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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61] 갑옷과 추위 그리고 무예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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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3 10:30:47, 2591회 읽음)

 링크 1 :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3855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61]갑옷과 추위 그리고 무예훈련
          
▲ 글: 최형국 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상임연출

조선시대 군사들은 기본적으로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해야 했기에, 무예훈련 역시 갑옷을 입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군사들이 입었던 갑옷에는 추위극복의 비밀이 담겨있다.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입었던 갑옷은 철갑(鐵甲)이었다. 말 그대로 철판을 작게 가죽 끈으로 이어 붙여 만들었기에 웬만한 적의 창칼은 쉽게 뚫지 못하는 뛰어난 방호력을 자랑하는 갑옷이다. 그래서 지휘관급 이상의 장교들은 주로 이 철갑을 입었다. 문제는 주재료가 철판이니 갑옷 중 가장 무거워 장시간 무예훈련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추위에 취약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갑옷 안에는 내갑이라고 해서 두터운 솜옷을 받쳐 입지만, 체감온도 영하 20~30도의 칼바람이 부는 곳에서 철판으로 온몸에 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체온유지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에는 장교들이 철갑에서 가죽으로 만든 갑옷인 피갑(皮甲)으로 바꿔서 입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피갑은 방호력을 위하여 삶지 않은 돼지나 소, 노루 등의 생가죽을 많이 사용했는데, 추위에 가장 강한 가죽은 역시 개가죽으로 만든 피갑이었다. 특히 개가죽은 보온력이 뛰어나 행군시 야전에서 간이숙소를 지을 때 지휘관의 잠자리에는 개가죽을 주로 깔고 사용하였다. 심지어 개가죽으로 만든 배자와 버선에 토시의 일종인 토수(吐手)에도 개가죽이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소나 돼지의 경우 워낙 가격이 비싸고, 산 짐승의 가죽은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반보병들의 경우는 종이로 만든 지갑(紙甲)을 선호하였다. 지갑의 경우는 종이로 만들었기에 무게가 가벼워 다양한 무예훈련을 하기에 적당하였다. 또한 일정한 두께 이상으로 만들어 착용할 경우 보온력이 뛰어나 겨울에는 최고의 갑옷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북방지역의 경우는 지갑의 길이를 무릎 아래까지 길게 만들어 추위를 견디도록 제작하였다. 그런데 일반 군사들이 지갑을 선호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비용에 들어 있다. 장교들의 경우 국가에서 녹봉을 받아 생활하고 갑주나 무기 등을 일괄적으로 지급받았지만, 군역을 위하여 차출된 일반군사들의 경우는 갑옷을 직접 장만해야 했기에 가장 만들기 쉽고 가격이 싼 지갑이 보편화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갑옷은 각 부대마다 색을 다르게 하여 소위 오방(五方) 즉, 다섯 가지 색을 입혀 소속 부대를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갑의 경우는 색을 입히기도 쉽고 오랫동안 색을 유지할 수 있어서 더욱 각광받았다.

그런데 종이로 만든 지갑이라고 해서 방호력이 부실할 것 같으나, 만드는 방법을 보면 그런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지갑을 한 벌 만들기 위해서는 한지 10근(약 4-5㎏)이 들어가는데, 이것을 한 장씩 송진 3되를 이용하여 겹겹이 이어붙이기에 철갑에 비해 약하지만 웬만한 방호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시대의 경우 종이 값이 너무 비싸서 지갑 만드는 비용도 일반 군역 대상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비변사를 통해 과거시험자들 중 낙방자들의 시험지를 필요한 만큼 각 도의 감영이나 병영에 보내어 이를 분배하여 지갑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과거시험 낙방자들의 시험지가 부족한 날에는 종이도둑들이 담장을 넘는 일이 많았다. 특히 공물로 지갑을 만들어야하는 군사들은 남의 집 귀한 서책이나 문서를 비롯해서 심지어 족보까지 훔쳐 갑옷 만드는 것에 털어 넣었으니 한동안은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만약 이런 방법으로도 종이를 구하지 못할 경우는 겉에는 종이 몇 겹을 대충 겹으로 붙이고 속에는 말린 짚단을 잘게 잘라 넣어 두께를 부풀려 공물로 납품하는 일종의 군납비리까지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불량 지갑이 만들어질 경우 실제 전투에서 아무런 방호력이 없기 때문에 발각될 경우 곤장세례와 함께 해당 지갑비용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일종의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또한 지갑은 겨울에는 보온효과가 뛰어난 반면 결정적으로 날이 따뜻해지면 좀벌레가 갑옷 깊숙이 먹어 들어가 부서지는 일이 많아서 해마다 봄만 되면 지갑에 좀이 쓸지 않도록 햇볕에 널어놓거나 쉼 없이 겉 표면에 송진을 발라야 했기에 관리하는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았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정든 고향집을 떠나 군 생활을 하는 군사들에게 추위는 적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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