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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연분홍 꽃바람 부는 지리산에 안기다

 이름 : 최형국

(2005-06-03 17:54:17, 6603회 읽음)

연분홍 꽃바람 부는 지리산에 안기다
[포토에세이] 철쭉 가득한 지리산 산행사진
텍스트만보기   최형국(bluekb) 기자   
▲ 해마다 가을이면 핏빛보다 더 붉은 단풍으로 맞아주던 피아골 계곡에서는 푸르른 내음이 가득 몰려옵니다. 내 안에 있는 푸념들을 조금씩 사르면 그 향기에 취해 걸음걸음이 흐뭇합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지리산,
산은 누군가가 그를 산이라 부르기 전부터 산이었습니다.
그곳에 내가 있습니다.

애절하게 불러보았던 그곳으로,
당신의 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갑니다.

세상에 온 풍진을 가슴에 담아 가도
당신의 푸르른 미소 하나면
족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당신이 존재하기에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지리산이 그리워 깊은 발걸음 하나를 옮깁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오직 내 걸음만이 유일한 친구입니다. 일상의 먼지들이 사그라지듯이 계곡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숨은 목구멍 저 끝까지 타오릅니다.

배낭의 무게에 온몸이 짓눌려도 향긋한 바람 타고 전해지는 지리산의 신선함은 마음 저 깊은 곳의 음율처럼 내 온 마음을 자유롭게 합니다. 손에 잡힐 듯하다 저 멀리 사라지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구름 하나가 두 볼을 스쳐 갑니다.

우직한 두 발만을 믿으며 걷고 또 걸어 지리산의 품에 안깁니다. 눈길 닿는 하나하나 지리산에 고마운 마음을 띄우며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걸어갑니다.

그 푸르름 속에 살포시 고개 내민 연분홍 철쭉의 미소엔 아스라이 지워져간 옛 추억들이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아도 세월의 힘에 묻혀 멀어지는 것이 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김광석님의 노랫말처럼 그렇게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또 하루가 지나가고 삶의 여백들이 조금씩 줄어갑니다. 그래도 해마다 새순 돋아오듯이 내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소중히 여기며 펼치렵니다. 그것이 지리산이 저에게 준 선물이니까요.

▲ 엄마 품처럼 포근한 노고단에도 오월의 햇살에 불타올랐던 철쭉들이 가득합니다. 그 꽃내음 진하지 않지만 바람결에 실려오는 그 향기에 허리 긴 웃음하나 남기고 노고단을 떠납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초록으로 물든 세상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갑니다. 저 계단 끝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또 다른 세상이 펼쳐 질 듯 합니다. 뱀사골을 바로 앞에 두고 쉼 없는 계단 길을 걷습니다. 인생이라는 계단 길처럼 때론 급하게 때론 완만하게, 오직 믿는 것은 내 두 다리뿐….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형제봉 너머로 아스라한 추억처럼 벽소령 산장이 보입니다.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 추억만이 아니었습니다. 배낭 무게에 마음은 벌써 벽소령에 도착해서 쉬고 싶어 간절하지만 내 몸은 그저 그곳을 바라 볼 뿐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칠선봉 위에는 작은 돌탑이 놓여 있습니다. 마치 제단에 꽃을 바치듯 연분홍의 철쭉꽃이 다소곳이 피어올랐습니다. 무슨 소원이기에 저리도 간절히 쌓아 올렸는지, 그 소원이 꼭 이뤄지길 빌어 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해질 무렵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바라봅니다. 저 능선 따라 그리 길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펼쳐 봅니다. 비록 힘들어도 내가 가고 싶었고, 단 한번의 후회 없는 삶을 만들기 위하여 늘 당당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들을 되씹어 봅니다. 그리고 철쭉 꽃보며 웃음하나 남깁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세석 너른 벌 가득 철쭉꽃이 만발합니다. 보드라운 봄 이불 마냥 펼쳐진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행복해집니다. 해마다 넉넉한 그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지리산이 고맙습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철쭉꽃 사이로 살짝 고개 내민 장터목 산장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그곳에는 함께 합니다. 즐거웠던 추억들, 가슴아팠던 기억들…. 그 길고 긴 사람과의 인연이 모두 평안해지길 간절히 빌어봅니다. 그리고 천왕봉을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딛습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천왕봉을 가다 만난 고사목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 아버지의 갈라진 손바닥이 생각납니다. 자식들을 위하여 한 평생 흙과 함께 살아가고 계신 아버지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아버지 내내 건강하세요.
ⓒ2005 푸른깨비 최형국

▲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잠시 이리저리 흩날리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저 아래 세상일들을 하나씩 둘씩 떠올려 봅니다. 조금만 더 멀리 보면 평안해질텐데 자꾸 눈앞의 것들에 현혹되서 아등바등했던 많은 일들이 눈앞을 스칩니다. 긴 숨 내쉬고 다시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겠지요. 오랜만에 등장하는 깨비의 모습입니다.
ⓒ2005 푸른깨비 최형국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
2005-06-0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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