁둥이 계속 때릴래?
사극의 열풍 속, 무예사 고증의 허점들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주몽이여, 제발 칼을 들고 다니지 마시길. 만약 주몽의 주특기인 활쏘기를 하려면 당신의 칼은 도대체 어디에 둬야 한단 말입니까. 혹시 활을 쏜 후 내려서 자신의 칼을 찾으시렵니까.
ⓒ MBC <주몽>

지금 공중파 방송에서는 연일 사극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현재 안방극장을 채우고 있는 사극만 4편. 월화드라마로 <주몽>(MBC), 수목드라마로 <황진이>(KBS2), 토요일과 일요일에 방송되는 주말드라마로 <대조영>(KBS1)과 <연개소문>(SBS)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은 우리나라의 고대역사극으로 각 방송사간의 치열한 시청률 접전이 벌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 멀리 중원까지도 넘봤던 고구려 건국의 아버지인 주몽,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100만 명이 넘는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 침략자들을 철저하게 괴멸시킨 연개소문 그리고 고구려 망국의 한을 풀고 발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설계한 대조영. 이처럼 이 세 개의 사극은 모두 고구려라는 잊지 못할 대제국의 영화를 그 핵심에 두고 그려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현실이라서 더욱 시청률 경쟁은 치열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고구려라는 국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 자랑찬 역사를 드라마 속에서 다시 부활시키다보니 여러 가지 역사적 고증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 개마기병(鎧馬騎兵)을 포함한 강력한 기병을 보유한 곳이기에 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물론 지금의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역사고증 부분이라고는 하나 고구려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내심 고심하며 몇 가지를 짚어 봅니다.

주몽이여, 이젠 칼을 꽂아라

먼저, 각 사극에서 여러 전투장면이 전개되는데 그 중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전이 그 시각적 묘미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사극에서는 칼을 뽑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버젓이 칼을 손에 들고 말을 타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몽>에서는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습보 상태에서도 칼을 들고 달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때 칼을 뽑아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그 칼집은 어디에 둬야 할까요? 그냥 버릴까요? 아니면 한 손에는 칼집을 들고 싸워야 할까요? 만약 주몽의 장기인 활쏘기를 해야한다면 그 칼은 도대체 어디에 둬야 할까요? 무예사 고증의 문제는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 위의 그림은 우즈베키스칸 사마르칸트에 있는 궁전벽화 중 고구려 사신의 복원도입니다. 물론 주변에는 고구려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신들도 칼을 패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들고 다니다가 적이 나타나면 그 칼집은 어디다 두시렵니까.
ⓒ 푸른깨비 최형국
역사적으로 고구려 무기를 살펴볼 때 칼집에 고리가 달려 허리에 패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중국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검패용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환도라는 이름으로 그 검패용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연출가들이 TV에서 보이는 한 장면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무기의 역사와 몸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이러한 부분은 쉽게 고쳐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위의 세 사극은 물론이고 이전의 조선시대 사극에서도 여전히 그 부분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으니, 그들의 무지를 탓해야 할지 아니면 소위 '폼나게' 한번 연출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발 칼로 말 궁둥이를 때리지 마세요

▲ <주몽>에서는 아예 칼로 말의 궁둥이를 때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말이라는 동물은 겁이 많은 동물이라서 무기와 채찍을 구별하여 사용하여야만 길들일 수 있습니다. 기마자가 이 둘을 혼용하면 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 MBC <주몽>
심지어 <주몽>(MBC)에서는 손에 든 칼로 채찍처럼 말의 궁둥이를 때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병들에게 자신이 타는 전마(戰馬)는 곧 자신의 몸의 일부입니다. 또한 말이라는 동물은 원래 초식동물이라서 겁이 많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행동에 거의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전투용 말의 경우 특별히 전투상황에 맞게 번뜩이는 칼날과 여러 가지 함성소리 및 화포소리에 놀라지 않게 미리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무기저항훈련을 받게 되는데 말을 탄 사람이 무기를 휘둘러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훈련입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은 기마자의 무기가 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각인입니다. 그런데 손에 든 자신의 칼로 말을 때리면 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만약 칼집이 부러져 칼날로 말을 때린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요? 아마도 즉각적으로 싫다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만약 그럴 경우 어떻게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전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대의 경우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막대식 채찍이 아닌 가죽끈 방식의 채찍을 손목에 걸어 사용하였습니다.

말의 등자(등子)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 고구려 무덤 벽화에 등장하는 가죽 채찍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왼쪽은 하단의 사진은 필자의 기사 훈련 모습입니다. 둘 다 활을 당기는 손목에 가죽채찍을 하고 있습니다. 무기와 채찍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말과 하나가 되어 전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말이 주인을 믿지 못하고 주인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그 순간 바로 낙마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 등자의 발명은 기병들에게 혁명적인 도구의 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료와 고구려 무덤벽화를 살펴 볼 때 등자의 유입시기는 약 4세기 이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배경 그림인 덕흥리 벽화에서는 등자가 보이지 않으며 이후 무용총이나 장천1호분 사냥도에 비로소 등자가 나타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말을 오르기 위하여 발을 걸치는 등자(발디딤쇠)는 말을 탄 사람의 안정을 위해 발을 올려 놓는 곳으로 기병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도구의 발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자가 없었던 시기에는 중장갑기병(무거운 철갑기병)보다는 경장갑기병(가벼운 방호구를 걸친 기병)이 주로 전장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중장갑기병의 경우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서 근접 공격시 낙마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경장갑 기병의 경우는 원거리에서 활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공격하고 빠지는 일종의 게릴라식의 전술을 구사하게 된 것입니다.

▲ <주몽>에 등장하는 개마기병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토군(玄兎郡)은 부속 현이 3개로 한(漢)나라 군현 중 낙랑군과 요동군에 비해 나약했으며 철기병을 거느릴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려면 우리 먼저 정확한 역사인식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 MBC <주몽>
물론 등자 발명이전에도 중장갑기병은 존재하였으나 뛰어난 기마술을 보유하지 않으면 어려웠습니다. 비로소 등자의 발명으로 중장갑 기병은 충격력을 이용한 강력한 힘을 얻게 되고, 말을 안정적으로 탈 수 있어서 중장갑 기병의 숫자 또한 대폭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기병만의 땅(등자)이 새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고구려 무덤벽화의 그림과 사료를 시기별로 정리해보면 고구려에 등자가 출현하게 된 것은 약 AD 4세기 이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보다 약 300백년 전에 활동을 한 주몽은 등자가 없이 말을 탔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몽>에서 보이는 한나라의 중장갑 철기군 또한 그 신빙성이 많이 의심스럽습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볼 때, 현토군(玄兎郡)은 부속 현이 3개로 한(漢)나라 군현 중 낙랑군과 요동군에 비해 나약했으며 철기병을 거느릴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고구려가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안정적으로 정복사업을 펼쳤던 시기부터 등자를 받아들이면서 고구려로부터 중장갑 개마기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궁을 사용할 때는 꼭 깍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 우리나라의 활은 고대부터 주변국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인식되었습니다. 그 강력한 활을 당기기 위해서는 깍지라는 보조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당기는 힘만큼 엄지 손가락의 표피가 충격을 받게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지금까지 기병과 관련된 무예사 고증의 오류점을 짚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늘 지적되는 문제인데, 활쏘기 방식의 문제를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맥궁을 비롯한 다양한 각궁(뿔로 만든 합성궁)을 사용하였습니다. 각궁의 특징은 활은 작은 대신 활의 세기는 강력해서 200-300m를 날릴 수 있는 강력한 활입니다.

그래서 활의 시위를 효과적으로 잡아당기기 위하여 엄지손가락에 깍지라는 보조기구를 사용하여 엄지걸이 방식으로 활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사극에서는 양궁에서 활을 쏘는 방식인 검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활을 쏘고 있습니다. 이는 엄격히 이야기하면 서양의 사법이며 전통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다행히 <주몽>에서는 엄지걸이 방식을 사용하였으나 그가 진정한 신궁(神弓)의 경지였기에 깍지가 없는 상태로 활을 쏴도 무방한지 의심스럽습니다. 실제로 깍지 없이 활을 쏘면 채 열 발을 쏘지 못하고 엄지손가락의 피부가 찢겨질 정도의 고통이 따릅니다. 이처럼 단순히 보여 주기식의 연출은 그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 <대조영>에서는 아직도 서양 방식의 검지와 중지를 이용한 활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양의 활쏘기 방식으로 우리나라는 엄지걸이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살피며 역사고증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 KBS <대조영>
심지어 <대조영>에서는 현재 보여주기 식의 짚단베기 만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삼각도를 가지고 연무대회에서 짚단 여러 개를 베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대조영> 9회 방송분) 실로 어이없는 연출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삼각도의 경우 칼날이 거의 면도날에 가까우며 실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전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현대식 커터칼의 개념입니다.

섬세한 역사적 고증이 역사 바로잡기의 핵심

역사에 대한 고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왜?' 그리고 '실제로 그 시대에 가능했을까?'라는 부분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을 실제 역사자료에 맞춰서 고증하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고대사 연구가 많이 부족하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그것이 역사의 진실인양 받아들일 수 있기에 늘 고증이라는 부분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 설문조사 기관에서 사극과 관련하여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사극드라마를 통해 역사 학습이 된다' 고 답했을 정도로 사극의 역사 교육적 가치는 지대합니다.

만약 칼을 손에 들고 말을 탔다가 활을 쏘려 한다면 그 칼은 어디다가 둬야 할까요? 그리고 칼집에서 칼을 뽑은 후 칼집은 어디다가 둘까요? 혹시 전쟁이 끝난 후 자기 검집을 찾으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역사의 고증, 특히 몸의 역사에 해당하는 무예사의 경우는 더욱 치밀한 고증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그 부분을 보다 섬세한 시각으로 고증에 맞게 그려낸다면 중국의 <동북공정> 또한 우리가 올곧게 넘어 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최형국 기자는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입니다.


2006-11-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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