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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조선 기병은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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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18:40:53, 8277회 읽음)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 - 오마이뉴스
조선 기병들은 왜 사라졌을까?
[연재] 한국의 마(馬)문화 이야기 <10>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쌍영총에서 발견된 기마무인도의 모습입니다. 궁대와 시복 즉, 동개 일습을 패용한 당당한 고구려의 기마무인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말 위에서 활을 쏠 때에는 기본장비를 반드시 갖추고 움직여야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우리나라의 마상무예는 주로 기사(騎射) 중심이었습니다. 기사(騎射)라는 것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우리나라 마상무예의 기본입니다. 삼국시대에도 철갑을 두른 중장기병은 주로 창이나 봉을 비롯한 긴 무기를 들고 적을 맞아 싸웠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죽갑옷과 같이 가벼운 무장을 한 경장기병은 궁시와 검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적의 진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활로 무장한 경장기병은 싸움의 승기를 잡는 역할을 맡아 전선의 선봉에서 적의 혼을 빼앗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활과 화살이 각 상황에 따라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마상무예를 능숙히 연마한 사람은 무과시험을 거쳐 관료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관료선출의 가장 큰 특징은 무과시험을 실시한 것이었습니다. 고려시대의 경우 무과시험이 아닐지라도 무관의 세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무예에 능숙한 사람은 쉽게 관료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초기의 사병혁파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무관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무예를 익혀 시험을 보는 무과시험조차도 국가에서 통제하기에 이릅니다.

▲ 17세기 함경도 지역에서 열린 무과 시험의 광경을 담은 북색선은도(北塞宣恩圖) 그림의 일부인데, 무과응시자가 말을 타고 달리며 짚 인형에 활을 쏘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달리는 말에서 활을 쏘는 것을 기사(騎射)하며, 특히 좀 더 효과적인 훈련을 위하여 짚 인형을 쏠 때는 기추(騎芻)라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물론 문(文)과 무(武)를 새의 양 날개처럼 생각하고 그것의 대칭적인 발전으로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지만 무관 또한 사사로이 관직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무과시험을 통해서 국가의 통제를 받게 한 것입니다.

조선 초기에 정착된 법전인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무과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예(武藝)와 강서(講書) 두 가지를 시험봤는데 이는 무관이라 할지라도 병법서와 유교경전을 함께 읽어 문무를 고루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체적인 무예시험 종목으로는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일명 애기살),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 등 총 6가지로 궁술(弓術)과 기마술(騎馬術)이 핵심이었는데, 특히 이 두 가지의 결합인 기사(騎射)는 합격 여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서의 경우 사서오경(四書五經) 가운데 1권, 무경칠서(武經七書) 가운데 1권, 병요, 통감, 무경, 소학 가운데 1권, 그리고 경국대전으로 시험을 보았습니다.

▲ 1777년 장지항(張志恒)이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병학통 중 마군(馬兵)들의 진법인 마병 학익진 그림입니다. 이처럼 학이 날개를 펴듯이 도열한 후 좌군이 먼저 공격하고 우군, 중군의 순서로 돌진합니다. 병학통은 무예도보통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짝을 이루는데, 단체진법 훈련을 위하여 편찬된 책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특히 조선 초기 군사전략의 핵심은 선진후기(先陣後技)로 일단 상대방과 맞서 진을 짠 뒤 대규모 부대 진법을 운용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진법에서 기마병(騎馬兵)은 진의 최선봉에서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리며 활을 쏘고 창을 휘둘러 적을 제압하는 선봉부대로 위상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과도하게 마상무예와 궁시 위주로 무과를 운용해 검이나 맨손무예 등 개인의 단병접전(短兵接戰) 기예들은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임진년에 왜군들에게 조선반도가 철저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여러 사료를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왜군의 조총이 아니라 날카롭게 날이 선 일본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조총은 조선의 활로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칼을 비롯한 근접전투에서는 그들을 막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명나라의 구원군 또한 근접전투에 막강한 위력을 보여 줬던 척계광의 남병(南兵)들이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큰 구실을 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검과 창 등 보병용 단병접전 전투기예와 조총과 총통 등의 화약무기 사용기술이 시험과목으로 추가되기에 이릅니다. 이때 시험과목으로 추가된 단병접전 기예를 살펴보면 장창, 당파(삼지창), 용검(쌍수도) 등이 있으며 정조시대 때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더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 1790년 장용영의 초관이었던 백동수와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 박제가 등이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기예 중 마상편곤의 그림입니다. 조선시대의 기병의 필수 무기로 불릴 만큼 마상편곤은 위력적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임진왜란에 이어 조선은 병자호란을 맞아 커다란 시련을 맞게 됩니다. 이때 청나라의 주력부대는 선봉장 용골대(龍骨大)와 마부태(馬夫太)로 청북방어사 임경업 장군이 지키고 있던 의주성과 백마산성을 그냥 지나치고 도성을 향해 진격해 왔습니다.

물론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을 미리 예견하고 김자점을 도원수로 삼아서 서북쪽에 전통방어 전략인 산성방어 전략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군은 조선의 이러한 산성방어전을 일체 외면한 채 곧바로 도성으로 진격하여 압록강을 넘은 지 14일 만에 도성 외곽까지 진격합니다.

청나라 군대가 이렇게 빨리 도성 외곽에 이른 것은 활과 칼로 무장한 경장기병부대로 구성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조는 뒤늦게 급보를 접하고 급히 강화도로 피난을 서둘렀으나 이미 통로가 점령된 것을 알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약 45일간의 수성전을 감행하였으나 청군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포공격으로 인해 조선의 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청나라에 끌려가 오랫동안의 볼모생활을 했던 효종이 즉위하면서 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품고 그 설욕전을 감행하기 위하여 소위 말하는 북벌(北伐)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바로 뛰어난 기병 양성을 통해 그들의 강한 고리를 끊어 낸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벌은 효종이 1659년 5월 41세로 단명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효종시대에 쌓아놓은 업적과 다양한 군 체제 개편에서 기병은 지속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조시대에 이르러 진법서로서는 <병학통>(兵學通)과 개인 훈련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무예24기가 보급되면서 기병은 확고한 위치를 담당하게 됩니다.

특히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마상무예는 기창,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등 여섯 가지인데, 여기에서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는 제외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사(騎射)의 경우 굳이 훈련서에 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시에는 누구나 수련했던 보편적 기예였기에 무예24기에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마상무예의 경우에도 반드시 환도와 궁대 시복을 포함한 마상용 궁시일습인 동개를 함께 패용하고 수련했기에 정조시대 당시만 해도 조선기병은 계속 기사훈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005년 10월 수원 화성에서 펼쳐진 조선시대 야간군사 훈련 야조(夜操) 재현때 펼쳐진 마상무예단의 마상편곤 위력시범입니다. 적진을 신속하게 돌파하여 적의 머리를 치고 빠지는 것이 마상편곤의 핵심기술입니다. 시연자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 최형국 단장
ⓒ 푸른깨비 최형국
이후 기사(騎射)를 비롯한 마상무예가 전장에서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화약무기의 발달입니다. 물론 화약무기는 조선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다연발 총 즉, 재장전의 시간이 혁명적으로 진보되면서 기병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기병이 구사했던, 말을 타고 맹렬히 돌격하면서 활을 쏘는 것을 비롯한 다양한 마상무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근래에 이르러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마상무예를 조금씩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나, 낙마의 위험성과 기예 단절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2005-11-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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