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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57] 무예는 빼앗긴 ‘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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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0:08:03, 2334회 읽음)

 링크 1 :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433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57] 무예는 빼앗긴 ‘몸’의 부활

글 : ▲ 최형국 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상임연출

태초의 인류는 다른 동물들처럼 사지로 기어 다녔다. 그리고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립보행으로 진화를 펼치며 인간만의 ‘몸’을 만들었다. 선사시대 인간 ‘몸’은 생존의 최고 가치관이자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인간이 문화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인간의 철학은 오직 ‘정신’만을 위해 존재하여 왔다. ‘몸’은 그저 욕망과 배설의 대상일 뿐이며 철학의 주제에도 끼지 못하는 천박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최고의 위치에 있던 ‘몸’은 철저하게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강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시작으로 서양 철학은 끊임없이 ‘몸’을 고문하고 유배 보냈다. 서양철학의 근원이라 불리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건너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절대적 코기토에 심취해 철학의 역사는 오직 정신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토록 고귀하게만 여겨지고 마치 정신이 죽으면 육체는 아무 쓸 데도 없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철학자들에게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신이 무엇인지 좀 더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 백년 동안 이미 정신은 지상 최고의 위치로 떠받들어 모셔졌기에 그렇게 쉬운 말로 이야기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저 높은 곳에 고이 모셔진 ‘정신’을 잠시 지상세계로 끌어내려 보자. 지상세계로 내려온 정신은 이제야 비로소 몸이라는 것을 통해 발현되고 이해되는 우리에게 조금은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수 백년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던 ‘정신’이라는 고귀한 분을 이해하려면 ‘정신’을 담는 그릇인 ‘몸’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미 동양철학에서는 자신의 욕망과 관련된 몸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욕망을 부정하고 수신(修身)이라는 절대 위상으로까지 확대시킨 욕망 절제의 미학, 그리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궁극에 이르러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욕망긍정의 안신(安身)미학으로 몸을 세우고자 했다. 욕망 부정의 수신 미학 관점의 대표적인 인물은 공자로 그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통해 몸의 위치를 고정시켰다. 이후 명대 중기 이후 안신의 철학이라 불리며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발생한 양명학(陽明學)에서는 기존의 흐름과는 사뭇 다른 ‘수신’이 아닌 ‘안신’과 ‘보신(保身)’ 더 나아가 ‘애신(愛身)’의 미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수신의 미학과 안신의 미학은 몸과 마음의 서양적 이분법 사고가 아닌 동양적 심신일원론의 관점에서 출발하였기에 그 둘의 차이는 서양에서의 몸에 대한 완전한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몸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의 고전(古典)이라 말하는 사서삼경에서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몸(身)과 마음(心)의 합일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대 공동체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내 스스로 인식하는 ‘나’가 아닌 타인이 손으로 만지고, 타인이 눈으로 확인하는 상호 인지성을 바탕으로 정립된다. 파편화 되어버린 현실 세계의 ‘나’와 사이버 세계의 아바타적 ‘나’의 괴리감은 곧 현실 세계의 또 다른 누군가와의 접촉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더 이상 ‘몸’을 천시하지 말자! 저 높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정신’의 위치와 동일한 곳으로 우리의 ‘몸’을 승격시키자. 그러한 몸공부적인 발상만이 현실과 사이버세계를 혼동하는 세대들에게 키보드나 마우스의 플라스틱 ‘접속(connect)’이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접촉(contact)’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몸’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무예다. 무예는 정신에게 빼앗긴 몸의 위치를 탈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무예수련을 통해 얻어진 가장 인간적인 승부욕과 야생의 전투본능이 가장 필요한 것이 오늘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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