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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사 연구] 화성의 군사제도

 이름 : 

(2009-02-13 15:33:07, 5695회 읽음)

<화성의 군사제도>

                                                                                    최형국(무예24기연구소장)

들어가며...

화성의 군사제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장용영(壯勇營)이라는 정조의 친위군영이다. 특히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에는 장용내영(壯勇內營)을 그리고 화성에는 장용외영(壯勇外營)을 설치하여 한양을 안팎으로 보호하는 특수부대을 운용한 것이다. 그런데 화성에 주둔한 장용영의 탄생과 완성 그리고 혁파 과정을 살펴보면 화성과 장용영이라는 군영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특히 정조는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문(文)과 무(武)에 균형적인 발전을 모색하였데, 문으로는 규장각을 그리고 무로는 장용영을 내세워 조선의 부흥을 꿈꿨다. 정조의 치세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만든 조선최고의 정예부대 ‘장용영(壯勇營)’은 요즘의 특수부대에 못지않은 실력으로 왕을 호위했기에 그들에 얽힌 이야기 또한 당대를 이해하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장용영은 ‘정조의 정조를 위한 정조에 의한’ 국왕 친위 부대였으며, 더 나아가 정조시대 민생 개혁의 의지를 세울 수 있게 했던 최강의 군사조직이었다.

1) 화성(華城)을 지키는 특수부대, 장용영(壯勇營)의 탄생 배경


2) 화성(華城)의 방어 체계와 장용영 군사의 배치

  
3) 장용영의 군사 훈련


4)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 그리고 장용영의 혁파.


** [별첨 1] [비변사가 아뢴 장용 외영의 군제에 관한 절목]

정조 17년 계축(1793,10월 신사)        

비변사가 장용 외영(壯勇外營)의 군제(軍制)에 관한 절목(節目)을 아뢰었다.

【보군(步軍)을 바로잡는 데 대한 절목. 1. 본부(本府)가 방영(防營)일 때는 보군의 정원 총수가 26초(哨)였는데 정원수가 많아서 구차스럽게 충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본부가 장용영의 외영으로 승격되어 부 전체의 군사를 모두 묶어서 편성하였으니 군제를 반드시 정밀하고 알차게 하기를 힘쓰며 군량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조달이 된 뒤라야 군호(軍戶)와 군보(軍保)가 서로 도와서 병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26초 가운데서 근본이 확실하고 체력이 건장한 양정(良丁)으로 13초를 뽑아 부대를 편성하고, 13초는 보군(保軍)으로 강등하여 쌀을 거두어 군사를 기르게 하고 정군(正軍)의 자리가 비게 되면 차례대로 승급시켜 채우되 경영(京營)의 대년군(待年軍)의 예와 똑같이 한다. 그러나 다만 지금은 양정을 확보하기가 극히 어려워서 보군을 양정으로 채우면 7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 6초는 부득이 사천(私賤)으로 우선 숫자를 메우되 이는 3년을 기한하여 양정으로 바꾸어서 13초의 수를 맞추게 한다. 1. 13초를 이미 3사(司)의 편제로 정하였으니 좌사·중사·우사로 그 사의 이름을 정하고 전사와 후사는 각각 5초를, 중사는 좌초·중초·우초의 3초로 마련한다. 1. 군수품을 실어 나르는 복마군(卜馬軍)은 애당초 기병과 보군에 분배하지 않고 각 초에서 혼동하여 사역을 시키므로 자못 일정한 규정이 없었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보군 13초의 매 초마다 7필의 말을 마련하여 소속시킨다. 1. 장령(將領) 중 천총(千摠)의 직임은 별로 긴요하지 않기에 내영(內營)에서도 설치하지 않았으니 외영도 내영의 예에 따라 설치하지 않는다. 3사(司)의 파총(把摠)은 경내에서 경력이 있는 당상 무관으로 차출하고, 각초(各哨)의 초관(哨官)은 일곱 자리는 수문장(守門將)·부장(部將)으로 추천받은 자를 임명하고 여섯 자리는 편제를 정하되 선전관·수문장·부장으로 추천받은 사람 중에서 전직 조관(朝官)으로 참상(參上)·참하(參下)와 출신(出身)을 통틀어 차출한다. 추천받은 출신을 이미 별군관(別軍官)으로 편성하였으니 초관을 분배하여 추천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또 별군관은 군총(軍摠)과는 달리 겸임에 구애받지 않는다. 1. 본부는 원래 외도감(外都監)이기 때문에 군사들 복색도 훈련 도감의 예를 모방하여 전건(戰巾)과 홑동달이[單挾袖], 사방 색깔에 맞춘 더그레[號衣]를 갖추어 간편하고 비용을 줄이는 방도로 하고, 서울 군영의 예에 따라 스스로 마련하게 한다. 군기인 조총(鳥銃)·환도(環刀)·남날개[南飛箇]·화승(火繩)·화약·탄환 등의 물품은 본부의 군기소(軍器所)에 있는 것을 나누어주며, 역시 내영(內營)의 단총수(單銃手)에 대한 규정에 따라 기대장(旗隊長)과 사수(射手)의 활과 화살도 자체 마련하지 말도록 한다. 1. 보군(保軍)의 신역(身役)은 양인(良人)이면 쌀 6두나 돈 2냥씩을, 종이면 쌀 3두나 돈 1냥씩을 외영(外營)에서 편리한 대로 받아들인다. 1. 해마다 원(園)에 거둥할 때에는 몇개의 사(司)와 몇개의 초(哨)가 고을 경계에 모여 대기하였다가 어가(御駕)를 맞이하여 따르며, 읍과 원소(園所)의 역참에서 빙 둘러서서 호위하는 등의 절차는 유수(留守)가 그 날짜 전에 분부를 받아 거행하도록 한다. 보군의 유방(留防)에 대한 절목. 1. 이미 외영을 설치하였고 또 군제를 정하였으니 이제 이 보군도 내영의 향군(鄕軍)들과 함께 번갈아 번을 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설치한 초기 단계라서 갑자기 의논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해마다 동짓달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우선 행궁(行宮) 방어에 임하게 하여 번갈아 번을 서는 폭으로 치고 또 유방할 때는 날마다 무예를 연마하여 성취함이 있도록 한다. 1. 13초의 군사를 5번(番)으로 나누어 편성하고 번드는 차례는 15일로 기한을 정한다. 동짓달 16일부터 전사(前司)를 시작으로 첫 차례는 3개 초가 하고 둘째 차례는 2개 초가 번을 서며, 다른 사(司)도 이런 식으로 교대한다. 중사는 3개 초로 되어 있으므로 두 차례로 나눌 필요가 없고 사 전체가 번을 선다. 1. 번을 들 때는 해당 사의 파총과 각 초의 초관이 군사를 통솔한다. 군영을 아직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번드는 장소는 편의에 따라 이동할 것이다. 파총은 평상시 장령(將領)이 입직(入直)하던 곳에서 입직하고 초관은 각각 자신의 군사들이 번을 든 곳에 배치되어 입직하면서 통솔하도록 한다. 지구관 1명과 기패관(旗牌官) 2명은 반드시 사리에 밝은 사람에게 맡겨 함께 지휘 감독하게 한다. 1. 자체 훈련은 날마다 실시하되 첫 날과 마지막 날은 훈련장에서 하는 규정과 똑같이 연습하고 중간 날에는 18가지 무예를 《무예도보(武藝圖譜)》에 의거하여 가르치고 시험을 보인다. 번을 든 지 제 11일이 되는 날에는 활쏘기와 화포쏘기의 시험을 보이고 약간의 시상을 실시한다. 1. 자체 훈련할 때나 무예를 시험할 때 교사(敎士)가 없을 수 없으므로 번드는 초는 각초마다 진법 교사(陣法敎士) 1명과 기예 교사(技藝敎士) 1명을 선정하여 전일하게 가르치도록 한다. 1. 번이 교체할 때마다 상번(上番)하는 군사와 하번(下番)하는 군사는 같은 사의 편제를 이뤄야 되므로 반드시 새 번과 묵은 번이 합동 훈련을 하여 사의 단위로 하는 훈련법을 알도록 한다. 중사(中司) 3개 초는 단독으로 번을 서므로 하번하기 하루 전 합동 훈련 조례에 따라 전체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1. 양인 군보 8백 40명이 각각 쌀 6말, 천인 군보 7백 20명이 각각 쌀 3말을 내는데 쌀을 맡아 거두는 사람 몫을 제하고도 실제 거두는 쌀이 4백 68섬이고, 자기 집에 있는 군관 1백 47명과 금군의 군포를 무는 군관 1백 2명이 각각 쌀 6말을 내는데 쌀을 맡아 거두는 사람 몫을 제하고도 실제 거두는 쌀이 97섬 3말이어서 쌀이 도합 5백 65섬 2말이다. 이 중에서 번든 군사에게 각종 급료로 지급하는 쌀과 잡비로 쓰는 쌀 3백 73섬 11말을 제하고 나면 남는 쌀이 1백 91섬 7말이 된다. 이것은 본부(本府)에 저장해두고 필요한 데 쓰도록 한다. 친군위(親軍衛)의 유방에 관한 절목. 1. 군제의 정원을 줄여서 골라 뽑은 것은 정예한 군사를 편성하기 위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기예를 연습하는 일이 가장 요긴한 업무이다. 좌열과 우열로 번을 나누고 외영(外營)에 주둔 근무하면서 한편으로는 행궁(行宮)을 호위하고 한편으로는 날마다 기예를 익혀야 된다. 보병의 근무기간이 동짓달·섣달·정월 이 석달이므로 기병과 보병이 동시에 번을 서는 것은 서로 불편한 점이 있을 듯하다. 반드시 봄·가을 농한기에 열을 나누어 번을 정하되 2월에는 좌열이 3개 번으로 나누어 매번이 10일간씩 34명이 교대하여 근무하고, 10월에는 우열이 좌열의 예와 같이 근무한다. 그리고 번을 들 때는 전진 후퇴의 동작을 겸해 익혀서 기필코 기예를 익힌 효과가 있도록 한다. 1. 부대가 편성된 날짜가 얼마 안 되어 마상 기예(馬上技藝)의 기초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매 열(列)의 장교 가운데서 각종 기예에 익숙한 사람을 교관으로 정하여 가르치고 완전히 익히도록 한다. 1. 이번에 줄인 마보(馬保) 4백 44명 중에 쌀을 맡아 거두는 사람 8명을 제하면 실제 거두는 쌀이 1백 74섬 6말이고, 물자 수송 군사를 줄인 1백 명 중에 쌀을 맡아 거두는 사람 2명을 제하면 실제 거두는 쌀이 39섬 3말이며, 전에 마보를 줄인 2백 4명 중에 쌀을 맡아 거두는 사람 4명을 제하면 실제 거두는 쌀이 80섬이므로 이를 도합하면 2백 93섬 9말이 된다. 장령들 급료로 지급할 쌀과 콩 34섬 12말과, 친군위가 유방할 때 급료로 지급할 쌀과 말먹이 76섬 8말과, 기수(旗手)·원역(員役)의 갖가지 급료로 지급할 80섬 9말을 제하면 남아 있는 쌀은 1백 1섬 10말이 되는데, 이는 외영에 저장해두고 각종 필요한 비용에 대비한다. 친군위의 도시(都試)에 관한 절목. 1. 본부의 마병은 도시가 있고 관무재(觀武才)가 있어서 권장하는 방도가 원래 잘 서있지만 지금 군제를 개편하는 때를 당하여 격려하고 성취시키는 방도를 더욱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봄·가을 두 차례 보이는 도시는 송도와 강화도에서 실시하는 예에 따라 시행하며 규정도 송도의 예를 따른다. 철전(鐵箭)은 1백 보 밖에서 3시(矢)를, 유엽전(柳葉箭)은 1순(巡)에 5시를, 편전(片箭)은 1순에 3시를, 기추(騎蒭)는 한 차례에 5시를, 편추(鞭蒭)는 한 차례에 여섯 번 명중시키며, 조총(鳥銃)은 1순에 3방을 명중시키면 합격자로 한다. 1. 좌열과 우열에서 장원을 차지한 사람과 유엽전·편전·기추에서 전부 맞힌 사람은 신역(身役)과 성명 그리고 기예에서 얻은 점수를 기록하여 계문(啓聞)한다. 좌열의 친군위로서 첫번째 차례에 장원하였거나 전부 맞힌 사람은 가선(嘉善)이면 위장(衛將)에 제수하고, 절충(折衝)과 추천을 받지 못한 출신[無薦出身]이면 모두 가자(加資)하며, 장교로서 전함(前啣)이 한량(閑良)이면 곧장 전시(殿試)에 응시한다. 두번째 차례에 장원하였거나 전부 맞힌 사람은 가선이건 당상이건 논할 것 없이 변장(邊將)에 제수한다. 우열의 친군위 한량으로서 장원하였거나 전부 맞힌 사람은 좌열의 예에 따라 곧장 전시에 응시하되 모두 순서대로 구별하고 기록해서 계문하고 해조의 품처(稟處)를 기다린다. 1. 좌열 가운데서 2등이나 3등을 한 사람은 창감(倉監)이나 고감(庫監)으로 차서에 따라 임명하고 어가(御駕)를 수행하는 임무는 그대로 가진다. 우열 가운데서 2등을 한 사람은 곧장 회시(會試)에 응시하고 3등을 한 사람은 본부가 보관하고 있는 쌀로 시상하며 그 일체를 계본을 작성하여 아뢴다. 1. 장원한 사람으로 위장(衛將)에 제수된 자는 금위영(禁衛營)과 어영청(御營廳) 두 군영에 딸린 기사(騎士)의 예에 따라 전직을 그대로 겸임하게 하며, 곧장 전시에 응시한 사람은 발표를 기다려 별군관(別軍官)으로 전직시켜서 벼슬길을 터준다. 1. 도시의 시관(試官)은 유수(留守)가 주관하고 중군(中軍)과 종사관(從事官)이 참시(參試)하는데, 복장은 융복(戎服)을 입고 거행한다. 유수영(留守營)의 별군관에 관한 절목. 1. 별효사(別驍士)를 창설했을 때 그 선발을 신중하게 하고 그 명칭을 좋게 했던 것은 경내의 무사들이 모두 격려되고 고무되는 효과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출입이 무상하여 대오(隊伍)가 빌 정도로 되었고 한갓 도시와 관무재를 보일 때 서울과 지방 한량들이 요행수로 과거나 차지하려고 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생각하면 군사 행정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지금 군제를 개편하는 이때 당연히 폐단을 바로잡고 실효있는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추천을 받아 뽑힌 한량들이 모두 친군위의 우열에 소속되었기에 무과에 급제한 많은 무사들이 홍패(紅牌)를 안고서 억울하다는 한탄을 할 것이다. 별효사(別驍士)의 명칭을 별군관(別軍官)으로 고치고 그 곳에 원래 살던 사람으로서 무과에 급제한 자 중 사대부 출신으로 선전관 추천을 받은 사람과 중인(中人)·서출(庶出)로 부장(部將)이나 수문장(守門將) 추천을 받은 사람 및 장용군(壯勇軍) 출신을 통틀어 임명 보충하되 말을 바치고 소속에 들게 한다. 그러나 2백 명 정원은 너무 많으므로 그 절반을 줄이고 1백 명으로 좌열과 우열을 편성하여 유수영(留守營)에 직속시켜 뒤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게 한다. 1. 경내의 무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이미 군관에 소속되어 있으면 특별히 권장 발탁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초사(初仕) 한 자리는 좌열이나 우열에 떼어주고 5월과 동짓달에 도시를 실시하여 매 기간에 장원한 각 한 사람을 합격한 화살 수에 따라 기록하고 계문(啓聞)하여 매 도목 정사 때 수용의 자료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침체해 있는 인사를 진작시키고 한편으로는 무예를 강습시켜, 경내 무사들이 출세하는 길이 이 길이 아니고는 없게 하여 앞날의 기피하는 습관을 막는다. 1. 무과 출신이 적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우선 자리를 남겨두고, 혹 출신한 사람이 많고 자리는 적어 정원이 넘치면 다시 품지(稟旨)하여 제도를 정한다. 1. 우열 친군위는 한량들이 과거를 차지하는 길이 되고 좌열과 우열의 별군관은 출신들이 벼슬에 나가는 계단이 되고 있다. 선전관 추천이건 부장·수문장 추천이건 논할 것 없이 무과에 급제하고 나서 추천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면 유수영에서 취재(取才)한 다음 소속시키는데, 이미 유수영 취재를 거쳤으면 병조의 장귀천(將鬼薦) 취재에 이중으로 응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수영에서 시취(試取)한 뒤에 그에 관한 기록을 작성하여 병조에 보내고 그것을 근거 자료로 삼게 하는데, 역시 금군(禁軍)의 예에 따라 반드시 6개월 기한을 마친 뒤에 도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여 비로소 벼슬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출신 가운데서 만일 금군으로서 어가(御駕)를 수행하여 이미 6개월을 마친 사람은 달수에 구애받지 않는다. 1. 본영에 소속시키는 시취 규정은 출신자를 장귀천하는 규정에 따라 육냥전(六兩箭)을 90보 거리에서 3발을 쏘아 맞히고, 유엽전(柳葉箭)을 1순에 5발을 쏘아 2발을 명중시키고, 편전(片箭)을 1순에 3발을 쏴서 1발을 명중시키며, 기추는 한 차례에 5발을 쏴서 1발을 명중시키며, 병서(兵書)는 조통(粗通) 이상을 하여 도합 5기(技)에서 3기에 합격한 자를 뽑는다. 출신자로써 추천을 거치지 않고 취재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이 규정을 준용하고 이미 취재를 거친 사람은 2기에 합격한 것으로 간주한다. 1. 이미 군관으로 명칭을 고쳐 대열을 만들었고 또 마군(馬軍)의 편제에도 들지 않았으므로 별도로 장령(將領)을 둘 필요는 없고 서울에 있는 군영의 별장(別將)이 권무 병방(權務兵房)을 겸임하는 예에 따라 친군위의 별장이 병방 직무를 겸임하게 한다. 그리고 장무 군관(掌務軍官)은 풍채가 좋고 힘이 있고 근면하고 재간이 있어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으로 하되 좌열과 우열에 각각 두 사람씩을 정하여 병방과 함께 전담하여 일을 처리하게 한다. 새로 소속시킬 때의 취재는 유수가 반드시 직접 실시하여 체모를 높이고, 합격한 무리들은 유수가 명령을 전달하고 임명한 다음 도안(都案)을 작성하여 한 통은 내영(內營)에 올려보내고 한 통은 유수영에 비치한다. 1. 사회(射會) 규정은, 유엽전은 5순, 기추는 3차(次), 편곤(鞭棍)은 1차, 그리고 별기(別技) 가운데서 1기를 1차 보는 것으로 한다. 그러나 여름의 6·7월 두 달과 겨울의 동지·섣달 두 달은 말 위에서 하는 기예는 제외한다. 1. 도시 규정은 별효사(別驍士)를 시취할 때처럼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실려 있는 대로, 철전(鐵箭)은 1백 보 거리에서 3시를, 유엽전은 1순에 5시를, 편전은 1순에 3시를, 기추는 한 차례에 5시를, 편추는 한 차례를 실시하여 시취한다. 1. 도시를 보이는 날짜는 기간 전에 날을 잡아 계문(啓聞)하며, 시관은 유수를 주시관으로 하고 중군과 종사관을 참시관으로 하며 융복을 입고 시행한다. 1. 원(園) 행차 때 어가가 머무는 일, 어가를 맞고 기다리는 일은 유수가 임시해서 분부를 받들어 거행한다.】

상이 내영 외영의 모든 절목을 모두 인쇄하여 각 군영과 다섯 곳의 사고(史庫)에 나누어 간수하고 제신들에게도 반포하도록 명하였다.

** 상기 글은 (사) 화성연구회 수업관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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