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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기린협으로 떠나는 백동수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마음

 이름 : 

(2011-07-25 19:54:26, 6243회 읽음)

 파일 1 : 20090728001825_0.jpg (10.1 KB, 125회 전송됨)


[사진-박지원 초상]

- 기린협으로 떠나는 백동수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마음

1771년, 백동수는 나이 28살에 식년무과에 당당히 합격했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상의 한계와 숙종대 이후부터 지독하게 퍼진 만과(萬科)의 휴유증으로 합격증인 홍패를 부여잡고 한서린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 해 후 그는 가난을 이유로 서울의 삶을 깨끗이 정리하고 송아지 한 마리를 등에 걸쳐 메고 식솔들과 함께 강원도 두메산골 기린협으로 떠납니다.

먼 길 떠나는 백동수를 바라보는 그의 벗들의 마음 또한 과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백동수에게 연암 박지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쓰며 벗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문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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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숙(白永叔)을 기린협(麒麟峽)으로 보내며 주는 서(序)


백영숙(永叔 백동수(白東修))은 장수 집안의 후손이다. 그의 선조에는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도 있어 지금까지도 사대부들이 서글퍼하고 있다.

백영숙은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능하고 전고(典故)에도 숙달되어 있다. 젊어서는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아 무과(武科)에 급제도 했다. 비록 시운을 만나지 못해 영달하지는 못했지만 군주에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그 뜻은 충분히 선조의 공렬(功烈)을 계승할 만하여 사대부에게 부끄럽지가 않다.

아, 그런데 백영숙이 어째서 식구를 몽땅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야 하는가?

백영숙이 전에 나를 위해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에 살 곳을 잡아 준 적이 있다. 산은 깊고 길은 험난해 종일을 가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둘이서 갈대밭에 말을 세우고 서서 채찍으로 높은 언덕배기를 구획지으며,


“저기에다 뽕을 심어 울타리를 세울 만하군. 갈대를 불사르고 밭을 일구면 한 해에 조 천 석은 걷을 걸세.”

라고 말하고는 시험 삼아 부시를 쳐서 바람을 따라 불을 놓아 보았다. 꿩이 놀라 푸드득 날아오르고 작은 노루가 우리 앞에 튀어나와 냅다 달아났다. 팔을 걷어붙이고 뒤쫓아 가다가 시냇물에 막혀 돌아와 마주 보고 웃으며,


“백년도 못 되는 인생을 어찌 답답하게 목석과 함께 살며 조 농사나 지어 먹고 꿩ㆍ토끼 사냥이나 하는 자로 지내겠는가.” 말을 세우고부터 여기까지는 모두 백영숙의 일을 기술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러던 백영숙이 이제 기린협(麒麟峽 강원도(江原道)에 있음)에서 살려고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들어가니, 길러서 밭을 갈겠다는 것이다. 그 고장엔 소금과 메주도 없고 산아가위나 돌배로 장을 담가 먹어야 한다. 그 험하고 궁벽하기가 전날의 연암협에 어찌 비교나 되겠는가.

그런데 나 자신도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면서 아직 거취(去就)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백영숙이 떠나가는 것을 감히 만류하겠는가. 나는 그의 결심을 장하게 여길지언정 그의 곤궁함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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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집 제1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재주와 실력은 있으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던 그때...

연암 박지원 또한 그런 신분상의 한계를 이유로 관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문장 중 “나는 그의 결심을 장하게 여길지언정 그의 곤궁함을 슬퍼하지 않는다.” 라는 부분 보면 박지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 많은 서울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기린협으로 향하는 그에게 연암은 붙잡을 수도 없고, 함께 따라 갈수도 없는 본인의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가난을 슬퍼하지 않고, 떠남을 장하게 여긴다....(안타깝고 안타까운 벗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런 가슴 아픈 세월이 있었기에,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시대에 백동수는 장용영의 초관이 되어 조선무예 진수를 군영에 보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진실성과 재주를 정조는 제대로 읽어낸 것이지요. 언제든지 때를 알고 기다리면 기회를 온답니다.


-(사)무예24기보존회 무예24기연구소 최형국-

http://muye24ki.com / bluekb@hanmail.net


*요즘 sbs드라마 <무사 백동수> 홈페이지에서 '백동수 따라잡기' 라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http://tv.sbs.co.kr/baekdong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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