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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고구려 역사에서 오늘의 갈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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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14:37:30, 12회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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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수원시립공연단의 대하역사서사극 '고구려 묵시록'이 공연되었다. 극중 고구려와 당나라 군사의 전투장면은 무예24기시범단원들이 박진감 넘치는 무예시범으로 채웠다.

[칼럼] 고구려 역사에서 오늘의 갈 길 찾아야
글 : 최형국/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연출

지난 11월 30부터 12월 3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극장에서는 수원시립공연단의 대하역사서사극 '고구려 묵시록'이 공연되었다. 찬란한 고구려의 역사가 아닌 멸망해가는 고구려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한번쯤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역사이래로 모든 국가는 건국과 성장기를 시작으로 발전과 융성을 거쳐 쇠퇴와 멸망의 과정을 겪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의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시기라 기억되는 고구려의 경우도 700여년의 역사 속에서 흥망성쇠의 모습을 보여줬다. 기원전 1세기경 작은 공동체로 시작된 고구려는 연맹체의 단계를 거쳐 4세기말부터는 동북아시아 패권 국가인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6-7세기에는 중원의 통일제국인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기나긴 전쟁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지만, 668년 9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우리의 역사는 남북국시대라고 하여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승계한 발해와 남쪽으로는 통일신라가 자리잡은 형태로 변화하였다.

고구려 멸망의 배경에는 단순한 국제질서의 변화, 즉 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함께 고구려 내부의 권력다툼이 맞물려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사는 우리가 G2시대라는 거대한 국제적 파고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 멸망의 중심에는 막리지 연개소문이 있었다. 그는 고구려 정계의 핵심으로 642-644년까지 국왕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막리지'라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연개소문의 권력욕으로 인해 '대막리지'라는 보다 높고 안정적인 직위를 위하여 연개소문 일가의 권력독점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645년 당군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연개소문의 권력독점은 스스로 국왕을 바꿔버릴 정도로 강고해졌다.

그리고 666년 5월,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고구려 정계는 그의 아들인 남생 형제간의 권력 다툼으로 이어졌다. 권력의 빈자리는 권력이 크면 클수록 컸다. 결국 최고 집권자인 남생의 당나라 투항으로 고구려의 전투의지는 서서히 약화되었다. 특히 661년 남생이 막리지와 삼군대장군이라는 최고의 직위를 가지고 펼쳤던 압록강 방어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함으로써 후계자구도에 금이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그 동안 연씨일가의 독재에 숨죽여 있던 귀족세력들이 서로 패를 갈라 후계구도를 둘러싼 정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구려 멸망으로 이어졌다.

남생의 당 투항이후 지방 세력의 고구려 이탈이 가속화되었으며, 고구려의 백성들도 더 이상 전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마침내 668년 9월, 평양성에서 끝까지 항전하던 보장왕과 연남건이 당나라 군사들에 의해 사로잡힘으로써 고구려 700년의 역사는 그 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동북아시아의 절대강자로 불리며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서도 당차게 살아남았던 고구려의 멸망은 외부가 아닌 바로 내부의 권력다툼을 통해서 촉발되었다. 외부의 적을 한마음 한뜻으로 물리쳤던 고구려의 백성들은 내부의 권력싸움 속에서 마음이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 정세는 당시와 비교 해봐도 결코 만만치 않는 상황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의 현실, 그 엄혹한 현실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오늘날 우리가 고구려 멸망의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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