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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수원화성은 조선의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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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5 13:19:12, 302회 읽음)

 파일 1 : 134769458858313efd530db_gd800.jpg (164.3 KB, 0회 전송됨)

 링크 1 : http://news.suwon.go.kr/main/section/view?idx=1032748


<사진> 수원 화성의 서쪽 대문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성밖으로 광교산을 가리는 높은 건물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단순히 화성이라는 성곽 자체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광교산을 비롯한 자연지세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개발과 보존, 이 두 가지를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시기다.

[칼럼] 수원화성은 조선의 신도시

최형국/역사학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은 영문으로 'World Heritage Suwon Hwaseong Fortress'다.
그 이름처럼 수원 화성은 공격과 방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화성이라는 ‘성곽’을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수원 화성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돌로 둘러싼 성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인 조선의 신도시라는 부분에서 다시금 고민되어야 한다.

수원 화성의 건설을 명령한 조선의 22대 군주인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신읍치를 현재의 수원 화성이 건설된 곳으로 옮겼다. 이를 행정적으로 능숙하게 풀어가기 위해 이조, 병조, 공조의 판서와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당시 명판관으로 불렸던 서유방을 경기관찰사로, 삼도수군통제사와 좌포도대장, 총융사 등을 역임한 걸출한 무인인 조심태를 수원부사로 임명해 신도시 구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특히 경기도 광주땅이었던 일용면과 송동면 지역을 수원으로 이속시켜 수원이 관할하는 평평한 평야지역을 확대시켰다.
이를 통해 ‘화성’이라는 성곽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안정적으로 발달시켜 조선의 도성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제 2의 신도시로 수원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1789년에 수원에 신읍치 조성 공사를 마치고 백성들이 서서히 안정을 취해갈 때 팔달산 동쪽 기슭에 화성행궁을 건설해 신도시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화성행궁의 편액들이 말하듯, 정조는 수원을 제 2의 고향이자(신풍루-新豊樓) 상왕으로 물러난 후 노년을 보내며(노래당-老來堂, 미로한정-未老閒亭) 아들인 순조를 위한 새로운 정국 구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여타의 행궁보다 몇 배나 큰 규모인 576칸의 행궁이 건설된 것이다.

이후 수원화성을 쌓기 전인 1793년 1월 12일에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고 당시 명재상이자, 정조의 충신으로 잘 알려진 채제공이 초대 유수로 임명됐다. 당시 채제공은 좌의정을 역임했을 정도로 당시 행정의 달인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유수부 승격과 함께 드디어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화성행궁을 품는 형태로 전체 5.7km에 달하는 거대한 성곽을 2년 반만에 쌓아 올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수원 화성을 관통하는 핵심도로로 활용하고 있는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남북대로와 화성행궁과 창룡문이 이어지는 큰 길인‘십자로’를 넓게 조성해 물류가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도록 했다.

또 십자로를 중심으로 서울의 시전처럼 중심상권을 좌우로 길게 배치하고 그 뒤로는 민가를 만들어 백성들이 다양한 상업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길목을 뚫었다. 그래서 수원 화성이 완공된 후에는 성안과 성밖으로 주민들을 구분해 2개의 구역으로 관리했다. 그 2개의 구역인‘부(部)’에는 다시 ‘동성자내(東城字內)’, ‘서성자내(西城字內)’, ‘남성자내(南城字內)’,‘북성자내(北城字內)’로 균등하게 나눠 신도시의 발전의 기본 구상을 적용시켰다.

따라서 수원 화성은 단순히 성곽 자체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화성을 둘러 싸고 있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 모두 정조의 개혁정치를 수행하고자 했던 신도시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화성의 서쪽 밖에는 ‘서둔’이라는 둔전과 북쪽에도 만석거를 중심으로 둔전이 경작됐기에 화성 주변의 다양한 시설물과 삶터는 화성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으로 인해 화성 안은 높은 건물이 들어 설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화성의 밖은 아파트다 복합상업건물이다 해서 화성의 조망권을 해칠 만큼 높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올라가고 있다.

수원은 ‘정조의 도시’를 꿈꾸고 있다. 단순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이라는 성곽뿐만 아니라, 그 외곽지역까지 함께 안정적으로 보호해가지 않는다면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의 의미는 퇴색할지도 모른다. 세계 어디보다 역사와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도시인 수원은 우리들이 지켜 야하고 후세에 남겨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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