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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다시 '무예도보통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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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0:47:31, 214회 읽음)

 파일 1 : 2049995301595856d8d1eaf_gd800.jpg (305.5 KB, 1회 전송됨)

 링크 1 : https://news.suwon.go.kr/main/section/view?idx=1047183


[사진] '어정무예도보통지(御定武藝圖譜通志)' '무예도보통지'의 첫 장에 실린 제목이다. 어정(御定), 즉, 임금의 명으로 지은 책이라는 글귀가 너무나도 선명하다. 정조는 여기에 아버지에 대한 추모를 담아 더욱 강력한 조선군을 키우려했다.


[칼럼] 다시 '무예도보통지'를 살핀다.

글 : 최형국/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연출

정조 14년, 1790년 4월 29일의 실록을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다!... (武藝圖譜通志 成...)'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정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병서로 4권 4책에 한글로 된 언해본을 별도로 묶어 목판본으로 편찬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무예는 ‘무예24기’로서 보병무예 18가지와 기병들이 익힌 마상무예 6가지 등 모두 스물네 가지의 군사전투무예가 들어 있다.

근 20년 넘는 세월 이 병서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기에 어찌 보면 이제 식상하기까지 할 정도로 대부분의 내용은 머리 속에 꿰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필자의 독특한 한국사 박사학위 논문의 핵심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기병들이 익힌 마상무예였으니 더 말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이 병서를 살피며 글을 쓴다.

필자는 근 일주일 사이에 많은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먼저, 그 오랜 세월 무예로 단련되어 나름 건강에는 늘 자신감이 있었지만, ‘요로결석’이라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동반한 녀석이 내 몸을 장악할 때에는 그저 허약한 인간의 몸 그 자체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 시작된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각종 진통주사를 7-8번을 맞아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아침을 맞고 초음파로 그 나쁜 ‘결석’녀석을 두들겨 부쉈지만, 요 녀석이 좀처럼 나의 몸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결석 부스러기들이 내 몸 어디엔가 굴러다니고 있다가 통증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거기에 투약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면증까지 겹쳐 3-4일 밤을 말똥말똥한 상태로 보내니 체력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전화한통을 받았다. 필자는 행궁동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가격은 3억하고도 5천만원... 지난해 화성행궁이 가까운 이곳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제 다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이는 근처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직 젖먹이 아이는 온 집안을 기어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수 억 단위의 돈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마 내 영혼까지 탈탈 털어도 그 돈을 1년 안에 만들기에는 부족할 듯 싶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만약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그 학비를 모아서 15년 전에 집을 샀다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 실제로 필자는 고향을 떠나 1994년에는 팔달구 지동에서 살다가 1999년에 처음으로 화성 연무대에서 무예24기와 관련된 첫 공개행사를 잘 마치고 수원에 정착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변 땅값과 집값을 수시로 확인하고 다녔던 터라 지금의 가격폭등 현상이 피부에 체감되는 상태였다. 간단히 계산해 봐도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본인의 학비가 1억 5천정도 들었기에 수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에 누구나 겪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미래 비전의 문제가 하필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겹쳐서 펼쳐졌다. 아이 둘은 점점 자라고, 직장에서의 움직임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고, 주변에서는 나를 안주거리삼아 무성한 뒷담화가 진행되는 모든 직장인들이 겪는 슬픈 비애가 필자에게도 하필 그때 벌어진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밀린 논문과 글빚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째깍째깍 시계초침 소리처럼 제촉 상황을 알려주는 판국이니 말 그대로 쥐구멍에 볕뜰날을 기다리며 온 몸 부숴지도록 살아 온 세월이 조금은 한탄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 개인적인 말 못할 상황까지 더해지니 엎친 데 덮친다는 옛말이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때 필자의 작은 연구실 책장에 두툼하게 자리잡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무예도보통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마도 혼자 얼마나 오래 눈물을 삼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정조도 이 병서가 나온 날 엄청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업을 '무예도보통지' 에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미 정조가 왕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인 영조와 ‘자신의 아비’와 관련한 그 어떠한 추증도 논란거리도 만들지 않겠다는 약조를 한 상황이었기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왕이 되서도 쉽게 풀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병서는 사도세자가 쓴 '무예신보'의 열여덟 가지 무예에 자신이 기병들을 위한 마상무예 6가지를 추가해서 만든 병서이니 정조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꿈꾼 강인한 군사력의 시작이 바로 이 병서의 완간을 통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필자에게도 '무예도보통지'는 수원화성에서 무예24기의 시작이자, 현재를 보여주는 모든 것이다. 다시금 어금니 꽉 깨물고 이 병서를 살피며 한 조각 남은 힘을 애써 키워 본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듯하다. 그대의 오래된 첫 시작을 기억하며... 初發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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