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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KBS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 고증 오류 -정조 호위 무관이 일본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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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12:55:00, 3023회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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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궤 8일간의 축제 KBS 공영 방송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심각한 무예사/군사사 고증 문제가 있다. 정녕 이 프로그램을 픽션 사극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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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호위무관은 사무라이 정조의 원행길 중 근밀 호위무관이 말을 타고 정조에게 비가 올 것 같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데 일본 사무라이처럼 일본도를 허리띠에 끼워 넣고 말을 타고 온다. 의궤에 등장하는 멋진 무관은 어디 두고 어설픈 일본 사무라이 모습이 정조의 호위무관으로 그려졌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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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호위 무관이 일본도를? ... 이러시면 안 됩니다
KBS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 심각한 고증 오류
13.10.27 20:24l최종 업데이트 13.10.28 08:41l
최형국(bluekb)


<필자는 '무예하는 인문학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오직 무예가 좋아서 20년간 칼을 쓰고 있으며, 무예와 인간의 몸 대한 근원적 고민을 학문적으로 풀어보기 위해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통시대 무인의 삶, 무인의 몸짓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오히려 더 유효해 보인다. 이번 글은 그 공부의 과정 중 얻은 작은 지식을 활용해 <의궤 8일간의 축제>의 무예사 및 군사사 고증 문제점을 짚어 본 글이다. - 기자말>


정조(正祖)는 조선의 제 22대 군주로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일으킨 성군으로 기록된 국왕이다. 특히 조선 최대의 비극으로 각인된 국왕의 다음 대를 이을 세자가 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사건인 '임오화변'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를 아버지로 둔 슬픈 군주. 왕위에 오른 후에도 국왕의 침소에 끊임없이 자객들이 몰려왔으나, 이를 물리치고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드높였던 강인한 군주. 개혁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비로소 조선을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 수 있었던 1800년 6월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군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국왕이 정조이기에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최고의 소재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비록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차마고도' '누들로드' '슈퍼피쉬' 등으로 다큐멘터리(아래 다큐) 제작 역량을 뽐낸 KBS에서 야심차게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이야기를 다큐로 풀어내었다.

이 의궤의 내용은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서울에서 출발, 수원 화성을 다녀온 8일간의 기록이다. 제작비만 해도 수억 원이 넘게 소요되었을 법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화룡점정이 되었어야 할 결정적인 장면에 고증 오류가 발생하고 말았다.

본 다큐의 연출이 인터뷰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후 8일 뒤에 숨을 거두는 점', '원행을묘정리의궤가 8권으로 구성된 점', '행차가 8일 동안 이어졌다는 점' 등 곳곳에서 발견되는 숫자 '8'로 뫼비우스를 형상화했다고 하였으나 필자의 눈에는 여덟가지 오류가 뫼비우스를 따라 쫓아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1. 정조를 호위한 무관은 일본 사무라이?

정조는 조선의 국왕이다. 그런데 그를 호위하는 무관이 일본도를 차고 일본방식의 칼 패용법을 하고 정조를 호위하고 있다. 조선의 칼 패용법은 환도패용이라고 해서 칼집에 '띠돈'이라는 특수 회전형 고리를 달아 360도 회전이 가능한 형태로 몸에 착용하였다. 그래서 본 다큐의 핵심 소재인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도 명확하게 칼의 손잡이가 뒤를 가도록 군사들이 환도를 패용하고 있다. 의궤에 등장하는 군사들 중 단 한 사람도 칼을 손에 들고 가지 않는다.

  
▲ [사진] 매복에 나선 정조의 호위병은 정체불명 자객 -정조의 능행길 중 복병을 담당하는 호위 군사의 모습. 이 장면만 보면 일본 자객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일본도를 손에 들고 다니는 조선군은 사극에서 아니 다큐에서 만큼은 사라져야 한다.  ⓒ kbs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본 다큐에서는 수백 명의 군사들 모두 칼을 손에 덜렁 덜렁 들고 행렬을 한다. 심지어 정조의 최측근 호위 무관은 조선의 환도대신 일본도를 일본 사무라이처럼 허리춤에 끼워 넣고 정조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다.

또한 원행길 중간에 매복을 서는 병사들 역시 이상한 자객 복장에 일본도를 손에 들고 거리에 잠복해 있다. 심각하다.

2. 정조가 자객들과 칼싸움을 했다?

내용 중 정조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중 소위 '존현각 침입사건' 혹은 다른 자객 침입사건에서 정조의 침소에 자객이 들어와 결투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넌센스 그 자체다. 자객이 정조의 투구를 칼로 쳐내고 이어지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날의 실록 내용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내(大內)에 도둑이 들었다. 임금이 어느 날이나 파조(罷朝)하고 나면 밤중이 되도록 글을 보는 것이 상례이었는데, 이날 밤에도 존현각(尊賢閣)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았고, 곁에 내시(內侍) 한 사람이 있다가 명을 받고 호위(扈衛)하는 군사들이 직숙(直宿)하는 것을 보러 가서 좌우(左右)가 텅비어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보장문(寶章門) 동북(東北)쪽에서 회랑(回廊) 위를 따라 은은(隱隱)하게 울려왔고, 어좌(御座)의 중류(中霤) 쯤에 와서는 기와 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던지어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형용할 수 없었다.

임금이 한참 동안 고요히 들어보며 도둑이 들어 시험해 보고 있는가를 살피고서, 친히 환시(宦侍)와 액례(掖隷)들을 불러 횃불을 들고 중류 위를 수색하도록 했다. (<정조실록> 4권, 정조 1년-1777년 7월 28일)

  
▲ [사진] 정조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붙잡힌 자객들. 정조의 침소에 자객이 들어 정조와 직접 칼로 교전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결코 그런 험한 일은 어떤 사료에도 남아 있지 않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내용전개가 요즘의 판타지 사극을 보는 듯 하다.  ⓒ kbs 관련사진보기


본 내용에서 보면 맨 마지막 줄에 정조가 직접 환관들과 관원을 불러 수색하게 한다는 대목이 명확하게 등장한다. 다큐에서는 정조가 자객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기까지 하고 그 순간 호위무관들이 달려와 제압하는 엄청난 소설 같은 전개가 이뤄진다. 이외 사료에도 혹은 다른 자객 사건에서도 정조가 직접 자객들과 칼을 맞대고 싸운 기록은 단 한군데도 없다. 다큐를 넘어서 픽션 사극을 보는 듯 한 느낌이다. 이것은 고증 오류를 넘어서 왜곡이다.

3. 정조도 서양식 활쏘기를 익혔다?

  
▲ [사진] 정조가 서양식 활쏘기를 하는 황당한 순간. 정조는 실제 기록상 활쏘기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본 다큐에서는 정조가 서양식 사법으로 활을 쏘고 있다. 정조는 조선의 국왕이며, 조선식 사법인 깍지를 이용한 엄지걸이 방식을 사용했다. 심지어 정조는 모든 신하들에게 평소에도 깍지를 착용하라고 엄명을 내리기 까지 했다.  ⓒ kbs 관련사진보기


앞의 자객들과의 교전 장면 전에 정조가 호위 군사들에게 신호용 효시를 쏘는 장면까지 추가 되었다. 그런데 정조의 활 쏘는 손을 보면, 서양식 양궁 사법으로 활을 쏘고 있다. 10년 넘게 이런 무예사군사사 고증 관련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해도 결코 고쳐지지 않는 악습 중에 악습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엄지손가락에 깍지라는 보조기구를 끼워 쏘는 엄지걸이 방식이다.

  
▲ [사진] 정조가 자객들에게 쏘았던 효시. 친절하게도 효시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지만, 효시는 지근거리에서는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일정한 체공시간을 확보해야만 화살 끝 둥근 소리통에 공기가 굴절되며 증폭되는 것이다.  ⓒ kbs 관련사진보기

본 다큐에서 정조가 쏘는 방식은 역시 서양식 혹은 지중해식 사법으로 볼 수 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화살을 끼우고 자객들을 노려보고 있다. 효시 역시 그렇게 직격으로 근접거리에서 쏘면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하다.

4. 정조가 황금갑옷을 입었는데, 투구는 없다?

정조는 능행길에 가마대신 직접 말을 타고 군사들을 지휘하는 복장인 갑주를 착용하였다. 본 다큐에서도 이런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갑(甲)만 착용했을 뿐 주(冑)는 없다.

아니 분명히 투구를 옆에 두고도 머리에 쓰지 않는다. 심지어 주간 군사훈련 때 주변의 군사들은 투구를 써도 정조는 투구를 쓰지 않고, 맨 상투로 군사들을 지휘한다. 요즘은 공사현장 인부나 중국집 배달부도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이 상식이거늘 하물며 군사를 지휘하는 수장이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훈련에 임하였겠는가?

  
▲[사진] 정조의 황금갑주 정조는 황금갑주를 입음으로써 군사들을 직접 통제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투구가 있음에도 단 한번도 투구를 쓰지 않는다. 말에 탔을 때도, 서장대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할 때도 투구는 없다.  ⓒ kbs 관련사진보기


5. 장용영의 방패는 삿갓인가? 모자인가?

  
▲ [사진] 크기, 형태 모두 고증 미달인 등패 왼쪽은 <무예도보통지> 등패이며, 오른쪽은 본 다큐의 등패 모습이다. 조선후기 등패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군사가 앉았을 때, 상반신 전체가 가려져야만 방패의 역할을 했다. 마치 조금 큰 모자크기의 이상한 형태의 방패는 중국 쿵푸에서 사용하는 도구다.  ⓒ kbs 관련사진보기


정조가 야심차게 화성을 건설하고 장용영이라는 국왕친위 군대를 수원에 주둔시켰다. 본 다큐에서도 '장용영'의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군사훈련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무기가 심각한 고증 오류다.

먼저 장용영이 군사훈련 때 사용하는 등패(등나무 방패)는 작아도 너무 작고 모양도 사실과 다르다. 심지어 대충 얽어매서 방패답지도 않다. 장용영의 군사훈련시 참고 되었던, 조선후기 병서인 <무예도보통지>의 등패와 비교해 보면 쉽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조선후기 등패는 군사가 자리에 앉으면 상반신이 모두 가려져야 한다. 그래야 화살이던 칼이던 막을 수가 있다. 이런 방식의 방패는 중국 쿵푸에서 주로 수련할 때 쓰는 형태다.

  
▲[사진] 장용영의 군사훈련 고증 미달의 등패와 낭선으로는 조선 최고의 군사집단인 장용영의 위용을 드러낼 수 없다. 등패수가 앉아도 등패에 몸이 가려지지 않는다. 이런 무기와 방패로 무슨 군사훈련을 한다는 말인가. 무예사와 군사사 고증을 누가 담당했는지 심히 우려된다.  ⓒ kbs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대나무가지에 철심을 달아 근접전을 방어했던 낭선이라는 무기 역시 보통 9층에서 12층까지 촘촘하게 가지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겨우 끝에만 서너 개가 달렸을 뿐이다. 이러면 낭선이라는 무기는 의미가 없어진다. 특히 사도세자와 정조가 늘 어루만지던 자루가 긴 칼인 '월도(月刀)'는 조선방식도 아닌 판타지용 월도가 등장한다. 인터넷으로 관우의 청룡언월도라 검색해보면 나오는 싸구려 중국산 월도의 모습과 똑같다. 수장의 무기가 이러하니 나머지 무기의 수준은 어떠하랴?

6. 군사신호체계는 몽땅 어디로 갔는가?

  
▲ [사진] 군사훈련 지휘신호체계도 고증 미달 주조-주간 군사훈련을 시작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역시 정조는 투구도 없으며, 명령을 복창하는 장수는 손에 칼을 들고 목청껏 외친다. 조선후기 군사훈련시 사용되었던 신호체계는 생략되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내용은 거의 무시한 상태다.  ⓒ kbs 관련사진보기


  
▲ [사진] 항공모함 비행기 이착륙 수신호를 하는 척후병 척후병의 신호 방법 - 황색 수기(手旗) 두 개를 좌우에 나눠 들고 펼치는 수기 신호체계는 아예 없다. 또한 황색 수기의 경우에도 그 안에 각 부대명을 써야 하며, 한 개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척후는 척후기가 따로 있다.  ⓒ kbs 관련사진보기

정조가 화성의 핵심 지휘소인 서장대에 올라 투구를 쓰지 않고 황금 갑옷만 입고 군사훈련 시작을 명령한다. 이후 장수가 칼을 들고 목소리를 크게 외치며 명령을 전파한다. 이후 북을 친다. 당연히 이 장면에서도 장수는 칼을 손에 드는 것이 아니라, 역시 칼을 띠돈을 이용하여 허리에 차고 나와야 한다. 시작부터 고증 오류 투성이다.

그리고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군사훈련의 순서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훈련명령체계는 기본적으로 국왕-병조판서-선전관-신호군사 등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깃발, 군사 신호용 악기, 군사 신호용 포 등이 다양하게 나와야 섬세하게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과감히 생략되었다.

또한 정조의 능행길 중간을 미리 점검 하는 군사들인 당보군 혹은 척후군의 신호방식역시 군사사 고증과는 먼 형태다. 특히 본 다큐에서 등장하는 척후는 두 개의 수기를 가지고 항공모함 활주로 수신호를 하고 있고, 당마의 기수는 일본도처럼 아예 칼을 뒤집어 허리띠에 끼워 넣고 말을 탄다.

7. 군사훈련의 핵심 야간군사훈련 '야조' 역시 고증 완벽히 무시

  
▲ [사진] 야간 군사훈련에서 가장 많은 고증 오류가 보인다. 우측 상단에는 당시 기록화인 <서장대야조도>의 일부 중 섶의 모습. 야간군사 훈련시 가장 중요한 것이 횃불이었다. 그러나 화로를 이용한 방법은 고증에 어긋난다. 어느 기록에서 화로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서장대야조도>를 보면 화로가 아닌 ‘섶’이 사용되었다.  ⓒ kbs 관련사진보기


본 다큐의 내용 중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된 부분이 정조가 직접 지휘한 야간군사훈련 '야조'다. 그러나 철저하게 고증 무시했다. 야조는 당연히 밤에 진행하는 군사훈련이다. 그래서 불이나 등의 사용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야조 시작을 알리는 명령과 함께 횃불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생뚱맞게 화로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날의 행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화성행행도> 중 <서장대야조도>에도 화로는 단 개도 등장하지 않는다. 3D로 다른 장면은 그림을 원근법을 비롯한 엄청난 과학기술을 보여주면서도 아예 이 그림은 참조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기록화 속에 등장하는 도구는 '섶'의 일종으로 갈대를 기둥처럼 묶어 불이 천천히 타오르도록 만든 것이다. 역시 심각한 고증오류다.

8. 정조의 신무기가 1000년 전 고려중기이전의 무기?

  
▲ [사진] 활활 타오르며 하늘을 나는 불화살 역시 심각한 오류 18세기에는 저런 불화살을 쏠 필요가 없었다. 화약이 없었던 천년 즈음 전인 삼국시대나 고려전기에 사용한 무기가 정조시대 신무기로 등장한다. 문제는 다음 장면에서는 정상적인 신기전-작약통을 단 화전이 발사된다.  ⓒ kbs 관련사진보기


야조 장면에서 불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과녁에 박히며 활활 타오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밤하늘에 멋지게 날아가는 불화살, 정말 멋진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무기는 화약이 개발되기 이전인 고려중기 이전의 화전(火箭) 방식이다.

정조시대에는 화살에 작약통이라는 화약통을 붙여 심지에만 불을 붙여 날아가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특히 불화살은 본 다큐처럼 결코 활활 타며 날아갈 수 없다.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초당 65m/s의 엄청난 속도로 공기가 꽉 찬 허공을 날아간다. 불길이 활활 타기는커녕 안 꺼지는 것이 다행이다. 그래도 과녁까지 날아가 막혀서 활활 타는 모습까지 연출하는 센스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문제는 다음 장면에서는 작약통 방식의 화전인 신기전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 [사진] 폭발하는 발사체, 당대에는 불가능하다. 야간 군사훈련 때 화성에서 호준포, 홍이포에서 발사된 발사체가 물체에 맞는 장면이다. 맹렬하게 폭발한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세계 어디에도 이런 폭발 발사체가 없었다. 그저 돌덩어리나 쇠덩어리가 날아가서 박히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그림이 좋다고 하지만, 왜곡은 안 된다.  ⓒ kbs 관련사진보기


반대로 호준포나 홍이포 사격에서는 100년 즈음 앞선 모습을 보여준다. 포탄이 날아가 화염을 일으키며 터진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포탄은 서양에서 1860년대 이후에 등장한다. 이때에는 그저 돌덩어리나 쇠 덩어리가 날아가서 박히는 것이다. 비격진천뢰와 같은 형태의 일종의 지연신관 개념에서도 충격과 동시 화염은 있을 수 없다.

이외에도 정조의 침소에 삼국시대의 환두대도가 등장하는가 하면, 두 깃의 화살이 클로즈업을 장식하는 등 군사들의 자잘한 소품까지 본 다면 수 없이 고증상의 문제가 보인다. 다른 역사 해석의 부분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역사고증 문제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고증을 담당했는지, 여쭙고 싶은 심정이다.

  
▲[사진] 이미지 컷에서도 오류가 쉼없이 등장한다. 다큐를 멋지게 꾸미고 싶었던 의욕은 좋았으나, 역시 고증 문제가 쉼없이 지적된다. 무원록을 편찬해 법과 정의를 확립하고자 했던 정조를 표현하기에 등장인물이 들고 있는 등패는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고증은 괜히 필요한 것이 아니다. 원형성을 훼손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 kbs 관련사진보기


최고로 비싼 식재료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주방장인 쉐프가, 수억 원대의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파리나 혹은 먹으면 안 되는 것이 들어가 있다. 그것도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작지만 계속 묻어 나온다. 만약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누구에게 항의해야 하는가? 음식점 사장에게, 아니면 주방장에게, 그것도 아니면 원재료를 사온 다른 누군가에게? 지금 당장 그런 음식을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8일간의 축제'의 핵심이 정조의 힘을 보여주는 '군사와 무예'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시청자의 수신료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공영방송에서 정말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본 다큐의 제작사 고위직 한분은 인터뷰에서 "세계문화기록유산인 의궤를 첨단 특수영상 기술 3D로 복원한 데 의의가 있다. 3D로 문화유산을 보관할 수 있고,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그런데 그 가치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조의 호위무관이 일본 사무라이처럼 그려진 것을 비롯해 여기저기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어찌하겠는가. 심지어 80여분으로 연말 극장 개봉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잘 편집이 가능하겠는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쉽지만 이 작품을 만들 때 <의궤>의 내용 중 무예사 군사사 부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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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말,

필자는 ‘무예하는 인문학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20년간 무예를 익혔고,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역사학-무예사/전쟁사) 학위를 받았으며, 관련 부분에 대한 지속적인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기 위하여 한국전통무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저서로는 <친절한 조선사-2007>, <조선무사-2009>,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2013>, <승마와 마사-공저, 2010>, <정조대왕 무예신체관 연구-공저, 2012> 등이 있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조선전기 무과에서의 격구 도입배경과 그 실제(2013), 역사민속학회>, <전통무예와 군사사를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 연구(2012), 역사실학회>, <정조의 문무겸전론과 병서 간행(2012), 한국역사민속학회>, <조선후기 진법 원앙진의 군사무예 특성(2011), 군사편찬연구소>, <조선 정조대 장용영 창설과 마상무예의 전술적 특성(2010), 육군박물관>, <조선후기 군사 신호체계 연구(2008), 육군박물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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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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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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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그리움을 한소끔 끓여내는 추억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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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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