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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47] 자기를 이기는 것, 그것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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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2:04:14, 2539회 읽음)

 링크 1 :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759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47편]자기를 이기는 것, 그것이 어렵다    

▲ 글 : 최형국 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

무예는 인간 투쟁의 발현체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고, 그보다 더 독한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은 무예를 수련했다. 혼자 살아남기 힘들어 둘이 되었고, 그 보다 더 힘든 상대를 뛰어 넘기 위하여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려 가며 오로지 몸으로 승부하기 위하여 무예는 수련되었다.

이러한 전투적인 무예가 공동체 안에서는 살생의 위협을 제거하고 순위를 결정짓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경기 혹은 스포츠가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무예의 본질에 충실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목숨까지 제압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투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극한의 움직임을 만들되 살상은 가능하면 자제하는 방식이 바로 경기와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짓은 더 부드러워지고 유쾌해지면서 놀이와 춤을 비롯한 신체 여가활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모든 공간이 투쟁의 현장이었으며, 경쟁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더 높은 곳으로, 더 강한 곳으로 들어 갈 수 있었기에 결코 쉽게 승부가 나는 법이 없었다. 상대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뛰고, 더 멀리 가야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의 구호가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경쟁의 공간에서는 오로지 1등 혹은 우승자만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1등의 기쁨은 잠시다. 언제든지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그 1등을 뛰어 넘어 또 다른 1등으로 기억되곤 한다. 1등은 늘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다. 영화로운 과거를 추억하듯 지나가버린 1등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우리가 가끔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말 중에 상당부분이 ‘왕년의 무용담’과 연결된 것이다. 지나간 추억은 한없이 달콤하고 현실이라는 낭떠러지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삶은 늘 초라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는 이겼지만, 자기 자신은 이겨내지 못했기에 발생한 일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대는 온갖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제압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하며 천천히 자라나는 자만심이나 만용 등은 욕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물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노자(老子)가 쓴 ‘도덕경(道德經)’ 제33장에는 변덕(辯德)이라 하여 ‘덕이란 무엇인가’를 논한 문장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知人者智(지인자지) 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自知者明(자지자명)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남을 이기는 것이 힘있는 것이라면, 自勝者强(자승자강) 자기를 이기는 것은 정말로 강한 것이다. 知足者富(지족자부) 만족을 아는 것이 부유한 것이고,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 억지로 행하는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그 본래의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죽지만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를 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누구는 덕이 있네, 없네라고 뒷담화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부덕하네 어쩌네 하며 읍소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自勝者强(자승자강)’의 마음을 풀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니, 세상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이고 자신만 초라해져 보이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한 ‘인(仁)’의 본질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 속을 극복하고 본연의 모습인 ‘예(禮)’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 ‘예’라는 것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풀어 보면 상대에 대한 적극적이 배려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것에 거추장스러운 꾸밈이 들어가면 예는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게 된다. 나도 힘들고 예를 받는 상대도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고 이겨내지 못하면 예도 힘들어지게 된다.

누군가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법을 먼저 이해하고 풀어가면 덕(德)도, 인(仁)도 갖춰질 것이며, 자연스럽게 ‘예(禮)’도 챙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도 그리 긴 삶은 산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참으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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