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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 62] 무과를 읽으면, 조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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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17:36:39, 2466회 읽음)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62편]무과(武科)를 읽으면, 조선이 보인다
                
▲ 글:최형국 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상임연출
무과시험은 문과시험과 함께 조선을 양반(兩班)의 사회로 만드는 핵심 관료시험이었다. 무과시험을 살펴보면 조선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무과는 처음에는 여섯 가지의 무예시험과 이론 시험인 강서 등 모두 7기예를 시험보았다. 즉 목전(끝이 뭉뚝한 나무촉살 쏘기), 철전(두껍고 무거운 몸체에 뭉뚝한 쇠촉살 쏘기), 편전(짧은 애기살 쏘기), 기사(마상궁술), 기창(마상창술), 격구 등이다. 그 가운데 목전과 철전은 과락제가 있어 3발 중 1발 이상 마쳐야 다음 과목을 볼 수 있었으며, 목표물의 정확도보다는 화살을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는냐에 따라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이처럼 무과의 실기시험에는 절반이상이 활쏘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과목이었으니, 조선을 활의 나라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또한 상위시험에는 말을 타고 펼치는 마상무예가 핵심이었기에 기병의 나라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름으로 이론시험인 강서는 사서오경 중 한권, 무경칠서 중 한권, 통감·병요·장감박의·무경·소학 중 한권, 경국대전 등이다. 이들 과목은 전투에서 활용할 전략 전술론과 연결된 것도 있지만 주로 유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시험문제가 많았다. 비록 말을 타고 칼을 쓰는 무관이라고 할지라도 유학적 지식을 겸비한 관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학적 소양은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요소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과시험 내용도 변화하였다. 그런데 이론시험인 강서시험은 비교적 큰 변화를 하지 않았던 반면, 실기시험인 무예시험은 간단하고도 실전적인 무예가 강조되었다. 대표적으로 개인의 화기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무과시험에 추가하였으며, 기병의 돌격전법을 갖추기 위하여 편추(鞭芻)라는 말을 타고 쇠도리깨를 휘두르는 마상편곤이 추가되었다. 또한 활쏘기 시험은 관혁·유엽전 등이 추가되어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험이 재편되었다. 특히 말을 타고 활을 쏘았던 기사(騎射)는 아예 둥근 원형 모양의 과녁을 사람모양의 짚인형인 추인(芻人)으로 바꿔 실전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것을 말을 타고 짚인형을 쏜다고 해서 기추(騎芻)라고 불렀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중국에서 도입된 월도나 일본에서 도입된 왜검을 비롯한 많은 창검술 등이 연마되어 무과의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무과시험을 합격한 후 각 군영에 배치되면 그곳에서 관무재(觀武才)를 비롯한 각종 승진시험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에 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교적 소양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며 활쏘기를 반드시 익혀야만 소위 말하는 ‘장원급제’를 할 수 있었다. 활쏘기의 경우는 실제 전투현장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한 무예이기도 했지만, ‘육예(六藝)’라고 하여 선비들이 익혀야할 여섯가지 기예인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등의 하나로 인식되었기에 이 또한 유학적 소양의 하나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예의 실기시험에서 말타기를 기본으로 하여 궁술 및 창술이 활용되었던 것은 일종의 기본 경제력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법전을 살펴보면, 과거시험을 볼 수 있는 기본 자격을 양인이상이면 국가에서 정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모든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문과시험의 경우 오랜 세월 글공부를 해야만 문장을 지을 수 있었기에 주로 권력계층인 양반들 위주로 응시가 이뤄진 반면, 무과의 경우는 약간의 글공부와 함께 뛰어난 무예실력이 있으면 누구나 한번 즈음 장원급제를 꿈꿔볼만한 시험방식이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 말을 타고 훈련한다는 것은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무과시험 역시 고비용이 소요되는 마상무예가 핵심인 것을 봤을 때 경제력이 있는 바탕이 되는 계층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천에서 용 나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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