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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정조, 슬픔을 개혁으로 풀어낸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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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15:14:53, 535회 읽음)

 파일 1 : 화서문.jpg (1.52 MB, 1회 전송됨)

 링크 1 : http://news.suwon.go.kr/main/section/view?idx=1031000


[사진] 화성의 핵심 방어시설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불리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야경이다. 정조는 슬픔을 딛고 일어기 위해 화성을 쌓았고, 그곳에 백성들과 함께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칼럼] 정조, 슬픔을 개혁으로 풀어낸 군주

                                                        글 : 최형국/역사학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정조의 삶은 비록 국왕이라는 특수한 존재였지만, 일반적인 우리네 삶에 비춰봤을 때 극도의 슬픔을 마주하며 일생을 보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국민이 알고 있듯이,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스물여덟이라는 피 끓는 청춘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였다. 그런 광경을 어린 정조는 11살,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 겪어야 했고, 이후 26살에 국왕에 오르기까지 말 그대로 피 말리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아비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으니, 그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임오화변(壬午禍變), 1762년 임오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어린 정조 아니 국왕 정조의 모든 것을 바꾸기에 충분한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슬픔이 정조에게 또 다시 닥쳤으니, 바로 1786년 병오년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이었다. 온갖 억압을 뚫고 국왕으로 즉위한지 10년이 되던 해에 그의 온 사랑을 차지했던 다섯 살의 문효세자와 후궁 의빈성씨가 그해에 이승을 떠났다. 

정조는 1762년 11살의 나이에 세손으로 혼례를 치렀다. 그해 2월 2일, 세손빈은 청풍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훗날 정조와 함께 합장된 ‘효의왕후’였다. 그런데 효의왕후는 정조보다 한 살이 어렸지만, 세자를 잉태하지 못하였다. 여러 사료를 볼 때, 화완옹주가 정조와 그의 아내였던 효의왕후 사이를 이간질한 것에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든 효의왕후는 1821년까지 생을 누려 69세에 정조가 누워있던 건릉에 함께 묻혔으니 가장 기억에 남는 정조의 왕비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1776년 정조가 국왕으로 즉위한 후 세손빈은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비는 그때 세자를 잉태하지 못했다. 당시 권력의 실권을 장악했던 홍국영은 1778년 그의 누이를 후궁으로 들여 가례를 거행하였지만 이듬해 채 1년도 안되어 죽었다. 이 여인이 ‘원빈’이었다. 세 번째 부인은 화빈윤씨였는데, 자식없이 몇 년이 못되어 정조의 곁을 떠났다.

그사이 화빈윤씨의 지밀나인이었던 소용성씨가 문효세자를 낳았다. 사극에서 정조의 마음을 가장 따스하게 품어주던 그 연인같던 여인이 ‘의빈(宜嬪)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의빈성씨는 1784년에는 옹주까지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두달이 못되어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나마 의빈성씨와 알토란같은 문효세자의 탄생은 정조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그러나 정조가 31살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세자가 5살에 홍역으로 사망했다. 불행은 늘 겹으로 온다는 말처럼 그해 9월 14일에 의빈성씨가 6개월된 아기를 임신한 상태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해가 1786년 병오년이었다.

만약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엄청난 좌절감에 빠져 극단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조는 그 모든 슬픔을 가슴에 쓸어 담고 세상과 마주하였다. 그해부터 생부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이장하는 마음을 굳게 품었다. 아버지의 묘소를 수원 화산에 옮기고 그곳에 새로운 방어공간이자 신도시인 화성(華城)을 건설하는 원대한 조선 개혁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정조의 다섯 번째 부인인 수빈 박씨와 1787년 2월 가례를 올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조선 제일의 명당으로 불렸던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긴 후 1790년 6월 18일 순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정조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슬프게 이별을 하였다. 그 연이은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꿈꿨기에 18세기 조선은 풍요로울 수 있었다. 가슴에 돋는 슬픔을 베어내고 조선을 개혁으로 이끈 군주, 정조의 마음은 지금도 수원 화성에 고이 남아 있다.

http://news.suwon.go.kr/main/section/view?idx=10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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